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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현도의 한반도평화워치

사우디 홀대했던 미국, 유가 급등에 증산 애걸해야 할 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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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미국·사우디 관계에서 배우는 교훈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국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L당 2000원 아래로 내려오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날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잠잠해지면서 2년 만에 정상적 삶이 돌아오는가 싶었는데, 푸틴의 불장난으로 전 세계가 휘청거린다. 고유가 때문에 경직된 세계 경제 상황은 1973년에 발생한 1차 석유파동 시기와 비슷하다. 유가를 낮추기 위해 중동 산유국의 증산을 요청하는 미국의 움직임이 그렇다.

50년 전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려던 사우디아라비아가 유가를 올리려던 이란을 저지하고 미국 편에 서면서 세계 경제가 위기를 넘겼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제외하고 현재 유일한 고유가 해결책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증산뿐이다. 미국을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이자, 최대 수출국으로 올려놓은 셰일오일 업체들도 생산 증대보다 투자자에게 수익을 돌려주는 걸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기에 유가 하락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번 달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도 결국 증산 요청이 주목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50년 전 사우디는 어떻게 유가 상승을 막았을까?

73년 10월 6일 이집트의 선제공격으로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일어나고, 수세에 몰린 이스라엘을 미국이 지원하자 16일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중 걸프 6개국(사우디·아랍에미리트·이라크·이란·카타르·쿠웨이트)은 유가를 배럴당 3.01달러에서 5.15달러로 70%나 올렸다. 이어 다음 날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는 아랍 대의에 동참해 파병 대신 자원을 무기로 삼아, 미국·네덜란드·남아프리카공화국·로디지아(현 짐바브웨)·포르투갈 등 이스라엘 지지국에 석유 수출을 중단했다. 세계 경제를 흔든 1차 석유파동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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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무기화한 1차 석유파동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의회에 3개월간 유류세 면세 조치를 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일엔 주유소를 향해 기름값을 내리라고 압박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의회에 3개월간 유류세 면세 조치를 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일엔 주유소를 향해 기름값을 내리라고 압박했다. [로이터=연합뉴스]

10월 25일 유엔 중재로 휴전이 이뤄졌지만, OPEC은 12월 22일 유가를 배럴당 11.65달러로 다시 인상했다. 70년 한 해 동안 OPEC 회원국이 석유 수출로 번 돈이 77억 달러였는데, 74년은 888억 달러에 달했다. 당시 미국이 가장 신뢰하던 이란은 석유 금수 조치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고유가 혜택을 만끽했다. 이란 정부의 석유 판매 수입은 72~73년 회계연도 28억 달러에서 73~74년 46억 달러, 74~75년 178억 달러로 급등했다.

아랍 산유국은 74년 3월 미국을 시작으로 6월까지 금수 조치를 풀었다. 예르긴에 따르면 금수 조치 5개월간 시장에서 사라진 원유량은 하루 440만 배럴로, 당시 비공산권에 유통되던 하루 5080만 배럴의 9%에 불과했지만, 자원 무기화라는 유례없는 조치가 세계 경제에 미친 악영향은 생각보다 깊고도 컸다. 유가가 더 오르면 경제 회생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이란을 비롯한 산유국은 유가 인상을 계속 추진했다. 이에 포드 미 대통령이 74년 9월 공개적으로 유가 하락을 요청하자 이란의 팔레비 국왕은 “누구도 우리에게 명령할 수 없다. 누구도 우리에게 손가락질할 수 없다. 우리도 손가락질할 것이다”라며 거부했다.

키신저 미 국무장관은 고유가를 주도하는 이란에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양국 관계가 틀어져 가장 믿을만한 중동 지도자 팔레비를 급진 세력이 권좌에서 끌어내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75년 5월 팔레비를 미국에 초청해 키신저는 그해 3월 조카에게 암살당한 사우디 파이살 국왕 이야기를 하면서 사우디 정정이 혼란에 빠지면 미국이 이란군의 사우디 유전 장악을 지지할 것이라는 약속을 재확인했다. 키신저의 의향대로 유가 문제는 의제에 올리지 않은 채 대화가 끝났으나, 귀국 길 인터뷰에서 팔레비는 인플레이션 때문에 자국의 구매력이 30~35% 하락했다면서 당시 배럴당 10.50달러인 유가를 가을에는 인상할 것이라고 말해 미국을 놀라게 했다.

사우디, 1차 석유파동 때 유가안정 선물

팔레비는 유가를 어떻게 해서라도 올리려고 애썼고, 미국은 그런 이란을 주저앉히려고 노력했다. 76년 팔레비는 다음 해 유가 인상률을 20~25%로 잡았다. 경제 회복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팔레비의 뜻대로 유가가 오른다면 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 서방 경제는 파산하고, 미국도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에 시달릴 것이 뻔했다. 이때 사우디가 미국을 구원했다.

미국은 당시 소련 손에 들어갈 수 있는 첨단 무기는 제외하고 재래식 무기를 이란이 원하는 대로 팔았고, 사우디는 이란의 군사력을 크게 우려했다. 특히 유사시 미국 지원 아래 자국 유전지대를 이란군이 점령한다는 키신저와 팔레비의 계획을 알아내고 경악했다. 사우디는 이란 군사력 증강을 막고자 유가 인상을 저지하는 방책을 세웠다. 먼저 76년 7월 발리 회의에서 12월 도하 회의 때까지 OPEC 회원국이 6개월간 유가를 동결하는 결정을 이끌었다. 불쾌감을 느낀 팔레비는 그동안 유가를 입에 담지도 않았던 키신저의 영향력이 미국 내에서 사라진 것이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

당시 미국 고위 관리들은 유가 상승을 주도하던 이란에 대놓고 반감을 드러냈고, 무기 판매에도 제한을 두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키신저는 이란으로 날아가 팔레비를 달래고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유가 인상을 두고 포드와 팔레비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다투었다. 결국 도하 회의 직전 팔레비는 10% 인상 수정안을 내놓았다. 미국은 7~8%로 내리기 위해 노력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그런데 도하 회의 당일 주미 사우디 대사가 10% 이상 인상안을 저지할 것이고, 6~7% 인상을 예측하나, 5%가 될 것이라고 알리자, 미국은 기뻐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회의에서 OPEC 회원국은 유가를 10% 올리고, 6개월 후 5% 더 올리는 연 15% 인상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사우디는 유가 동결을 주장하며, 일일 생산량을 860만 배럴에서 1160만 배럴로 늘려 유가 인상을 막겠다고 했다. 야마니 석유장관은 기자들에게 “서구, 특히 미국이 우리에게 고마워하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며 도하를 떠났다. 우호 관계를 깊게 하고자 사우디가 미국에 큰 선물을 한 것이다.

사우디 왕세자 “바이든 말에 신경쓰지 않아”  

도하에서 유가 인상에 실패한 이란은 77년 새해를 우울하게 맞았다. 팔레비는 궁정장관 알람을 불러 “국고가 비었다”고 토로했다. 이란이 집요하게 유가 인상을 요구한 것은 석유 판매 수익금을 해외 투자보다는 국내 산업 발전과 군사력 증강에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계획한 사업을 하지 못하면서 실업자와 국민 불만이 늘었고, 결국 79년 왕정이 무너졌다. 이란은 유가 인상은 막으면서 무기 가격은 80%나 올렸다고 미국을 비판했다. 국고가 비어 모스크나 신학교 같은 이슬람 관련 시설과 기관 지원금을 대폭 줄이거나 끊었는데,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세운 새로운 집권층이 바로 이슬람 종교기관에서 나왔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사우디는 이란과 여전히 대척점에 서 있다. 그런데 이란은 핵 개발을 시도 중이고, 막강한 탄도미사일로 사우디 유전지대를 겨누고 있다. 안보가 이처럼 불안해도 바이든은 패트리엇 지대공 미사일을 철수하고,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반정부 언론인 까슈끄지를 주터키 사우디 영사관에서 참혹하게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면서 사우디를 ‘불량국가’로 불렀다.

사우디 국민은 자국을 홀대하는 바이든에게 비판적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바이든이 자신을 두고 뭐라 말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유가가 급등하자 바이든이 원유 증산을 요청하고자 건 전화마저 받지 않았다. 사우디는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증산으로 유가 하락을 주도할 수 있는 나라지만, 76년처럼 대폭 증산으로 이번 바이든의 방문에 화답할 것 같지는 않다. 자국 증산보다는 미국의 키스톤 파이프라인 건설 재개가 유가 하락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다.

급변하는 세계, 대외 관계 신중해야

이란의 유가 인상 노력을 저지한 야마니 전 석유장관은 “돌이 없어서 석기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고, 석유 시대도 석유가 없어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2016년에 석유 없는 미래를 ‘사우디 비전 2030’에 담아 국가 개조에 나섰다. 미국과 함께 달에서 수자원을 개발하는 것을 협력 사업으로 제안할 정도로 큰 꿈을 꾸고 있다.

중국을 봉쇄한다고 우방을 불량국가로 비판하며 홀대한 바이든은 이달 중순 사우디 방문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미안함을 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예전의 미국처럼 원하는 것을 사우디에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제는 미국이 사우디의 말을 들어야 할 만큼 중동 정세가 변했다. 미국이 호령하던 일극 세계가 무너져, 다극 세계를 이야기하나, 현지에서는 오히려 마치 불가의 화엄처럼 극 없이 서로서로 이어지는 상호연결의 세계를 말한다. 이처럼 급변하는 세계에서 친구에게 하는 말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막말은 신념에 찬 소리가 아니다. 친구 하나를 잃으면 서로 연결된 다른 친구도 잃는다. 사우디보다 안보 불안이 더 큰 이 땅의 정치 지도자는 막말과 신념을 반드시 구분하길 바란다. 그리고 사우디의 비전에 우리를 대입해보자. 산유국이 이야기하는 석유 없는 세상을 함께 만들 역량이 우리에게 있지 않은가!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