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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박용택과 만원관중…LG 33번이 작별인사 하던 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관중석을 향해 인사를 전하는 박용택. [연합뉴스]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관중석을 향해 인사를 전하는 박용택. [연합뉴스]

프로야구 LG 트윈스에서 은퇴한 박용택(43) KBS N 해설위원이 잠실구장의 만원 관중 앞에서 조금 늦은 은퇴식을 치렀다. LG는 박용택의 등 번호 33번을 41번(김용수), 9번(이병규)에 이은 구단 역대 3번째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KBO리그 전체를 통틀어도 단 16명에게만 허락된 영예다.

박용택은 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 선발 라인업에 3번 타자 좌익수로 이름을 올렸다. 그가 잠실구장 전광판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건 2020년 10월 28일 잠실 KT 위즈전 이후 621일 만에 처음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미뤄진 은퇴식이 마침내 이날 열렸고, 박용택은 은퇴 선수 특별 엔트리 제도를 활용해 1년 8개월 여만에 다시 그라운드에 나섰다.

실제로 경기에 출전한 건 아니다. 정든 그라운드에서 유니폼을 입고 '선수로서' 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박용택은 경기 전 시구를 마친 뒤 외야로 이동했다. 좌익수 자리에 선 선수의 얼굴이 전광판 화면에 비치자 팬들이 환호를 보냈고, 박용택은 관중석 곳곳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이어 주심이 '플레이 볼'을 선언하자 류지현 감독이 그라운드로 나와 좌익수 교체 사인을 냈다. 박용택은 박수를 받으며 김현수로 교체돼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3일 잠실 롯데전에서 박용택의 다양한 별명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선 LG 선수들. [연합뉴스]

3일 잠실 롯데전에서 박용택의 다양한 별명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선 LG 선수들. [연합뉴스]

박용택은 2002년 프로에 데뷔한 뒤 19년간 LG에서만 뛴 '원 클럽맨'이다. 대졸 선수인데도 KBO리그 통산 최다 안타(2504개) 기록을 남길 만큼 꾸준한 활약을 펼친 타자였다. 통산 2236경기에서 출전해 타율 0.308, 1192타점, 1259득점, 도루 313개라는 화려한 기록을 남겼다. 류지현 LG 감독은 "박용택은 늘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변화를 멈추지 않는, 마음이 열린 선수였다. 팬들과 소통도 굉장히 잘해서 모범적인 모습을 남기고 은퇴했다"며 "영구결번은 돈 이상의 가치가 있는 일이다. 선수단과 현장을 찾은 팬분들 모두에게 기분 좋고 즐거운 날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용택은 경기 전 팬 사인회를 열고 직접 팬들을 만났다. 인원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선언한 '무제한 사인회'였다. 그는 "많은 분들이 '19년간 함께해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셔서 울컥했다. (이제 해설위원이 된 이상) 내가 유일하게 마음껏 LG를 응원할 수 있는 날이다. 19년간 뛰면서 우승을 하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고 했다.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시구를 마친 뒤 후배 포수 유강남과 끌어안고 있는 박용택(가운데). [연합뉴스]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시구를 마친 뒤 후배 포수 유강남과 끌어안고 있는 박용택(가운데). [연합뉴스]

LG 선수들은 이날 모두 등번호 33번을 달고 이름 대신 박용택의 별명을 하나씩 유니폼 뒤에 새겼다. '용암택', '기록택', '울보택', '찬물택', '가을택', '출루택' 등 현역 시절 박용택에게 붙었던 다양한 별명들 중 하나였다. 박용택이 직접 골라 후배들에게 리스트를 줬고, 각자 마음에 드는 별명을 하나씩 선택했다.

박용택은 "가장 실망스러운 건 '졸렬택'이라는 이름을 아무도 달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우영이 달기로 했다가 팬들의 비난을 받아 ('흐뭇택'으로) 바꿨다고 들었다"며 짐짓 아쉬워했다. 그는 2009년 홍성흔(당시 롯데)과 타격왕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팀의 도움 속에 '타율 관리'를 했다는 비난을 받았는데, 그 일을 스스로 화두에 올린 것이다.

박용택은 "때마침 롯데전이니 ('졸렬택'이라는 별명을) 내 방식대로 풀 수 있었는데 안타깝다"고 웃어 보이면서 "김용수 선배는 정말 '전설' 같은 느낌이고, 병규 형은 약간 거리감 있는 '수퍼스타 히어로'라면, 나는 학생들도 내 이름을 반말로 편하게 부르는 선수였다. 그런 방식으로 팬들에게 무척 많은 사랑을 받은 것 같다"고 털어놨다.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좌익수 자리를 향해 달려가는 박용택(오른쪽). [연합뉴스]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좌익수 자리를 향해 달려가는 박용택(오른쪽). [연합뉴스]

이날 LG 선발 투수는 박용택의 휘문고 13년 후배인 임찬규였다. 로테이션상 원래 등판 예정일이 아니었지만, 장마로 주중 두 경기가 우천 순연되면서 '하늘의 선택'을 받았다. 임찬규는 "비로 경기가 취소된 뒤 이날 등판 권유를 받고 내심 기분이 좋았다. 용택이 형 은퇴식이 열리는 날이고, 나 역시 반등이 필요할 때다. 여러모로 타이밍이 좋아 사명감이 느껴진다"며 "꼭 선배님께서 웃을 수 있는 경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박용택 역시 "찬규가 '야구 인생 마지막인 것처럼 던지겠다'고 하더라"며 기분 좋게 웃었다.

'휘문택'이라는 별명을 등에 달고 마운드에 오른 임찬규는 그 약속을 지켰다. 5이닝 동안 공 54개를 던지면서 롯데 타선을 2피안타 무실점으로 막는 호투를 펼쳤다. 임찬규의 무실점 경기는 올 시즌 3번째다. 그 사이 잠실구장은 경기 시작 23분 만인 오후 5시 23분에 입장권 2만3750장이 모두 팔려나가 올 시즌 첫 매진을 달성했다. 잠실구장 만원 관중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9월 29일 두산 베어스전 이후 2년 10개월 만에 처음이다.

레전드 타자의 염원과 기운을 이어 받은 LG 타선도 힘을 냈다. 1-1 동점이 이어지던 7회 2사 2·3루에서 4번 타자 채은성이 중월 적시 2루타로 승부를 갈랐다. 주장 오지환은 계속된 2사 2루에서 적시타를 때려 쐐기점을 뽑았다. 박용택이 마지막 인사를 전한 경기에서, LG는 4-1 승리를 일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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