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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말 떠올라…시집 낸 박두진 아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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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978년 스물두살인 박영욱씨(오른쪽)가 아버지 박두진 시인과 집 방에서 찍은 사진. 박씨는 “말씀이 없으신 분이었는데 네 아들 중 유독 내게만 글을 써보라고 권하셨다”고 말했다. [사진 박영욱]

1978년 스물두살인 박영욱씨(오른쪽)가 아버지 박두진 시인과 집 방에서 찍은 사진. 박씨는 “말씀이 없으신 분이었는데 네 아들 중 유독 내게만 글을 써보라고 권하셨다”고 말했다. [사진 박영욱]

“넌 글을 쓰는 게 좋을 거 같구나”란 아버지의 권유가 아들 가슴에 오래 남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후광이 부담스러워서였을까. 실제 글을 쓰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최근 시·산문 모음집 『나무를 보면 올라가고 싶어진다』(푸른사상)를 첫 책으로 펴낸 박영욱(66·사진)씨는 “이제 창의력의 산도(産道)가 확 터지면 마음 내키는 대로 오래도록 글을 써나가겠다”고 했다.

박씨는 청록파 시인 박두진(1916∼1998) 선생의 4남 중 막내아들이다. “어렸을 때 몇 번 아버지께 시를 써서 보여드린 적이 있어요. 제목이 ‘고양이 꿈’ ‘시계’였던 걸로 기억해요. 그때는 아무 말씀 없으셨는데, 스무 서너살 무렵 어느날 ‘눈 좋을 때 책 많이 봐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또 1년 뒤쯤 단양 남한강가 돌밭에서 제게 글을 써보라고 권유하셨어요. 가는 비가 내리던 날이었는데….”

박영욱

박영욱

그의 성장 환경은 문학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아버지는 시를 쓰고 나면 꼭 어머니(아동문학가 이희성)에게 낭송해달라고 했다. 집에는 늘상 아버지에게 시를 배우기 위해 찾아온 제자들로 북적였고, 연말이면 아버지가 심사하는 신춘문예 원고가 쌓여있었다. 보고 듣는 모든 게 시와 연결돼 있었지만, 그는 문학에 발을 담글 생각이 없었다. 대학(연세대 중어중문학과)을 졸업한 뒤 고교 중국어·한문 교사로 20여년간 교편을 잡았다.

삶의 전환점은 새천년과 함께 왔다. 2000년 밀레니엄 프로젝트 격으로 등산을 시작했다. 북한산·인왕산 등 산행길에서 자연을 접하며 얻은 느낌을 활자로 옮기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2008년 명예퇴직을 한 뒤로는 등산과 글쓰기가 본업이 됐다.

그의 시는 아버지의 시와 비슷한 듯 다르다. 문학평론가 송기한 대전대 교수에 따르면, 박씨의 작품은 우리 시사(詩史)의 자연시 계보를 충실히 잇고 있다. 자연과 자아의 절대적 융합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청록파 시인 중 조지훈의 세계와 가깝다. 이런 평에 대해 박씨는 “그런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동의했다. “삶이란 게 의외성도 많고 결국 죽음으로 세상에서 없어진다는 두려움도 있지요. 하지만 허무에서 끝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산에서 돌멩이·바람·구름 등을 만날 때면 현실의 부대끼는 삶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들어요. 자연과 통래하며 가을 하늘 같은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살아계실 때 글을 안 썼던 게 불효였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제 3, 4년에 한 권씩 책을 내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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