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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참아? 그럼 이사가라" 코 찌르는 삼겹살·생선, 답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마포구 한 빌라에 사는 서모(30)씨는 얼마 전 집 앞에 붙은 쪽지를 보고 당혹감을 느꼈다. “저녁에 생선 냄새가 심하게 나니 생선 굽는 걸 자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정작 서씨는 집에서 생선을 구워 먹은 적이 없다고 한다. 냄새의 출처를 그의 집으로 오해한 이웃 주민이 쪽지를 붙이고 간 것이다. 서씨는 “생선 정도는 생활냄새라고 생각해 참고 있었는데 자칫하면 이웃 갈등으로 번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웃 간 갈등 일러스트. 연합뉴스

이웃 간 갈등 일러스트. 연합뉴스

‘생활냄새’와 ‘악취’ 사이

최근 ‘층간 냄새’가 다세대주택의 분쟁 거리로 떠올랐다. 특히 기온이 높아져 냄새가 더 잘 퍼지는 여름철엔 층간소음 못지않게 많은 냄새 민원이 관리사무소에 들어온다고 한다. 경기 구리의 한 아파트 관리인은 “이웃집에서 삼겹살이나 생선 굽는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나니 조처를 해달라는 민원이 늘었다”며 “어느 집에서 냄새가 나는지 알기도 어렵고, 주민들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어서 뾰족한 방법은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층간 냄새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하다는 점도 갈등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인천 층간 소음 흉기 난동’ 사건을 비롯해 수차례 공론화된 층간 소음 문제와 달리 층간 냄새는 피해 기준이나 실태에 대한 논의가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다. 서울 송파구에서 친구와 자취하는 김모(28)씨는 “이웃집에서 청국장 냄새가 올라올 때마다 친구는 ‘관리실에 민원을 넣어야 한다’고 하는데 선뜻 수긍하기가 어렵다. 냄새를 역하다고 느끼는 기준이 사람마다 달라서 판단이 어렵다”고 했다.

프라이팬에 구워진 생선 자료 사진.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무관함. 윤경희 기자

프라이팬에 구워진 생선 자료 사진.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무관함. 윤경희 기자

담배 냄새 민원 1년 새 20% 증가

집안 내 흡연으로 인한 담배 냄새도 이웃 간 갈등의 단골 소재다. 최근까지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간접흡연 피해를 호소한 시민도 적지 않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층간 간접흡연 피해 민원은 2844건으로 2386건을 기록한 전년과 비교했을 때 약 2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층간 담배 냄새에 대한 법적 규제가 전무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흡연자의 자율에 맡기고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동주택관리법엔 “공동주택의 입주자들은 발코니, 화장실 등 세대 내에서의 흡연으로 인해 다른 입주자 등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관리사무소장이 입주자에게 흡연 중단을 요청할 수 있다는 조항도 있지만, 법적 강제성이 없어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이른바 ‘금연아파트’의 경우 외부 공용공간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지만, 각 세대 안에서의 금연을 강제할 수 없다는 게 맹점이다. 지난달 26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엔 집에서 담배를 피우다 이웃들의 항의를 받은 흡연자가 “발코니, 화장실 등 전용 공간에선 금연을 강제할 수 없다. 아이들 있는 집은 이사를 하시든지 하면 된다”고 쓴 호소문이 올라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논란이 일었던 흡연자의 호소문. 보배드림 페이스북 캡처

지난달 26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논란이 일었던 흡연자의 호소문. 보배드림 페이스북 캡처

“입주민 의식 개선 통해 분쟁 방지”

층간 냄새로 인한 갈등 조율이 어려운 건 소음 데시벨(㏈) 등 법적 기준이 마련된 층간 소음과 달리 피해를 입증할 객관적 기준이 없어서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법으로 분쟁을 해결하기 어려우니 입주민들의 인식 개선 등을 통한 자정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층간 냄새 문제를 법으로 규제하긴 쉽지 않다. 분쟁이 발생하기 전에 냄새가 다른 집으로 퍼지는 걸 막는 게 우선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방송을 통해 ‘음식을 할 땐 꼭 환기하자’고 권장하는 등 주민들의 의식을 바꾸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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