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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前직원 "文정부때, 북핵 첩보 보고서는 쓰지도 말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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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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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최근 1급 부서장 27명 전원에 대해 내부 교육기관인 국가정보대학원에 대기발령 인사를 내렸다. 국정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적 청산, 조직 쇄신의 몸살을 앓아왔다. 6·25 때 밤엔 인민군, 낮엔 국군이 번갈아 점령군 행세를 하던 것과 비슷하다는 소리가 내부에서 흘러나온다. 급기야 지난 정부에서 국내정보 파트가 아예 폐지됐다. 하지만 정권에 따라 대북 정책 기조가 친북과 반북으로 갈리는 게 여전히 문제다. 지난 문재인 정부 5년간 인사 난맥상과 함께 대북 정보파트가 많이 허물어졌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그 실상을 들여다봤다.
 지난달 어느 토요일, 서울 여의도의 한적한 오피스텔. 대북공작 업무를 오래 해온 국정원 전 직원 A씨와 마주앉았다. 그와의 만남은 스파이들이 접선을 하는 것처럼 은밀하게 진행됐다. 사업가 지인을 통해 연락이 닿았다. 오피스텔에 들어서니 주식 시세창이 떠 있는 여러대의 컴퓨터와 책상이 보였고 음료수와 물로 가득찬 냉장고도 있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1년 국가정보원에서 원훈석 제막식후 박지원 당시 국정원장에게 개정 국정원법 동판을 증정받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달 61년 전에 만든 ‘우리는 陰地(음지)에서 일하고 陽地(양지)를 指向(지향)한다’는 문구의 원훈석으로 교체했다. [뉴스1]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1년 국가정보원에서 원훈석 제막식후 박지원 당시 국정원장에게 개정 국정원법 동판을 증정받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달 61년 전에 만든 ‘우리는 陰地(음지)에서 일하고 陽地(양지)를 指向(지향)한다’는 문구의 원훈석으로 교체했다. [뉴스1]

자리에 앉은 A씨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5월, 서훈 국정원장 취임 이후 국정원 적폐 청산TF를 동원한 인사 전횡과 이로 인한 대북공작국 기능 마비가 심각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9월쯤 국정원 2, 3급  30여명, 4급 30여명의 직원들이 경기도 판교에 있는 내부 교육기관으로 보내졌다. 보수 정권 10년 동안 소위 '잘 나간' 이들을 뽑아내 1년간 교육(직원들은 '삼청교육'이라고 부름)을 받도록 했다. 이들 중 절반은 '정치범', 절반은 '잡범'으로 불렸다. 정치범은 '국정원 댓글 공작' 담당자였거나 폐지된 국내정보 수집·분석 담당자들. 그들의 빈자리는 친문 인사들로 채웠다. 국정원엔 승진 최소 소요기간(계급정년)이 있다. 4급→3급 승진에 5년, 3급→2급 3년, 2급→1급 2년씩 걸린다. 그런데 갑자기 4급→3급 승진 연한 5년을 3년으로 줄이고 3급 이상은 아예 없앴다. 자격이 안되는 자기 쪽 인사 발탁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인 셈이다. 명분은 '세대교체'를 내세웠다. 지난 5년간 2계급 이상 승진해 현재 2급 이상인 고위 간부가 53명에 이르는 건 그 때문이란게 A씨의 설명이다.
 국정원 내부에서는 이같은 인사 전횡의 주도자로 국정원장 비서실장을 지낸 노모씨와 전 인사처장 소모씨가 꼽힌다. 노 전 실장은 정권 출범 당시 3급 부이사관에서 불과 1년만에 1급 관리관으로 승진했다. 이후 대북공작국장으로 영전하더니 박지원 원장이 부임(2020년 7월말)직후 비서실장이 됐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고향 친구(전남 장흥)라는 뒷배가 작용했다는 말이 많았다. 국정원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노 씨가 대북공작국장을 한 2년여동안, 주요 해외 거점을 폐쇄하고 진행중인 공작을 강제 종결하라고 지시하는 등 무리수를 둬 대북공작의 역량이 10년 이상 퇴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특히 노 전 실장은 영업사원들의 실적을 그래프로 작성해 관리하는 대기업 시스템을 대북 공작 업무 관리에 도입했는데, 이는 노무현 정부 때 도입했다 실패한 것이었다고 한다. 내밀하고 깊이 있는 첩보는 줄어들고 분량만 늘어나는 부작용이 컸기 때문이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과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컨벤션홀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22주년 기념식 및 학술회의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이종찬 전 국정원장과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컨벤션홀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22주년 기념식 및 학술회의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소 전 처장 역시 정규 기수를 6~7기 뛰어넘어 3급 인사처장, 2급 대북전략국 단장으로 승승장구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서훈 전 원장이 4급 과장 시절 막내 직원으로 같이 근무한 인연이 바탕이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보수 정권시절의 간부 60여명을 적폐, 갑질, 조직 부적응 등을 이유로 보직을 박탈하고 지방 좌천하는 인사의 실무를 담당했다고 한다. 노 전 실장도 소 전 처장을 통해 자신이 근무했던 감사관실 후배 직원들을 대북공작국·방첩국·해외공작국 등 인기 부서로 대거 배치했다고 한다. 애초에 감사관실 출신 대북공작국 직원은 1~2명에 불과했는데 자꾸 늘리다보니 20여명이나 됐다. 대북 공작 부서가 잘 돌아갈 수 없는 구조였다는 의미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 국정원 직원 400여명을 쫓아내자 그들이 '국사모'를 만들어 법정 투쟁, 10년 뒤 승소하는 일이 있었다. 그걸 거울삼아 문 정부는 보직은 주되 조직 내에서 왕따를 시키는 방식을 썼다고 한다.
다음은 A씨가 전한 대북 공작업무의 와해상이다.
 -가장 심각하다고 느낀건 무엇인가.
 "문 정부가 출범한 그해 말께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다'는 CIA 내부 분석 보고서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관심이 증폭됐다. 한미간에 정보 교환을 안 하니까 귀동냥으로나마 그런 사실을 들었다. 이에 대북 공작국에서는 북핵 관련 첩보들을 계속 수집했다. 북한이 핵개발과 관련해 자강도에서 뭘 하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등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공작관들에게 일절 수집한 첩보를 활용해 북핵 관련 보고서를 쓰지 못하게 했다. 책임질 수 없는 첩보는 보고하지 말라는 취지였다. 얼토당토않은 얘기다. 첩보는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이고 분석관들이 종합적으로 판단해 신빙성을 인정하면 정보로 생산된다. 정보는 국정원장을 거쳐 VIP(대통령)에게 보고돼 국정 운영의 자료로 쓰인다."
 -강제 퇴직한 직원도 있나.
"내부 교육기관에 입소한 국정원 동료는 국정원 감찰과 세 번의 검찰 조사까지 받은 뒤 강제 퇴직을 당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관련한 보고서를 썼는데 4대강 사업을 미화했다는 이유였다. 4대강 캠페인을 했으면 모르지만 현재 상황, 문제점, 개선 방안을 일목요연하게 적은 보고서였다고 한다. 당사자는 얼마나 억울했겠나. 더욱이 4급 서기관(과장)을 형사 처벌까지 받게 하는 게 맞나. 정치적 문제가 생기면 1급 부서장에 책임을 물으면 된다. 2급 이하 직업 공무원들까지 문책하는 건 가혹하다. 북풍 사건 때도 안 그랬다. 검사가 신문을 하는데 국정원 내부 보고서 원본이 앞에 놓여 있어 깜짝 놀랐다는 직원도 있다. 감사관실과 '과거사 정비 TF'가 서버를 다 봤고 감사 자료를 그대로 검찰에 준 것이다. 검사가 놀라 '이 보고서를 저희가 봐도 되는 거냐'고 묻더라. 이런 일들이 여러 부처에서 벌어졌다."
 A씨는 "지난 5년 동안 대북 공작의 씨를 완전히 말렸다. 국가적으로 봤을 때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이라 이적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라며 "북풍 사건에 대북 공작국이 연루돼 박살이 났던 DJ(김대중 정부)때도 이번처럼 뿌리까지 자르지는 않고 계속 일은 할 수 있게 놔뒀다"고 주장했다.

문 정부 국정원 인사 난맥과 헝클어진 대북공작 # 북핵 관련 CIA 보고서 첩보 수집에 상부서 "쓰지말라" 지시 # 해외 거점 폐쇄, 진행중인 공작 강제 종결 무리수도 잇따라 # 2~4급 60여명 '삼청 교육'… 대북공작 역량 10년 퇴보 지적도 #계급제 없애 줄 대기 차단하고 별도 통제기구 두는 방안 필요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재임 중 알게된 정보들을 퇴임 후 번번이 얘기하면서 구설에 올랐다. 중앙일보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재임 중 알게된 정보들을 퇴임 후 번번이 얘기하면서 구설에 올랐다. 중앙일보

 대북 공작은 애로가 많다.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 사람들에게 공작원이 접근해 포섭하는 흑색 공작은 인력과 시간, 돈이 많이 들어간다. 중단하면 휴민트가 붕괴된다. 이병기 국정원장 시절, 국정원장 비서로 홍콩에서 블랙 활동을 하던 공작국 직원을 차출했다고 한다. 3급 직원이 졸지에 원장 비서실장을 거쳐 주런던 공사까지 지냈다. 개인적으로는 출셋길에 올랐다. 반면 예산이 10만달러 이상 투입된 홍콩 사업이 완전 마비됐다. 후배들 입장에선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정원 대북 공작 직원들은 퇴직 후 민간 회사에 들어가려고 이력서를 쓸 때도 국가를 위해 쏟아부은 30년은 국가 기밀 사항이라서 잃어버린 것으로 치부, 기재하지 못한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에서 대북공작 국장을 지낸 또 다른 관계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 중립을 강조하며 힘을 빼다보니 국정원이 껍데기만 남은 공룡처럼 됐다"며 "인사 또한 호남 인맥, 부산 인맥, 영포라인 등 자기 편 일색으로 단행해 줄 세우기 하니 수십 년 공들여 키운 국가적 자원이 낭비되고 국정원이 바로서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정원 직원들의 계급제를 없애 정치권 줄 대기를 차단하고 국정원은 집행기능만 하고 국정원위원회 같은 별도의 통제기구를 둬 견제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A씨가 전한 난맥상과 관련,본지는 노 전실장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수차례 시도했으나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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