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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자 은행이 내주겠다"...당국 '이자장사' 경고에 이런 조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금융 당국과 여당의 ‘이자 장사’ 경고에 시중은행이 바짝 몸을 낮추고 있다. 대출금리를 줄줄이 내리고, 일정 수준 이상의 금리는 은행이 지원하는 방안까지 내놨다. 당국과 여당의 말 한마디에 시장 금리가 즉각 떨어지자 ‘관치 금융’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다.

서울 시내 한 은행 외벽에 대출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서울 시내 한 은행 외벽에 대출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신한은행은 이달 초 '취약 차주(대출자) 프로그램'을 가동하면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가 6월 말 기준 연 5%를 초과하는 대출자의 경우 다른 조건 없이 금리를 연 5%로 1년간 일괄 감면하기로 했다”고 3일 밝혔다. 예를 들어 주담대 금리가 연 6%인 대출자의 경우 1년간 연 5%만 부담하고, 나머지 1%는 은행이 지원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현재 대상 인원과 규모를 파악 중”이라며 “시스템이 갖춰지는 대로 이달 초 이내에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신규 취급 주담대와 전세자금 대출 금리도 낮춘다. 주담대 금리는 최대 연 0.35%포인트,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최대 연 0.3%포인트 인하할 예정이다. 서민 지원 상품인 새희망홀씨 대출은 신규 금리를 연 0.5%포인트 인하한다.

금리상한형주담대(연간 금리 상승 폭을 0.75%포인트 이내로 제한한 상품)를 신청하는 경우엔 가산금리를 1년간 연 0.2%포인트 낮춰주기로 했다. 2년간 고정금리로 빌릴 수 있는 전세자금대출 상품도 출시한다. 전세자금대출은 6개월 또는 1년마다 금리를 갱신하는 변동금리 상품이 일반적이다. 대상은 연 소득 4000만원 이하, 전세보증금 3억원 이하만 해당한다.

 우대 금리를 확대해 금리 인하 효과를 내기도 한다. NH농협은행은 지난 1일부터 우대금리 확대로 주담대와 전세자금 대출 등의 금리를 0.1~0.2%포인트가량 낮췄다. 우리은행도 지난달 24일부터 신규 주담대 고정금리(은행채 5년물 기준) 대출자에게 우대금리 1.3%포인트를 적용했다. 기존엔 내부 신용등급 기준 1~8등급까지만 적용했던 우대금리를 9·10등급까지 확대했다.

 반대로 예·적금 금리는 높아지고 있다. 최근 부동산과 주식, 암호화폐 시장이 하락세에 접어들면서 자금이 은행으로 돌아오는 ‘역(逆) 머니무브’ 흐름 속 은행권의 수신 경쟁에 불이 붙으며 특판 금리 상품을 연이어 내놓은 영향이다.

 신한은행은 지난 1일 ‘신한 40주년 페스타 적금’을 출시했다. 월 최대 30만원까지 납입할 수 있는 만기 10개월 자유 적금 상품으로 최고 금리가 연 4.0%다. 같은 날 출시한 ‘신한 S드림 정기예금’은 최대 가입 가능액 1억원, 최고 금리 연 3.2%의 1년제 정기예금 상품이다.

 우리은행이 지난달 22일 최고 금리 연 3.2%로 내놓은 ‘2022 우리 특판 정기예금’은 6일 만에 2조원 한도가 모두 소진됐다. 지난달 28일 한도를 1조2000억원 추가로 늘렸지만 지난 1일 기준 1437억원만 남아있는 상태다. 지난달 17일 케이뱅크가 출시한 연 5.0% 금리의 ‘코드K자유적금’ 10만 계좌는 열흘 만에 완판됐다.

 시중 은행이 이처럼 앞다퉈 대출 금리는 낮추고 예·적금 금리는 높이는 건 금융 당국과 정치권이 예대금리차 축소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20일 은행장들을 만나 “금리 상승기에 예대금리차가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며 “은행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8일엔 여당 정책위원장인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민생물가안정특위 회의에서 “금융기관들은 예대마진에 대한 쏠림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참여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준비해온 예대금리차 공시 시스템이 이르면 다음 달부터 시행될 예정인 만큼 은행들의 이자 수익에 대한 압박은 가속할 전망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왼쪽 여섯 번째)이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왼쪽 여섯 번째)이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당국과 여당의 압박에 시중은행이 몸 사리기에 나서면서 '관치 금융' 논란도 빚어지고 있다. 이 원장이 "은행의 공공적 기능은 법에 분명히 존재한다"고 했지만, 시장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감원이 금융 건전성과 소비자 보호를 위해 제 역할을 해야 하지만 은행의 이자 결정 과정에 대한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며 "각종 정책 수단을 활용해서 시장 주체가 스스로 위험을 관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금감원장이 은행의 영업 활동을 마치 고리대금업처럼 말하고 강압적인 경고를 한 것은 해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의 고위 관계자도 “은행이 본업인 이자 수익을 많이 냈다는 이유만으로 압박을 받게 되면 무리하게 다른 사업을 벌여 수익을 만회하려 할 것”이라며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클 때 이는 재무 건전성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2020년부터 코로나19로 위기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대출 만기연장과 원리금 상환유예 조치를 연장하는 등 고통을 분담하고 있는데 ‘지나친 이익 추구’라는 표현은 은행에 대한 부정적 낙인 찍기에 가깝다”고 말했다.

 반면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급격한 금리상승으로 취약계층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에 금융당국이 시장에만 위기관리를 맡겨놓는 건 직무유기”라며 “구체적인 금리 조정을 요구한 게 아니라 예방 차원에서 협조 요청을 한 것을 두고 관치 금융이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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