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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우주로켓개발 일본은 도와주고 한국은 외면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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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최준호의 사이언스&]

 아랍에미리트(UAE)의 화상 탐사선을 실은 일본 H-2A 로켓이 2020년 7월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의 발사대에서 이륙하고 있다. 일본의 우주발사체 개발은 1970년대 미국의 델타로켓 기술 전수가 절대적이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랍에미리트(UAE)의 화상 탐사선을 실은 일본 H-2A 로켓이 2020년 7월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의 발사대에서 이륙하고 있다. 일본의 우주발사체 개발은 1970년대 미국의 델타로켓 기술 전수가 절대적이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국의 ITAR 개정 협의 거절한 미국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한ㆍ미 정상회담의 뒷얘기다. 당시 양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우주협력 전 분야에 걸쳐 한미동맹을 강화하기로 약속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달탐사 계획인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비롯, 우주탐사 공동연구를 촉진하고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 개발을 위한 지원 협력도 재확인했다.

하지만 한ㆍ미 양국의 화려한 우주협력은 말뿐이었다. 이면에 숨겨진 진실은 참담했다. 과기계에 따르면,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측에 국제무기거래규정(ITAR) 개정을 의제로 제시했다. 미국 측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ITAR란 미국 정부 규정으로, 국방 관련 미 군수품 목록에 대한 수출입을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 규정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의 허락없이 미국 기술이나 부품이 들어간 인공위성을 한국 우주발사체로 쏘아올릴 수 없다. 우리 기술로만 만든 위성이 있다면 괜찮겠지만, 한국은 자이로스코프 등 인공위성의 핵심기술을 여전히 미국에 의지하고 있다. 결국 미국이 한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으로 전용가능한 우주발사체 기술을 가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ITAR와 별도로, 미국은 그간 한국의 우주발사체 개발에 일체의 도움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의 적성국가인 러시아가 2003년 한ㆍ러우주기술협력협정 맺으면서까지 나로호 개발 등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줬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미국, 70년대 델타로켓 기술 일본에 전수 

미국은 왜 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국이었던 일본의 우주발사체 개발은 도와주면서, 또다른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은 도와주지 않는 걸까.
그 의문을 풀려면 일본의 우주로켓 개발 역사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액체연료 로켓기술 개발은 1969년 발족한 N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 미국 델타 우주발사체의 개발사인 맥도널 더글러스로부터 설계ㆍ생산ㆍ발사시스템 등에 대한 전반적 기술을 이전받는 방식이었다.  미국은 핵심기술은 비밀로 유지하는 조건의 일본의 면허생산을 허용했다. 일본은 N프로젝트 시작한지 6년만인 1975년 9월 최초의 액체로켓인 N-1을 발사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1994년에는 자체 제작한 액체수소로켓 H-2 발사에 성공하면서 우주강국 반열에 들어섰다.

우주정책 전문가인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번역서『로켓개발 그 성공의 조건』(저자 고다이 도미후미)의 서문에서 일본이 우주개발에서 미국의 협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일본은 어차피 그냥 놔두어도 우주개발이 가능할 정도로 기술기반이 확립되어 있었다는 것이 첫째 이유다. 여기에 국제상황도 일본에 유리했다. 1964년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하고, 우주개발도 박차를 가하게 되자 일본도 우주개발에 나설 계획을 세운다. 그러자 미국은 일본의 자력개발을 바라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기술을 협력해주고 통제해 나가는 편이 낫겠다는 정책을 세워 로켓기술을 본격적으로 전수해준 것이다. ”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지난달 21일 오후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2차 발사되고 있다.   이번 2차 발사는 한국이 독자 개발한 발사체에 실제 기능을 지닌 독자 개발 인공위성을 실어서 쏘는 첫 사례다.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지난달 21일 오후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2차 발사되고 있다. 이번 2차 발사는 한국이 독자 개발한 발사체에 실제 기능을 지닌 독자 개발 인공위성을 실어서 쏘는 첫 사례다.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미국 주도 MTCR 체제 이후 우주로켓 기술 전수 불가  

반면 한국의 우주로켓 기술 개발은 철저히 미국의 우려와 외면 속에 진행됐다. 박정희 대통령 당시인 1978년 개발에 성공했던 고체로켓 백곰(NHK-1)은 사거리 200㎞까지 날아가는 성과를 보였다. 고(故) 홍용식 인하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그의 자서전에서‘당시 미사일 개발 목표를 사정거리 500㎞, 탄두 중량 500㎏이었으며, 최종목표가 핵탄두를 운반하는 로켓 개발이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은 로켓 개발을 주도했던 국방과학연구소(ADD)를 해체했다.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했던 전두환 정권이 한국의 로켓 개발을 원치 않았던 미국의 뜻을 따랐던 결과였다. 조광래 전 항공우주연구원장은 “전두환 정권의 ADD 해체는 당시 선배들이 ‘사변’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우주발사체 기술은 1987년 미국이 주도한 미사일통제기술체제(MTCR)가 출범하면서 다른 나라로 이전되는 길이 막힌다. 일본을 포함, MTCR 출범 당시 이미 우주발사체 기술을 확보한 주요 7개국은 예외였다. 한국은 항공우주연구원이 1989년 발족하고 1990년 1단 고체연료 과학로켓인 KSR-1을 시작으로 우주발사체 개발에 나섰지만, 이미 국가간 우주발사체 기술 이전의 문이 닫힌 뒤였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과 우주발사체 기술을 협력하면, 핵무기의 운송수단이 될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해온 북한을 제재할 명분이 없어진다는 측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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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이야 어찌됐든 한국은 지난달 21일 결국 자력 기술로 우주발사체 누리호 개발에 성공했다. 앞으로 미국은 ITAR를 비롯, 우주발사체와 관련해 한국과 협조하게 될까.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황진영 항우연 책임연구원은 “그간 미국이 완강하게 반대했던 한ㆍ미 미사일지침이 종료될 때 깜짝 놀랐다”며“이제 우리도 자력으로 우주발사체 기술에 독립한만큼 ITAR 문제 해결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한 우주정책 전문가는 “MTCR 체제 출범 이후 ITAR를 예외적으로 허용받는 유일한 국가가 인도”라며“인도는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까지 발전했기 때문에 예외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도 인도처럼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까지 발전하지 않는다면, 현재로선 인공위성 기술을 완전히 독립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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