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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종순의 미래를 묻다

다시 선택한 원전 시대, 폐기물 처리 본격 고민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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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포화 상태 접어든 방사성 폐기물

송종순 조선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송종순 조선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태초에 방사능이 있었다. 지구의 탄생은 방사성 물질 덩어리에서 시작하여 수십억 년에 걸쳐 안정화돼 왔다. 지금도 지구에는 자연 방사선과 인공 방사선이 공존한다. 지구에서 인간의 삶은 방사능과의 공생에서 비롯되어 왔다.

방사성은 말 그대로 방사선을 방출하는 성질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원자핵이 입자를 방출하거나 전자파를 내서 자연스럽게 붕괴하는 성질이 있다는 뜻이다. 방사능은 방사선을 방출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고, 방사능을 가진 물질을 방사성 물질이라고 부른다. 핵종의 반감기란 어떤 특정 방사성 핵종의 원자수가 방사성 붕괴로 인해 원래 수의 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국내 원자력발전의 연료가 되는 우라늄-235의 반감기는 7억년이다.

원자력은 탄소배출 없는 에너지
9년 뒤 사용후 핵연료 시설 포화

늦어도 올해 증설공사 착수해야
공론화·법제화 등 후속과정 부진

선진국, 폐기물 처분장 건설 박차
과학적 재활용 연구도 속도 붙어

태양광·풍력발전도 환경 훼손 소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지난달 30일 경북 경주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을 둘러보고 있다. 월성원전 맥스터 7기 증설은 1년 7개월 공사 끝에 올 3월 마무리됐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지난달 30일 경북 경주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을 둘러보고 있다. 월성원전 맥스터 7기 증설은 1년 7개월 공사 끝에 올 3월 마무리됐다. [연합뉴스]

태초에 폐기물이 있었다. 모든 에너지를 얻는 과정에서는 불가피하게 폐기물이 발생하거나, 환경 훼손이 수반된다. 화석 연료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면, 다량의 폐기물과 환경오염이 발생하며, 온실가스 배출도 피할 수 없다. 청정에너지로 불리는 태양광 발전이나 풍력발전도 폐기물이나 온실가스의 발생이 적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간헐성이라는 한계점도 존재하고, 환경 훼손 문제에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에서는 1978년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상업운전을 개시한 이래, 현재 국내에는 24기의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고 있으며, 현재 4기의 원전이 건설 중이다. 비록 2017년 6월에 고리 1호기가 영구 정지했으나, 현재 국내 전력수요의 약 30%를 원자력 발전에 의해 공급하고 있다.

원자력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면서도, 대용량의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 입증된 유일한 에너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최근 유럽연합(EU)의 녹색 에너지 분류체계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된 바 있다.

문제는 원전 운영에서 나오는 방사성 폐기물이다. 여기에 함유된 방사성 핵종은 크게 핵분열 생성물 핵종과 초우라늄원소 핵종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핵분열 생성물 핵종은 베타선과 감마선을 방출하며, 반감기가 짧은 단반감기 핵종이 주를 이루나, 테크네튬(Tc)-99, 세슘(Cs)-135 및 아이오딘(I)-129 등과 같이 반감기가 긴 핵종도 일부 포함돼 있다.

초우라늄원소 핵종은 일반적으로 반감기가 매우 길며, 알파선을 방출하기 때문에 인체에 미치는 위험도가 크다. 방사성 폐기물은 시간이 지나면 그 속에 함유되어 있는 방사성 핵종이 붕괴해 소멸하면서 위험도가 저절로 감소하는 특성이 있다.

격납과 격리, 두 가지 원리

방사성 폐기물 처분의 안전성은 격납과 격리라는 두 가지 기본 원리에 의해 보장된다.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한 후, 붕괴열이 많이 발생하고, 폐기물 중 방사성 핵종의 농도가 높은 초기에는 격납의 원리가 적용된다.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한 직후, 붕괴열이 많이 발생하고, 이러한 붕괴열이 자연적으로 감소하도록 한다.

설정된 격납기간 이후에는, 이러한 방사성 핵종이 방사성 폐기물로부터 아주 서서히, 조금씩 유출되는 것을 허용하고, 유출된 핵종이 생태계에 도달하는 것을 지연시켜 방사성 붕괴에 의해 소멸시키고, 그래도 소멸하지 않고 남은 핵종은 이동 중에 분산되어 희석되도록 함으로써, 방사성 폐기물이 인간과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

지중(地中) 처분은 방사성 폐기물을 지하에 격리하는 처분 대안이다. 토양 및 지층은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변화를 거쳐 안정한 상태로 변화돼 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구조나 특성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며, 설사 변화가 추가로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 속도는 극도로 느릴 것이다.

고준위 폐기물 처분방식으로는 지하 수백m 깊이에 위치한 지질학적으로 안정한 암반층에 처분터널을 건설해 고준위 폐기물을 처분하는 심지층(深地層) 처분 방식과 지표에서 수㎞의 심도까지 대구경 시추공을 굴착하고, 이 시추공 내에 고준위 폐기물을 처분하는 심부시추공 처분 방식이 있다. 중·저준위폐기물 처분에는 비교적 심도가 얕은 지하 토양층에 폐기물을 격리하는 천층(淺層) 처분 방식이 많이 사용된다.

건식 저장시설 건설에 7년 걸려

한국은 2014년부터 경주에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운영 중이며, 사용후 핵연료는 중간저장을 거쳐 최종 심지층 처분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다만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사용후 핵연료는 발전소 내 임시 저장을 거쳐 중간 저장으로 이어지는데, 아직 중간 저장 부지 확보가 안 돼 임시 저장 능력을 초과하게 되면 이는 원자력 발전의 중단을 초래할 수 있다. 국내 유일 가압중수로인 월성원전의 경우는 맥스터라는 건식 임시저장 시설을 운영 중이며, 그 외 모두 가압경수로인 국내 다른 원전의 경우 아직 추진이 지연되고 있다.

한국의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 계획은 2016년 완공을 목표로 했으나 중·저준위 처분장 건설과 분리 추진하기로 정책이 바뀌었다. 또 2003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유치 문제를 두고 유혈사태까지 일어났던 부안사태 등 여러 사회적 갈등이 있었지만 2008년 방사성폐기물관리법 제정을 계기로 중·저준위 폐기물의 경주 처분장 확보가 가능해졌다.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의 경우 발전소 내 임시 저장 능력의 포화와 연계됨에도 불구하고 공론화 등의 논의에서 장기 처분 이슈에 매몰되어 계획을 확정하기 어려웠다.

오는 2031년이면 원전별로 임시저장 시설이 포화하기 시작한다. 건식 저장시설을 짓는 데 7년 정도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증설 공사를 시작해야 한다. 그간 공론화 논의에 지역 및 시민단체의 참여를 추진했지만, 원자력 발전의 계속 추진 논란과 연계해 관리 기본계획 확정 및 법제화 등의 후속 조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핀란드·미국·중국 등의 대처법

다른 나라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고 있을까. 핀란드는 2021년 세계 최초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의 운영허가를 신청했다. 그동안 불확실성의 영역에 있었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의 안전성 입증이 이제 과학과 기술에 기반한 확실성의 영역에 들어선 것이다. 핀란드의 성공에는 지질과 공학적 측면뿐 아니라 부지 선정 과정과 제도 및 전문가에 대한 핀란드 특유의 신뢰 문화가 크게 작용했다. 스웨덴·프랑스 등에서도 조만간 건설 및 운영허가 신청이 이어질 것이다.

미국은 사용후 핵연료를 네바다 유카산맥 아래에 매장하는 계획을 추진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중단하고 다시 부지를 선정 중이며, 중국은 2050년까지 고비 사막에 최종 처분장 시설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도 처분장 확보를 위해 부지 선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지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당초에 없던 사용후 핵연료 중간 저장을 도입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의 위탁 재처리도 추진하고 있다.

과학기술은 방사성 폐기물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줄 수 없을까. 사용후 핵연료는 재처리 혹은 재활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존의 습식 재처리는 플루토늄이라는 핵무기의 핵심 물질을 만들기 때문에 핵 비확산 통제로 전 세계적으로 규모가 줄고 있다. 이 때문에 순수한 플루토늄과 우라늄 분리를 하지 않는 건식 방법에 의한 재활용 방안을 대안으로 추진 중이다. 한국도 고속로와 연계한 파이로 방식의 재활용을 활발하게 연구해 한·미 공동연구를 진행한 바 있으며 실증 단계의 연구 추진을 계획하고 있다.

전문가 믿고 국민과 소통해야

미래기술이긴 하지만 또 다른 방법도 있다. 벨기에는 미임계 원자로와 가속기를 활용한 핵변환 연구 프로젝트로 진행 중이다. 이론적으로 핵분열 생성물은 대략 300년 정도면 없어지고, 나머지 초우라늄 원소는 핵변환을 통해 안정된 동위원소나, 단반감기 원소로 바꿔주면 된다. 핵변환이 성공할 경우 고준위 폐기물의 발생은 거의 제로에 가깝게 된다. 과학계는 2030년쯤이면 이런 기술이 실용화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탈(脫) 탈원전’의 시대가 시작됐다. 연구개발을 통한 해결과 별도로, 지속적인 에너지 정책을 위해 정부와 국회는 현재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정책을 확립하고 추진해야 한다. 2015년 사용후 핵연료 관리 공론화에 이어 2021년 재검토까지 이미 진행된 바 있고, 이제는 법제화와 추진체계를 확정할 때다.

마침 EU에서도 원자력 발전의 지속성 확보를 위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정책의 확립을 요구하고 있다. 핀란드에서의 성공 비결인 제도와 전문가에 대한 신뢰 확보, 그리고 프랑스에서의 성공 비결인 의회를 통한 소통 및 현안 해결 등을 타산지석 삼아 우리나라의 성공 비결을 만들어내야 한다.

◆송종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핵공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조선대에서 원자력공학을 가르치며 연구하고 있다. 현재 사용후핵연료 핵심기술개발사업단 공동운영위원회 위원장과 한국수력원자력 원전해체연구소 이사를 맡고 있다.

송종순 조선대 원자력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