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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별사도 라이브로…박용택, 아내 얘기하다 끝내 울컥

중앙일보

입력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은퇴식 행사를 마친 뒤 LG 후배들의 헹가래를 받는 박용택. [연합뉴스]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은퇴식 행사를 마친 뒤 LG 후배들의 헹가래를 받는 박용택. [연합뉴스]

"대본 따위 집어치우겠습니다. 저, LG 트윈스의 '심장' 박용택입니다." 박용택 KBS N 해설위원은 끝까지 유쾌하려고 애썼다. 3일 서울 잠실구장. 2020년 10월 28일 은퇴한 그가 1년 8개월 여만에 조금 늦은 은퇴식을 치르는 날이었다.

박용택은 2002년 프로에 데뷔한 뒤 19년간 LG에서만 뛴 '원 클럽맨'이다. 대졸 선수인데도 KBO리그 통산 최다 안타(2504개) 기록을 남길 만큼 꾸준한 활약을 펼친 타자였다. 통산 2236경기에서 출전해 타율 0.308, 1192타점, 1259득점, 도루 313개라는 화려한 기록을 남겼다. LG가 그의 등 번호 33번을 41번(김용수), 9번(이병규)에 이은 구단 세 번째 영구결번으로 지정한 이유다.

작별인사만으로도 숨가쁜 하루가 흘렀다. 팬들과의 '무제한' 사인회, 은퇴 기념 인터뷰, 은퇴식, 시구 그리고 선발 좌익수 출전까지. 박용택은 경기에 실제로 뛰는 것만 빼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등 번호 33번과 각양각색의 별명을 유니폼 뒤에 새긴 LG 후배들은 롯데 자이언츠를 4-1로 꺾고 기념비적인 승리를 선물했다.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영구결번식에서 33번이 새겨진 자신의 유니폼을 반납하는 박용택. [뉴스1]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영구결번식에서 33번이 새겨진 자신의 유니폼을 반납하는 박용택. [뉴스1]

이제 남은 것은 이날의 하이라이트. LG의 33번을 영원히 박용택의 자리로 남겨두는 기념 행사였다. 경기가 끝나고 잠실구장의 불이 모두 꺼지자 흰색 줄무늬 양복을 입은 박용택이 그라운드로 들어왔다. 이어 차명석 LG 단장이 33번을 구단 역대 3번째 영구결번으로 공식 선포했다. 박용택은 33번이 새겨진 자신의 유니폼을 반납하며 '영원한 33번'으로 남게 된 기쁨을 누렸다. 먼저 LG에 영구 결번을 남긴 김용수 전 LG 코치와 이병규 LG 코치도 참석해 축하 인사를 건넸다.

차 단장, 류지현 감독과 옛 동료들의 영상 메시지도 이어졌다. 박용택의 딸 솔비(14) 양은 영상을 통해 "내 생일이면 친구들보다 아빠의 팬들이 케이크나 선물을 많이 보내주셨다. 새로운 학교나 학원을 가도 늘 아빠를 자랑할 수 있는 게 행복하고 뿌듯했다"며 "19년간 한 팀에서 뛰는 게 정말 힘든 일이었을 텐데 정말 고생 많았다. 아빠의 제2의 인생은 조금 더 편안했으면 좋겠다"는 감사 메시지를 보냈다.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은퇴식 행사를 마친 뒤 LG 후배들과 기념 촬영을 하는 박용택(아랫줄 가운데). [뉴스1]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은퇴식 행사를 마친 뒤 LG 후배들과 기념 촬영을 하는 박용택(아랫줄 가운데). [뉴스1]

마침내 고별사를 위해 마이크를 잡은 박용택은 대뜸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미리 준비해 온 은퇴사를 읽어내려가는 대신, 관중석의 팬들을 바라보며 마음에 있는 말을 하나씩 꺼냈다. '졸렬택'이라는 별명을 안긴 2009년 홍성흔(당시 롯데)과의 타격왕 경쟁 사건을 직접 언급하면서 "롯데 팬들께 말씀드리고 싶다. 나는 그 순간 졸렬했을지 몰라도, 진짜 졸렬한 사람은 아니다"라고 거듭 사과하기도 했다.

LG 선수단과 팬들을 향해서는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그리고 팬보다 위대한 팀은 없다. 후배들이 이 얘기를 가슴 속 깊이 새겨줬으면 좋겠다"며 "내가 아쉬운 게 딱 하나 있다. 우승 반지 없이 은퇴한다. 그 반지 대신 여러분의 사랑을 품에 안고 은퇴하겠다"고 했다.

박용택은 10분 넘게 이어진 은퇴사 내내 힘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끝까지 울지 않았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결국 아내 한진영 씨의 이름을 부르다가 목이 메었고, 눈물을 쏟았다. 그는 "아내가 힘든 시간, 어려운 시간을 묵묵히 버티면서 옆에서 '언제나 잘 될 거다'라고 내조해줬다. 사랑한다"는 메시지로 애정을 표현했다.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팬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관중석을 바라보는 박용택. [뉴스1]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팬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관중석을 바라보는 박용택. [뉴스1]

LG 팬들은 그런 그를 향해 이적의 '걱정 말아요 그대'를 불러줬다. 레전드의 새로운 인생을 응원하는 '떼창'이었다. LG 선수들은 그라운드로 나와 박용택을 하늘 높이 헹가래 쳤다. 박용택은 활짝 웃으며 후배들에게 몸을 맡겼다. 그리고 "한국 야구를 위해 힘차게 '파이팅' 하겠다"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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