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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고 습한 날씨에 ‘러브 버그’ 산에서 도심으로 내려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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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국 대부분 지역의 낮 최고기온이 33도를 넘어서며 폭염 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습도까지 높아 체감온도가 35도를 넘는 곳이 많다. 최근 경기도 고양시와 서울 은평구 등 서북부 지역에 ‘러브 버그’가 출몰한 이유도 이런 고온다습한 날씨와 관련이 있다.

최근 우리나라 남쪽에서 고온다습한 공기가 꾸준히 유입된 데다, 제4호 태풍 에어리도 고온다습한 공기를 가득 밀어올리고 있다.

이런 날씨가 러브 버그에게는 이상적 조건이다. 러브 버그는 수컷 6mm, 암컷 8mm 크기의 털파리과 곤충이다. 겨울~봄철 산간 지역에서 애벌레로 살다가 기온과 습도가 오르면 성체가 된다. 지난달 28일 장맛비가 내리는 동시에 때 이른 폭염까지 찾아오자 우화(羽化)하기 좋은 환경이 된 것이다.

러브 버그는 사람에겐 해를 끼치지 않지만 특유의 생김새가 혐오감을 주는 데다, 에어컨이나 자동차에 들어가 문제를 일으킨다. 러브 버그가 주로 출몰하는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관련 연구가 활발하다. 플로리다대학 식품과학농업연구소(IFAS)는 ‘러브 버그와 함께 살기’(2018), ‘플로리다의 러브 버그’(2022) 등의 논문을 펴냈다. 연구진에 따르면 미국 동남부 지역에선 러브 버그가 4~5월과 8~9월에 주민 거주지역에 대규모로 출몰한다.

러브 버그 피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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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을 괴롭히다 보니 미국에서 퍼진 속설도 많다. ‘러브 버그가 모기를 먹도록 유전자 조작이 됐다’거나 ‘생태계에 천적이 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플로리다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러브 버그는 꽃가루와 꿀을 먹고 사는 초식성 곤충이라 모기를 먹지 못한다. 개체 수가 워낙 많아 천적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거미, 잠자리, 새에게 잡아먹힌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러브 버그가 해외에서 유입된 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토착종인 털파리가 산간 지방에 서식하며 5월 말~6월 초 사이 성충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개체 수가 적당히 유지됐고, 산간 지방에만 서식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 올해는 고온다습한 날씨로 러브 버그가 뒤늦게 폭발했을 뿐이다.

암컷 러브 버그는 한 번에 100~350개 알을 민가가 아닌 땅속에 낳고, 애벌레는 떨어진 낙엽이나 동물의 똥을 분해하는 생태계 청소부 역할을 한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은 “만약 털파리가 없다면 산에 오를 때마다 썩은 냄새를 맡아야 한다. 주민 불편 때문에 방역을 할 순 있지만 완전히 박멸할 필요는 없는 익충”이라고 말했다. 러브 버그는 1~2주 내 사라질 전망이다. 내리쬐는 햇볕에 대기가 건조해지면 금방 죽기 때문이다. 자연상태에서 수명도 3~7일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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