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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Fed가 기름을 찍어낼 수는 없다"…경기침체 공포 확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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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필규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김필규 워싱턴특파원

김필규 워싱턴특파원

‘미국 경제는 연착륙, 경착륙, 스태그플레이션 중 어디로 가는가.’

경기침체 바라보는 미 전문가 전망

3일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낸 보고서 제목이다.

41년 만에 최악이라는 인플레이션에 지난달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p나 올렸다. 이번 달에도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거란 전망에 시장에선 침체에 대한 공포가 더 커졌다.

지난달 29일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날 뉴욕 증시는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로 일제히 떨어졌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상반기 동안 약 20% 하락해 1970년 이후 최악의 상반기를 기록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29일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날 뉴욕 증시는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로 일제히 떨어졌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상반기 동안 약 20% 하락해 1970년 이후 최악의 상반기를 기록했다. [AP=연합뉴스]

몇달 전만 해도 연준은 경제 성장 속에 실업률만 살짝 오르는 연착륙을 기대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1965년과 1984년, 1994년 통화긴축 후에도 연착륙에 성공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CRS는 인플레이션 정도 등 당시와는 환경이 다르다고 반박한다. 투자은행 파이퍼 샌들러에 따르면 1961년 이후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총 9번 기준금리를 올렸는데, 단 한 번을 빼고 모두 경기침체가 뒤따랐다.

결국 실업률이 급등하고 경기가 후퇴하는 '거친 착륙'이 불가피하다는 게 CRS의 전망이다.

또 경제 주체들이 앞으로 1년간 전망하는 기대 인플레이션을 속히 잡지 못하면 1970년대식의 스태그플레이션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기침체 왜 오나

코로나19가 끝나가며 소비자들의 돈 쓰겠단 의지는 엄청나게 커졌다. 그간 쓸 곳도 마땅치 않았는데, 정부가 지원금까지 풀었고 임금도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급이 문제가 됐다. 공장 가동이 제대로 안 됐던 데다 ▶글로벌 물류난 ▶변이 바이러스 창궐로 인한 중국 봉쇄 ▶러시아 에너지 수입 금지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물가가 치솟았다.

정치권에선 이참에 한몫 벌려는 기업인들의 탐욕, 이른바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도 인플레이션에 한몫했다고 비판한다.

결국 연준은 1994년 이후 가장 큰 폭의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사람들이 빚을 내서 차나 집을 사는 것을 막아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너무 급격한 속도 조절에 아예 경제를 후진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금리 인상의 효과를 불신하는 쪽에선 "바보야, 문제는 공급이야"라고 지적한다.

클라우디아 삼 전 연준 이코노미스트는 뉴욕타임스(NYT)에 "연준이 기름이나 밀을 찍어낼 수는 없다"면서 "연준 혼자 인플레이션과 싸우면 사람들만 더 고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연준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경기침체 우려가 제기되지만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물가안정성 회복에 실패하는 게 더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AP=연합뉴스]

연준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경기침체 우려가 제기되지만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물가안정성 회복에 실패하는 게 더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AP=연합뉴스]

◇예상 지표론 이미 경기침체

미국에서 경기침체 여부를 공식 선언하는 것은 주요 경제학자들의 모임인 전미경제분석국(NBER)이다. "경제 전반에 걸쳐 퍼지고 수개월 이상 지속하는 심각한 경제활동 둔화 여부"를 가지고 판단한다.

시장에선 일반적으로 2분기 연속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하면 경기침체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지난달 발표된 미국의 지난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6%였다. 지난 1일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은 미국의 2분기 성장률을 -2.1%로 예측했으니, 이대로라면 미국 경제는 이미 침체에 들어섰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GDP 숫자만 가지고 경기침체를 단언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소비자의 씀씀이가 줄어서라기보다 해외로부터 수입이 증가한 탓이 크고, 수요는 여전히 강하다는 것이다.

글로벌 차원에선 경기침체가 왔는지는 전년도 대비 1인당 GDP 성장률의 증감으로 따지기 때문에 결과를 알기까지 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스태그플레이션 경고까지 

올 초부터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 등은 스태그플레이션을 경고해왔다. 물가가 떨어질 기미는 안 보이는데 경기 둔화 속도는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세계은행(WB)도 지난달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처음 언급했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하종림 WB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경기 둔화 속도가 70년대 오일쇼크 때의 2배 이상으로 나왔다"며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상당하다는 경고음을 내야겠다고 결론 내렸다"고 설명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오면 정책 당국 입장에선 물가를 잡으면서 동시에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 않다.

하 이코노미스트는 “실질소득은 줄고 생필품 가격은 오르니 가난한 계층, 저소득 국가가 더 고통받게 된다”고 말했다. 선진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환율이나 주가 등 개발도상국 금융시장에서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설명이다. 그는 "소규모 개방경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곳에선 충격에 대비해 물가 안정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고 시장 기능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