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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청소노동자와 다정한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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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여성국 기자 중앙일보 기자
여성국 팩플팀 기자

여성국 팩플팀 기자

난간을 잡거나 두드리며 계단을 내려가는 습관이 있다. 언젠가 한여름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며 밖으로 나가는데 누군가 땀을 흘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먼지가 쌓이는 계단 난간과 안전봉을 닦는 청소노동자였다. 그사이 한 노인이 반대편 안전봉을 잡고 계단을 오른다. 청소하는 그를 보고서야 노인의 손과 내 손이 그간 더럽혀지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렇듯 정갈한 일상 뒤엔 본분을 다하는 청소노동자의 노동이 숨어있다.

“나는 우리 애들한테 청소한다고 안 해. 식당 일 한다고 해. 애들이나 사위가 회사 화장실에서 청소아줌마 보면 내 생각하고 걱정할까 봐. 식당이 나아 보이잖아.” 코로나 확산 초기, 회사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다 아주머니 두 분의 대화를 듣게 됐다. “그럼 코로나 걸리면 안 되겠네. 조심해”라고 다른 이는 맞장구쳤다. 누군가는 자기 일을 가족에게 숨기고 싶어할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청소는 타인의 오물을 마주하는, 가족들이 안쓰러워할 수 있는 고된 일이다.

연세대 캠퍼스 전경. 일부 학생들은 청소노동자 시위가 수업권을 침해한다며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뉴스1]

연세대 캠퍼스 전경. 일부 학생들은 청소노동자 시위가 수업권을 침해한다며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뉴스1]

10년 전쯤 모교 청소노동자들이 며칠 파업을 했다. 시험 기간을 앞두고 도서관·화장실 등은 테이크아웃 컵 등 쓰레기가 넘쳤다. 불편을 느끼는 와중에 벽에 붙은 종이 한 장을 봤다. ‘학생들 시험 기간인데 쓰레기를 치워주지 못해서 미안해요’란 손글씨였다. 이해나 연대를 바라는 구절은 없었다. 노동권을 행사하면서도 학생들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그들이 미안해하는 것이 미안했다. 시위·파업을 불편하게 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학교의 적극적 해결을 요구하는 학생이 늘었고 그 덕에 노사는 접점을 찾은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 연세대 학생이 청소·경비노동자 시위로 수업권을 침해당했다면서 이들에게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노조는 임금인상, 퇴직 인원 충원,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해왔다. ‘함께 살기 위한 개인주의 연습’이란 부제를 단  『다정한 무관심』에서 한승혜 작가는 “나와 다른 타인의 개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적당한 무관심의 사회. 그러면서도 곤경에 처한 사람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약자와 소수자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미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다정한 사회”라 말한다.

청소 노동을 가족에게 알리고 싶지 않을 수 있는 이, 시위와 파업에도 학생들을 먼저 생각하는 이들이 나선 이유를 고소인은 한 번 더 생각했으면 한다. 깨끗한 학교를 누릴 수 있던 것도 청소노동자 덕 아닌가. 실명을 드러낸 고소인에 대해서도 비판할지언정 조리돌리지 않았으면 한다. 코로나 기간 대학을 다닌 이들은 이전만큼 학내 공동체와 관계 맺고 상호 작용하지 못했을 수 있다. 대학은 배움과 성찰이 있는 곳이고, 학생은 그 주체다. 그렇게 조금 더 다정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