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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1기 신도시 재건축, 뉴타운의 불행 경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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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전국을 달궜던 6·1 지방선거에서 많은 공약이 제시됐는데, 수도권에서 관심을 끌었던 최대 이슈는 1기 신도시 재건축이었다. 1기 신도시 재건축 추진 공약으로 국민의힘이 경기도 고양·성남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이제는 선거 운동할 때의 뜨거운 가슴을 가라앉히고 내뱉었던 말들을 어떻게 수습할지 차분히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필자는 올초 1기 신도시가 입지한 5개 시 시장들이 토론자로 참여한 노후 1기 신도시 활성화를 위한 정책 세미나의 좌장을 맡았던 경험이 있다. 당시만 해도 추가적인 층수를 허용하는 수직 증축 리모델링이 주요한 대안이었다. 당시는 허용 용적률이나 시장 상황에서 재건축이 무르익을 수 있는 시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후 몇 달 사이 대선 소용돌이 속에서 용적률 500% 재건축 공약이 남발되고,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재건축이 거의 현실이 된듯한 분위기다.

과도한 정치적 선택은 대가 치러
합리적 시점과 계획적 판단 필요

이런 상황은 1기 신도시 재건축이란 화두가 자연스러운 시장의 압력이 아니라 정치적 욕심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문득 서울시 뉴타운 사업의 과욕이 만들어낸 불행이 떠오른다. 2002년 10월 당시 이명박 시장이 시작한 뉴타운 사업의 목적은 한마디로 “급등한 강남 집값만큼 강북도 올려주겠다”는 정치적 메시지였다.

그렇게 시작된 뉴타운 사업은 3차에 걸쳐 33만가구가 거주하는 24㎢의 막대한 면적에서 추진됐다. 과도한 면적이 지정된 이유는 합리적 판단이 아닌 자치구끼리 나눠먹기 게임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몰아친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와 주택시장 침체는 많은 갈등을 야기했고 거꾸로 정비구역의 과도한 해제 사태가 벌어지는 빌미가 됐다.

정비구역의 지나친 해제에 따른 주택 공급 위축 여파로 서울시의 아파트 가격이 급등했다. 급기야 지금같은 금리 급등기에도 가격 조정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시장의 힘이 뒷받침되지 못한 정치적 선택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셈이다.

광역적인 차원에서 건설될 시점에 1기 신도시들은 서울시가 서울대 도시권의 중심 위치일 때 서울시청 반경 20㎞를 넘어서 약 30만 가구를 담도록 건설됐다.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 서울대 도시권은 경부축을 따라 지속적으로 남하하며 확대됐다. 그 결과 어떤 신도시 지역은 서울대 도시권의 중심입지로 변모하고, 어떤 신도시 지역은 여전히 외곽으로 남으며 각각의 기능적 차이가 누적됐다.

그런 변화를 가장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아파트 가격 차이다. 무작정 1기 신도시라고 하나로 묶어서 접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노태우 정부 시절 ‘200만호 주택 건설’의 결과로 지어진 아파트들은 1기 신도시가 아닌 곳이 더 많다. “왜 1기 신도시만 밀어주느냐”고 물으면 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내재적 논란이 많은 1기 신도시에 얽매여 정책을 선택한다면 뉴타운 사업에서 경험했던 정치적인 나눠먹기 게임으로 귀결될 우려가 크다. 뉴타운 사업에서 얻은 의미 있는 경험 중 하나는 정비사업을 광역적인 그림으로 추진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국지적인 정비사업의 필요성과 시장 압력의 차이를 인정하는 합리적인 시점과 계획적 선택이 필요하다. 토지가격이 낮아 과도한 용적률 인센티브가 필요한 곳의 재건축을 밀어붙이면 통근비용 등 사회적 비용을 키울 것이다.

시기적으로도 지금 주택시장은 장기간의 급등 이후 조만간 닥쳐올 조정기를 기다리는 형국이다. 지금 1기 신도시의 재건축 확대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은 뉴타운 사업 경험처럼 결국 대상지역에 미래 갈등의 빌미를 제공하는 독이 될 수 있다. 입지별로 다른 개발 여건과 통합개발의 현실적 어려움을 수용하는 수준에서 쉬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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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