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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서도 빚내는 힘겨운 6070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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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생계형 대출’인 보험약관대출을 받는 고령층이 늘고 있다. 지난달 21일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광장에서 열린 ‘노인일자리 채용한마당’을 찾은 어르신들이 취업 정보를 살펴보는 모습. [뉴시스]

‘생계형 대출’인 보험약관대출을 받는 고령층이 늘고 있다. 지난달 21일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광장에서 열린 ‘노인일자리 채용한마당’을 찾은 어르신들이 취업 정보를 살펴보는 모습. [뉴시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했던 A(62·서울 종로구)씨는 지난해 2월 용역업체에서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이후 3개월간 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그는 생활비와 아내의 의료비 등이 필요해 9년간 납입해 온 연금저축보험을 해약하려 보험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사는 A씨에게 보험계약대출(약관대출)을 받을 것을 권유했다.

대출 금리는 연 5%대로 당시 시중은행 금리보다 높았지만, 소득이 없고 신용등급이 낮은 A씨가 장기간 유일하게 목돈을 빌릴 수 있었던 수단이었다. A씨는 환급금의 약 90%에 해당하는 1500만원을 대출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7월부터 매달 6만5000원의 이자를 1년째 갚지 못해 원리금 액수가 환급금에 가까워졌고, 보험사는 원리금을 갚지 않으면 보험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고 알려왔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d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dapkim@joongang.co.kr

‘생계형 대출’의 성격이 강한 보험약관대출을 받는 고령층이 최근 2년간 급증하고 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업권별 대출액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만 60세 이상의 보험사 가계 대출 잔액은 11조1625억원이었다. 전년 말 대비 10%(1조145억원) 는 액수다. 같은 기간 전체 보험사 가계대출 증가율(5.5%)의 배에 달한다.

특히 큰 폭으로 늘어난 건 60세 이상의 신용대출 잔액(1조3256억원)이다. 전년도(1조1333억원)보다 17%, 2년 전인 2019년 말(1조10억원)보다 32.4% 늘어났다. 2019년 말과 비교해 2년간 전체 연령의 보험사 신용대출 평균 잔액이 4.1% 줄어든 것과 비교된다. 올 1분기(1조3838억원)에도 60세 이상의 보험사 신용대출은 지난해 말 대비 4.4% 늘었다. 2019년 말과 비교하면 38.2% 증가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d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dapkim@joongang.co.kr

보험약관대출은 보험의 보장 혜택은 유지하면서, 본인이 가입한 보험의 해지환급금 50~95% 내에서 별도 심사나 신용점수에 상관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담보가 확실해 본인 확인 등 간단한 심사만 거치면 즉시 돈을 빌릴 수 있다. ‘컵라면 익히는 것보다 쉽고 빠른 대출’로 홍보하는 보험사가 있을 정도다. 또한 중도 상환 수수료가 없어서 수시로 원금 상환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보험약관대출은 은행 등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사람들이 부족한 생활비 등을 조달하기 위해 이용하는 마지막 수단이자, 생계형 대출로 여겨진다. 게다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적용대상에서 예외 조항으로 빠져 있다.

그래서 고령층의 보험사 신용대출이 급증하는 건 소득에 따라 대출을 제한하는 DSR 규제의 풍선효과로 해석된다. 진선미 의원은 “대출 규제로 은행 대출 문이 막히자 소득이 적은 고령층이 비교적 돈을 쉽게 빌릴 수 있는 보험사로 몰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높은 금리로 인한 부실 위험이 커지는 만큼 경제 사각지대에 있는 고령층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취약 계층이 상대적으로 돈을 빌리기 쉬운 보험약관대출은 다른 금융상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다. 손해보험협회와 생명보험협회에 공시된 총 35개 보험사의 지난 5월 금리확정형 보험약관대출 평균 금리는 연 5.97%(최저 연 3.97%, 최고 연 8.61%)다. 이자가 빠르게 늘기 때문에 환급금의 90%가 넘는 돈을 빌린 뒤 몇 달만 이자를 갚지 못하면 원리금 규모가 환급금과 같아져 보험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당국이 1금융권 대출을 조이자 돈을 어떻게든 빌려야 하는 실수요자가 보험사 등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며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의 부실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고령층을 중심으로 보험약관대출의 부실 위험이 커지자 일부 보험사에선 약관대출의 한도를 줄이고 있다. 삼성화재는 지난달 23일부터 ‘무배당 유비무암보험’ 등 일부 상품의 약관대출 한도를 기존 해지 환급금의 60%에서 50%로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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