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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때 창업, 첫 달 매출 4만원…매출 600억 기업으로 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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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던 박예나 `육육걸즈` 대표. 당시 창업 후 3년 정도 된 시점으로, 매출은 월 평균 3000만원, 직원은 박 대표를 포함해 5명이라고 소개했다. 현재는 매출이 600억원, 직원이 100명 가까이 된다. [중앙포토]

2010년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던 박예나 `육육걸즈` 대표. 당시 창업 후 3년 정도 된 시점으로, 매출은 월 평균 3000만원, 직원은 박 대표를 포함해 5명이라고 소개했다. 현재는 매출이 600억원, 직원이 100명 가까이 된다. [중앙포토]

이달 5~8일은 ‘제1회 여성기업 주간’이다. 지난해까지 7월 중 하루를 정해 ‘여성경제인의 날’ 행사를 열어왔던 것에 비해 올해부터는 행사가 대폭 커진다. 지난해 말 ‘여성기업 지원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매년 7월 첫째 주가 법정 여성기업 주간으로 지정됐다. 따라서 이번이 여성기업과 여성기업인을 격려, 응원하는 첫 번째 공식 행사다. 한국 기업 689만 개 중 여성이 소유하거나 경영하는 기업은 277만 개, 비율로는 40.2%에 이른다.

중앙일보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기업인의 목소리를 2회에 거쳐 싣는다. 가정주부 출신으로 제조·가공 사업에 나선 여장부를 다룬 1회에 이어, 이번에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여성 경영인 스토리다.

고교 때 창업, 첫 달 매출 4만원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블로그를 개설해 판매 경험을 쌓았다. 고교 진학과 함께 인터넷 쇼핑몰을 만들어 지금까지 15년째 대표를 맡고 있다. 박예나(30) 육육걸즈 대표는 이렇게 두려움이 없이 시작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박 대표가 일찌감치 사업에 뛰어든 데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영향을 끼쳤다. “부모님이 동네에서 작은 횟집을 운영했는데 서빙도 하고 설거지도 하면서 돈 버는 게 정말 힘든 일이구나 느꼈습니다. 어떻게 해야 돈이 벌리는지 어렸을 때부터 고민한 것 같아요. 어떻게 매출이 나오는지 구조를 어렴풋하게나마 익혔습니다.”

특히 옷을 많이 좋아했고, 자신에게 맞는 66사이즈만 하는 쇼핑몰이 없다는 데 착안해 창업을 결심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로 인해 우여곡절도 겪었다.

박 대표는 “고등학교 때 사업자등록증을 내러 세무서에 갔는데 처음엔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반려하더라”고 말했다. 이후 세무서를 설득해 겨우 사업자등록증을 받은 그는 회사를 15년 만에 매출 600억원대의 회사로 키웠다. 중학교 3학년 때 블로그를 개설해 용돈 10만원을 투자해 첫 달에 4만원을 벌었던 일을 생각하면 놀랄만한 발전이다.

“처음엔 동대문시장에 가서 물건 떼올 돈이 없었어요. 당시 구제옷이 유행이라 엄마 아빠가 안 입는 옷을 꺼내 팔기도 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성실하게 한 것밖에 없어요. 전국에 있는 소비자가 저희 옷 사는 게 즐겁고 매출도 올라가는 게 즐거웠어요.”

육육걸즈 신사옥 모습. [사진 육육걸즈]

육육걸즈 신사옥 모습. [사진 육육걸즈]

그는 여성기업인이어서 힘들었던 점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회사 직원의 80%도 여성이고, 소비를 주도하는 건 여성이라고 생각해서 오히려 여성이라는 점이 강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위기를 겪기도 했다. 영어·중국어·일본어·대만번체로 쇼핑몰을 확대하다가 코로나19 사태, 인건비 상승, 원단 가격 상승 등으로 매출이 고꾸라졌다. 하지만 지난해 스타필드 등에 오프라인 매장 2개를 열고, 폐페트병 친환경 원사를 이용한 청바지를 출시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박 대표는 특히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창업은 나이 불문하고 꼭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사업을 1년만 해보고 그만두지 말고 2년, 3년 버텨야 합니다. 저도 거의 2년간은 매출이 없다시피 했지만, 재미있어서 그 시간을 버텼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창업을 시작하는 이들이 너무 빨리 일찌감치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62년간 한우물…샤넬도 찾는 ‘벨벳 여왕’

경북의 벨벳 직물 제조업체인 영도벨벳의 류병선(82) 대표는 62년간 한우물을 판 경우다. 1960년에 창립해 벨벳이라는 직물 단일 아이템으로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시작은 스무 살 때였다. 2남2녀를 키우던 그는 남편 고 이원화 회장과 공동 창업했다. 당시만 해도 수입만 하던 벨벳을 국산화해 보겠다며 연구에 뛰어들었다. 두 사람은 온갖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벨벳 생산에 성공했다.

류 대표는 “사업을 하며 여러 어려움이 있었고 공장 사정으로 6개월 일하고, 6개월 쉴 때도 있었지만 일하는 사람의 생계를 보장하려고 했다”며 “돈 계산을 아직도 잘 못 하지만 최고로 멋진 회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했다”고 말했다.

국산화에만 그친 것이 아니다. 그는 생산하는 제품의 98%를 해외 120여 개국에 수출하는 기업으로 키워냈다. 샤넬이나 구찌도 고객사였다. 벨벳 패션 아이템으로는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다.

대구 삼덕동에 벨벳 전문 전시관인 ‘영도다움’도 오픈했다. “대구에 벨벳전시관을 만들겠다고 하니 처음엔 주변에선 사람들이 서울에 지어야 한다’고 말리더군요. 그래도 나는 전세계 사람들이 이곳(대구 경북)으로 오게 만들겠다고 생각했고, 실제 코로나19 이전에는 중국·일본 관광객들도 다녀갔습니다.”

류 대표는 현재는 아들과 공동대표로 일하며 최근엔 액정표시장치(LCD) 디스플레이 산업과 전기차에 들어가는 전기 관련 벨벳 제품을 개발 중이다.

1980년대 류병선 영도벨벳 대표가 직원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영도벨벳 홈페이지 캡처]

1980년대 류병선 영도벨벳 대표가 직원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영도벨벳 홈페이지 캡처]

“한때는 공장 옆에 붙어 있는 집에 살았어요. 출퇴근이 따로 없었지요. 시어머니와 유모 등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을 키우며 일을 병행했습니다. 그만큼 일이 참 좋아요. 여성 경영인은 회사와 가정을 양립하는 게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이자 아내라는 걸 잊을 필요는 없다고 봐요. 스스로에게 당당한 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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