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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울교통공사 MZ노조가 고발한다

방만경영 끝판왕…지하철 안전인력 부족, 그뒤엔 민노총 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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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영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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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공기업 파티는 끝났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공공기관 평가를 엄격하게 하고 방만 운영은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고 하자 몇몇 언론이 뽑은 관련 기사 제목이다. 난 불편했다. 공공기관인 서울교통공사 직원의 한 사람으로서 한 번도 파티를 즐긴 적이 없는데 파티가 끝났다고 윽박지르니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 우리 공사 평사원 7급 1호봉(신입) 기준 임금은 서울시 생활 임금(시급 1만766원)에도 못 미친다. 심지어 지난해 평가급(※공공기관 평가 따라 차등 지급)은 뒤늦게 받았다. 원래 그해 연말에 받는 건데 우리 공사는 올해 인건비 예산에서 가져와 1월에야 지급했다. 법적 수당인 ‘관공서의 유급휴일 및 대체 공휴일’수당은 지난 2020년부터 아예 못 받았다. 기존 노조(민노총 산하 노조와 한노총 산하 통합노조)가 법에 충족되지 않는 단체 협약을 체결한 탓이다. 이에 우리 노조는 올초 노동청에 제도 개선을 요청했지만 사측이 받아들이지 않아 자동으로 임금체불로 전환됐다.

서울교통공사 노사가 지난해 임금·단체협약 교섭에 합의한 후 악수하고 있다. [뉴스1]

서울교통공사 노사가 지난해 임금·단체협약 교섭에 합의한 후 악수하고 있다. [뉴스1]

이처럼 억울하긴 하지만 윤 대통령과 언론 지적이 전부 틀렸다는 얘기는 아니다. 윤 대통령은 공기업 발언을 하며 "공공기관 부채는 지난 5년간 급증해 지난해 말 기준 583조원에 이르는데 조직과 인력은 거꾸로 크게 늘었다"고 진단했는데, 우리 공사 상황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서울교통공사의 누적 적자는 17조원으로, 지난해에만 1조원의 적자가 났다. 그런데 긴축 경영은커녕 조직과 인력을 크게 늘렸다. 안전하게 시민 운송을 담당하는 주 업무 부서가 늘었다면 이해가 가지만 대부분 이와 무관한 쪽이다.

박원순 시절의 시민단체 낙하산 

방만 경영은 크게 세 가지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첫째, 직무 연관성 없는 낙하산 인사다. 가령 역사 내 위생과 관련해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자회사에 이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참여연대 출신이 사장이 됐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아래서 서울시 시민감사 옴부즈맨을 지낸 후 2017년 사장으로 취임한 인물이다. 공공부문 노동이사제는 지난 2020년 도입됐지만 서울교통공사는 박 전 시장 시절인 2017년부터 양대 노조(민노총과 한노총)들이 줄줄이 노동이사 자리를 꿰찼다. 낙하산은 비단 우리 공사뿐 아니라 모든 공공기관이 갖는 문제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용인해서는 안 된다. 적자 지속 등 회사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데 업무와 무관한 정치인이나 정치적 색채가 강한 시민단체 출신을 자꾸 경영진으로 꽂으면 공공기관의 지속 가능성을 저해할 수밖에 없다.

지난 2018년 김용태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이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관련 전수조사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18년 김용태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이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관련 전수조사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뉴시스]

두 번째는 지난 2018년 시행한 무기계약직의 일반직화다. 지난 2016년 구의역 김군 사태를 계기로 이미 비정규직을 정규직(무기직화)화했다. 이때도 문제가 적지 않았는데 문재인 정부 가이드라인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넘어 추가로 협력·계약업체 정규직(무기직)을 우리 공사 직원으로 신분을 바꿔주는 일반직화라는 무리수를 둔 거다. 2018년 일반직화 당시 3급 이상 고위직을 친인척으로 둔 일반직화 전환자는 26명이었다. 일반직화 소문이 파다하자 비교적 입사가 쉬운 외주 협력업체에 미리 알박기를 한 셈이다. 당시 감사원은 임직원과 노조 간부들의 친인척 채용 비리 문제를 지적했지만 박 전 시장과 민노총은 이를 무시하고 강행했다. 이로 인해 1만 4900여명이었던 공사 직원 수가 현재 1만 6700명으로 크게 늘었다.

정규직화에 이은 협력·계약업체 직원 흡수

일반직 전환은 민노총 세 불리기용 이라는 점 외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조직의 비효율화다. 실제로 현장에선 이후 오히려 인력난이 가중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노동자의 권리인 휴가도 못 쓰는 지경이다. 역사(驛舍) 안전을 지키려면 일정 수의 현장 직원이 필요한데 대체 인력이 없어 자리를 비우지 못하는 탓이다. 가령 역무실과 아이센터 두 곳을 동시에 지켜야 하는 역사가 많은데 대체 인력이 없으니 각종 안전사고 상황 대처가 어렵다. 이러니 휴가는 꿈꿀 수 없다. 참다못해 최근 한 직원이 개인적으로 노동청에 진정을 접수해 현장조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지난 2017년 무기계약직을 정규직화하는 노동존중특별시 2단계발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지난 2017년 무기계약직을 정규직화하는 노동존중특별시 2단계발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분명 사람은 늘었는데 현장에선 왜 인력난이 가중된 걸까. 지난 2018년 일반직으로 전환된 직군을 보면 답이 나온다. 보안관과 이발사, 목욕탕·구내식당·매점 종사자 등이다. 물론 모든 영역이 다 중요하지만 서울교통공사 본연의 업무와는 무관하다. 그런데도 회사는 직원 수 늘어난 얘기만 반복하면서 정작 주요 업무를 담당할 기존 직렬(사무, 기술, 차량, 승무) 채용 규모는 계속 줄였다. 2018년도에는 637명이 퇴직했는데 555명만 새로 뽑았다. 2019년도는 퇴직(703명)보다 신규 채용(785명)이 더 많았지만 2020년도는 710명 퇴직에도 불구하고 516명만 뽑았다. 심지어 그중 80명은 승강장 출입문 관리(PSD)와 조리직이라 실제론 436명만 채용한 셈이다. 이런 추세는 계속 이어져 2021년도는 484명 퇴직에 신규 채용은 350명이었다. 이 중 14명은 PSD였다.

구내식당은 자꾸만 문을 닫고 

조직 비효율화만이 아니라 내부 갈등도 심각하다. 직종 간은 물론 같은 직종 내에서도 그렇다. 조리직(식당 종사자)을 예로 들면, 일반직 전환 후 퇴직·휴가 등으로 결원이 생겼을 때 그냥 식당 문을 닫아버리는 날이 많아졌다. 구체적 이유 명시 없이 '결원 발생으로 식당 운영이 어렵다'는 공지사항만 띄우면 그만이다. 우리 공사는 연중무휴 항시 근무자가 있는데 이용 할 수 있는 구내식당이 일주일에 한 번은 문을 닫으니 다들 불만이다.

지난해 12월 서울교통공사 수서구내식당은 결원을 이유로 식당 운영을 하지 않았다. [송시영 위원장 제공]

지난해 12월 서울교통공사 수서구내식당은 결원을 이유로 식당 운영을 하지 않았다. [송시영 위원장 제공]

그렇게 일반직으로 전환해놓고는 조리직을 비롯해 일부 업무는 다시 외주화를 추진 중이니 이런 코미디가 없다. 이것만 봐도 2018년의 일반직 전환이 얼마나 문제가 많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결국 2018년 일반직 전환은 박 전 시장과 노조가 공모해 자기들끼리 뽑아주는 채용 잔치였던 셈이다.

마지막은 급증한 임원 임금 문제다. 직원의 임금과 처우는 동결됐지만 임원 임금은 증가했다. 2022년 지방 공기업 예산편성 기준에 따르면 임원 평가급은 지난해보다 50% 증가해 최대 350%를 받는다. 적자 방만 경영의 책임은 임원에게 있는데 정작 이들의 실질 임금은 개선된 반면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현장 직원들은 관서 업무비(부서 업무비)가 부족해 비품과 커피 믹스조차 사비로 산다.

임원만 성과급 잔치 

서울교통공사 부채는 나날이 늘어 더는 버티기 힘든 상황까지 와버렸다. 원가의 절반도 안 되는 운임 요금, (장애인·노인 등) 무임권 지원이 전무한 것도 적자의 주요인이다. 운임 결정권과 교통 복지 관련 결정권은 지자체와 국가에 있지만 그로 인한 재정 부담은 공사만 떠안는 구조라서다. 이런 이유로 누군가는 적자 책임이 외부에 있다고 하겠지만 위에 나열한 세 가지 문제만으로도 공사 경영진에게 방만 경영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교통공사는 효율적이고 선진화한 경영을 해서 시민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공익적 소명을 다 해야 한다. 일부 서울시 세금이 들어가는 공기업인 만큼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 무엇보다 1만명이 넘는 직원들의 지속가능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썩은 부분은 빨리 도려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