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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술이 살아있네!” MZ세대에 부는 생막걸리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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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면

외식 사업가 겸 방송인 백종원은 지난해 9월 서울 시내에 양조장(백술도가)을 차리고 막걸리를 만들었다. 그가 지난 4월부터 본격 시판에 나선 막걸리는 ‘백걸리’다. 유리병에 담아 파는 술은 알코올 도수가 14도로 좀 센 편이다. 합성감미료를 넣지 않고 쌀 본연의 단맛을 살린 순수 생막걸리다.

백종원은 “전통주 홍보를 하려면 술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막걸리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백종원과 가수 겸 배우 임창정 등 셀럽(유명인)이 잇달아 막걸리 산업에 진출한 것은 최근 활기를 띠고 있는 국내 막걸리시장과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 있다.

1933년 설립된 충남 당진의 신평양조장에서 관광객들이 플라스틱 통에 고두밥과 누룩 등을 담은 뒤 막걸리를 시음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1933년 설립된 충남 당진의 신평양조장에서 관광객들이 플라스틱 통에 고두밥과 누룩 등을 담은 뒤 막걸리를 시음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막걸리가 제2전성기를 맞았다. 2000년대 중후반 한때 일본에서 시작한 막걸리 열풍이 한국에까지 분 적이 있다. 하지만 잠깐 대박을 친 뒤 인기가 금방 시들해졌다. 다양한 제품이 개발되지 않아 소비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게 주요 원인이었다.

요즘 막걸리 증흥은 20~30세대(MZ세대)가 이끌고 있다. MZ세대가 전통 막걸리 대신 이색적이면서 고급스러운 막걸리를 선호하면서 막걸리 산업이 활성화하고 있다. GS25가 막걸리를 구매하는 고객 구성비를 분석한 결과 2030세대가 2020년 6월 27.1%에서 2021년 6월 33%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혼술족’이 증가한 것도 막걸리 산업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백종원 등 유명인이 막걸리 사업에 진출하는 가운데 가수 임창정이 내놓은 ‘미숫가루 꿀막걸리’가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 판매되고 있다. [사진 세븐일레븐]

백종원 등 유명인이 막걸리 사업에 진출하는 가운데 가수 임창정이 내놓은 ‘미숫가루 꿀막걸리’가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 판매되고 있다. [사진 세븐일레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2016년 이전까지 3000억원대에 그쳤던 국내 막걸리 소매시장 규모는 지난해 5000억원을 돌파했다. 국세청에 등록한 탁주 제조면허 건수는 2011년 868건에서 2015년 800건으로 줄었다가 2020년 961건으로 증가했다.

막걸리의 ‘막’은 ‘마구’ ‘이제 막’의 의미다. ‘걸리’는 ‘거른다’의 뜻으로 ‘거칠고 빠르게 걸러진 술’이다. 막걸리는 예로부터 서민의 술이면서 양반, 나아가 왕의 술이었다.

문헌에 따르면 조선시대 왕 가운데 철종과 연산군이 유독 즐겼다. 대통령 가운데 박정희와 노무현이 대표적인 막걸리 마니아였다.

지난달 22일 충남 논산시 양촌면 양촌리 양촌양조장을 찾았다. 양조장에 들어서자마자 오래된 목조 건물에서 특유의 나무 향기가 풍겼다. 33㎡규모의 발효실에서는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양조장 서까래에는 한자로 ‘昭和’(쇼와) 6년이라는 글씨가 뚜렷하게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1년 지어진 건물이라는 의미다.

100년 전통의 충남 논산 양촌양조장에서 이동중 대표가 막걸리를 들어 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100년 전통의 충남 논산 양촌양조장에서 이동중 대표가 막걸리를 들어 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양촌양조장 이동중(71) 대표는 식힌 고두밥(꼬들꼬들한 된밥)에 누룩과 물을 섞고 있었다. 막걸리 핵심 제조 과정으로, 발효 전 단계다. 이렇게 섞은 밑술에 덧술(곡물·물·누룩 혼합한 것)을 넣고 일정 기간 발효시키면 술이 된다. 양촌양조장은 1923년 이동중씨의 할아버지인 고 이종진씨가 집에서 막걸리를 빚은 게 시초였다. 그러다가 1931년 양조장 건물을 지었다. 이 대표는 3대째 가업 전승자다.

양촌양조장처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양조장은 전국에 여럿 있다. 충남 당진군 신평양조장은 1933년 설립돼 올해로 89년째 이어지고 있다.

막걸리는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MZ세대가 주류 소비 주체로 떠오르면서 이들의 소비 취향과 감성에 맞춘 막걸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인공첨가물을 넣지 않고 우리쌀과 누룩·물 등 원재료를 있는 그대로 숙성한 ‘내추럴 막걸리’가 대표적이다.

문제열 국립한경대 연구교수는 “다양한 막걸리 제품이 나오면서 막걸리가 단순한 술이 아닌 강력한 문화 콘텐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한류 열풍에 힘입어 미국·일본·베트남 등 해외에서 우리 생(生)막걸리 인기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막걸리 수출액은 1570만2000달러로 전년 대비 27.6% 증가했다. 올해 1분기에는 424만8000만달러의 수출액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1.0% 증가한 것이다. CNN은 지난 5월 한국 막걸리를 차세대 대표적인 한류 상품으로 꼽았다.

지역 특산물을 넣어 차별화한 막걸리도 많다. 경기 포천 더덕, 가평 잣, 공주 밤, 전남 고흥 유자, 경북 문경 오미자, 제주 귤·땅콩 등을 사용한다. 유명인도 막걸리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배우 김수미와 협업해 지난해 11월 프리미엄 수제 막걸리 ‘수미 막걸리’를 출시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자사 ‘맛 홍보대사’인 배우 김수미와 함께 ‘수미 막걸리’를 출시했다. 가수 임창정도 ‘꿀미숫가루 막걸리’를 내놨다. 이 막걸리는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담록 소장은 “최근 몇 년간 젊은층을 중심으로 막걸리가 인기를 끌면서 술 종류가 다양해지고 시장 규모가 커진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막걸리도 원재료 중심으로 품질 고급화에 신경 써야 지금 같은 인기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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