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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과학기술로 사회문제 해결” 무보수 선언한 김정호 브라이언임팩트 이사장

중앙일보

입력

재단 이사장이지만 ‘무보수’로 일한다. 보너스·주식·스톡옵션·배당도, 법인카드도 없다. 업무에 들어간 비용은 전적으로 본인 부담. 김정호(55) 브라이언임팩트 신임 이사장 얘기다. 브라이언임팩트는 지난해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며 세운 사회공헌재단이다. 김 창업자는 지난 5월 재단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절친한 김 이사장에게 자리를 넘겼다.

김정호 이사장은 대표적인 ‘벤처 1세대’다. 네이버 공동창업자, 전(前) NHN 한게임 대표, 한국게임산업협회 회장 등을 거쳤다. 카카오·블루홀·케이큐브벤처스의 초기 투자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12년에는 발달장애인의 지속가능한 고용을 위한 사회적 기업 ‘베어베터’를 설립했다(▶중앙SUNDAY 4월16일 11면). 장애인을 직접 고용하기 어려운 기업이 베어베터 물건을 구매하면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감면받는 연계고용 모델로, 지난해 465개 기업과 거래했다. 5명이었던 발달장애인 직원은 10년 만에 약 250명까지 늘었다. 연 매출은 100억원을 넘겼다. 흑자도 내고 있다. 지난달 29일 중앙일보 본사에서 만난 김 이사장은 “베어베터에서 얻은 노하우에 과학·기술을 활용해 근본적인 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단순히 기부만 하는 게 아니라 사회 문제의 해법까지 내놓는 ‘한국판 빌&멀린다게이츠 재단’을 꿈꾼다는 것.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가 6월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가 6월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Q. 재단은 어떻게 운영하나.

A. “연말에 경영계획을 짜서 김범수 창업자가 돈을 출연하면 매년 다 소진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돈을 (재단 기금에) 미리 넣어 두지 않는 것이다. 올해는 연말이 돼 봐야 알겠지만, 최소한 200억원 정도는 집행할 것 같다.”

Q. 왜 이런 방식을 택했을까.
A. “한국에서는 기업의 공익재단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안 좋다. 긍정적인 사례가 별로 없고 우회 증여 등 각종 폐단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범수 창업자에게도 대놓고 물었다. 첫째, 재단에 돈을 쌓아 둘 건지. 둘째, 재단 돈으로 카카오 주식을 살 건지. 셋째, 자녀를 등기·비등기·상근이사 등으로 근무하게 할 건지. 그럴 거면 나는 하고 싶지 않으니 솔직히 말해 달라고 했다. (김 창업자의) 대답은 이랬다. ‘재단 돈은 쌓아 두지 않을 테니 다 써도 된다. 주식·채권·부동산은 절대로 안 한다. 자녀도 재단에서 일하지 않을 거다.' 그래서 수락했다. 대신 나도 진정성을 갖기 위해 공짜로 일하기로 했다.”

Q. 무보수로 일한다니 김범수 창업자 반응은.
A. “아무것도 안 받겠다고 말하니 (김 창업자가) ‘그러면 어떻게 일을 시키냐’고 묻더라. 나는 ‘뭐 어떻냐’고 말했다. 김 창업자는 자기 돈을 내서 사회공헌 한다는데, 나도 가진 돈이 있는데 (월급을 받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베어베터에서도 10년 동안 월급을 받지 않았다. (이 재단에서도) 월급·법인카드·차량을 지원받지 않겠다고 했다. 마음에 안 들면 나를 잘라도 되고, 나중에 본인이 직접 하고 싶으면 와서 (운영을) 하라고도 말했다.”

Q. 김 이사장도 100억원 이상을 기부했다고 알려져 있다. 기부를 계속하는 까닭은.
A. “(기부는) 공감 없이는 못 한다. 어릴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택시운전을 하셨다. 어렵게 자랐으니 당연히 공감이 간다. 처음으로 억 단위 이상을 기부한 건 모교인 고려대학교에 부모님 이름으로 장학기금을 만들었던 때. 시작할 땐 1억만 해도 크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하다 보니 100억원을 넘겼다. 김범수 창업자도 비슷하다. 건어물 가게 장남으로 어렵게 자랐고 가족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러니 (사회적 약자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나도 어려웠는데, 저 사람도 어렵겠지. 나는 졸부가 됐으니 기부라도 하자’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의 사회공헌재단 브라이언임팩트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사진 브라이언임팩트]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의 사회공헌재단 브라이언임팩트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사진 브라이언임팩트]

브라이언임팩트의 설립 목적은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혁신가들과 성실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지원해 소셜 임팩트(social impact·혁신적 변화로 긍정적 영향 확산)를 달성”하는 것. 지난 3월 다양한 단체를 선정해 총 100억원을 지원하는 ‘임팩트 그라운드(Impact Ground)’로 재단의 첫 활동을 시작했다. 앞으로는 과학기술 사업을 본격 지원할 계획이다. 과학기술을 활용해 굵직한 사회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겠다는 취지다.

Q. 브라이언임팩트 재단 소개에 ‘기술이 사람을 도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고 돼 있다. 더 구체적으로 소개한다면?
A. “재단에서는 크게 두 가지 부문을 지원하려 한다. 하나는 사회공헌, 다른 하나는 과학기술이다. 지금까지는 이공계에서 기술로 사회를 이롭게 한다는 것이 (기부와는) 연결이 잘 안 됐다. 우리 재단이 (연결의) 계기가 되고 싶다. 현재 직원이 나 포함 총 8명인데 과학기술 부문에 추가로 9명을 영입하려 한다. 개인적으로 기획한 것은 베어베터의 노하우를 이용한 정보기술(IT)서비스다. 전국의 미혼모·노숙자 등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일종의 ‘알바천국’ 같은 앱을 내년 초에 선보일 예정이다. 일자리 매칭과 함께 채용절차, 근태관리, 급여정산 등 인사시스템도 갖춘 서비스다. 관리자에겐 보상도 준다. 만약 100명의 노숙자를 관리했다면 100명이 받는 총급여의 50%를 관리비로 지급하는 식이다. 꽤 큰돈이다. 들어가는 비용·보상은 전부 재단이 지불하게 된다.”

Q. 다른 계획도 있나.
A.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사안들이 여럿 있다. 미혼모 대상으로 파이썬 프로그래밍 교육을 무상 제공해 일정 자격을 갖추면 일자리를 연결해줄 수도 있고, 보육원을 나온 자립준비 청년들에게 취업 연계형 프로그래밍 교육을 하는 방안도 대학 등과 함께 고민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국가가 지원하는 이 같은 프로그램에 쉽게 접근할 수 있으나 (사회적 취약계층은) 접근이 어렵다. 매일 출석만 해도 150만원을 준다지만 미혼모만 해도 어린아이를 키워야 하니 출석도 힘들다. 결국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돈이다. 각종 지원 사업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도 돈이 많이 든다. 재단이 그 다리가 돼 주려 한다. IT를 연결고리 삼아 사회문제를 영속적이고 지속적이고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싶다.”

Q. 문제해결 방법에 대한 김범수 창업자의 생각은.
A. “김범수 창업자는 ‘남을 돕는 사람’을 돕고 싶다고 말한다. 가령, 김 창업자는 카카오펠로우(소셜벤처·창작자·연구자 등 국내 사회혁신가를 지원해주는 프로젝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카카오펠로우는 돈은 안 되지만,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을 지원해주는 프로젝트다. 매달 활동비를 주고 본인이 하고 싶은 활동을 할 수 있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와준다. 카카오가 하던 프로젝트인데 이걸 우리 재단이 가져오게 됐다. 카카오펠로우를 최대 4년까지 확대하고, 월 지원금도 100만원 더해 매달 300만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Q. 그 생각에 동의하나.
A. “(김 창업자와) 견해의 차이는 있다. 남을 돕는 사람이 문제를 잘 해결하다가도, 가끔은 주객전도로 자기 이익을 좇는 일도 생기지 않나. 우스갯소리로 ‘통일을 가장 반대하는 건 통일부’라는 말도 있지 않나. 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자기 자신이나 자기 단체의 존재가 무의미해져도 괜찮다고 할 정도로, 진정성 있는 곳을 발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해결돼 개인·단체의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면 그들의 재출발까지 할 수 있도록 (재단이) 도와주는 거다. 김 창업자와 지속적으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정호 이사장은 “10년 전에는 50인 이상 법인회사에 고용된 중증 발달장애인이 다 합쳐도 2000명이었는데, 지금은 2만명이 넘는다. 한 분야를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이 있는데 이렇게까지 될 줄은 나도 몰랐다”고 했다.[사진 베어베터]

김정호 이사장은 “10년 전에는 50인 이상 법인회사에 고용된 중증 발달장애인이 다 합쳐도 2000명이었는데, 지금은 2만명이 넘는다. 한 분야를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이 있는데 이렇게까지 될 줄은 나도 몰랐다”고 했다.[사진 베어베터]

Q. 베어베터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인가.
A. “베어베터도 언젠가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발달장애인 고용) 문제가 해결되는 게 설립 목표이기 때문이다. 처음 사업할 때 다들 ‘중증 장애인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발달장애인을 정규직 고용해 최저임금보다 더 주는 회사가 말이 되느냐’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입증해냈다. 그런데 지방은 여전히 다르다. 기업이 없으니 중증장애인 일자리도 없다. 그래서 베어베터가 지방에 ‘중증장애인 사업장’을 만들어 새 모델을 만들었다. 대기업이 지분투자를 하면 ‘장애인 고용’으로 간주될 수 있는 방식인데, 대구 1호점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사업장이 늘수록 기업은 베어베터 쿠키를 사줄 필요가 없어진다. 지분투자로 장애인 고용 부담금 문제가 해소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어베터의) 원래 목표를 달성했다면, 우린 없어져도 된다.”

Q. 가장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A. “항상 원칙이 중요하다. 원칙대로 끊지 못하면 엉망이 되기 쉽다. 베어베터 운영하면서 ‘사회적 기업·ESG 펀드 쪽엔 마땅히 투자할 데가 없으니 베어베터가 상장해보라’는 조언도 들었다. 그렇게 좋은 모양새를 내자면 얼마든지 할 수도 있다. 상장하면 우리사주를 발달장애인 직원들과 나눌 수도 있고, 기업가치 1000억원만 나와도 그중 70%는 내가 챙길 수 있지 않았겠나. 하지만 그렇게 안 했다. ‘일단 재산을 만들고 나중에 좋은 곳에 쓰면 되지’라는 식으로 (기준이) 오락가락하면 안 된다. 대신 나는 투자는 처절하게 한다. 주식투자는 ‘착한 일’을 하려는 게 아니라 투자 수익을 얻는 게 목적이니까. 자본주의 논리를 철저히 따른다.”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가 6월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가 6월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Q. 임기가 2년이다. 각오를 말한다면.
A. “베어베터 창업후 첫 3년간은 사람들이 안 믿었다. 당시 ‘이제 장애인 갖고 장사하느냐’는 말도 들어봤다. 신뢰는 행동이 누적돼야 한다. 적어도 1000일은 해야 ‘어, 진짜인가’ 생각할 거다. 나중에 브라이언(김 창업자)이 재단이 다시 합류할 수도 있을 텐데 그땐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할 것이다. 나는 그 전에 틀을 짜놓으려 한다. 개인적으로는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고 싶다. ‘빌&멀린다게이츠 재단’처럼, 일반 자선단체가 아니라 프로젝트를 만들고 문제해결을 위해 연구하는 곳이 한국에도 생기면 좋지 않겠나. 기존 대기업 재벌들의 재단과는 다르고 싶다. ‘와, 진짜 진정성 있게 잘한다’ 이런 브랜드를 얻고 싶은 욕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