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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써보라 권하신 아버지 생각 나"…첫 책 낸 박두진 아들 박영욱

중앙일보

입력

1978년 박영욱(오른쪽)씨가 아버지 박두진 시인의 방에서 찍은 사진. [사진 박영욱]

1978년 박영욱(오른쪽)씨가 아버지 박두진 시인의 방에서 찍은 사진. [사진 박영욱]

“넌 글을 쓰는 게 좋을 거 같구나”란 아버지의 권유가 아들 가슴에 오래 남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후광이 부담스러워서였을까. 실제 글을 쓰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최근 시·산문 모음집『나무를 보면 올라가고 싶어진다』(푸른사상)를 첫 책으로 펴낸 박영욱(66)씨는 “이제 창의력의 산도(産道)가 확 터지면 마음 내키는 대로 오래도록 글을 써나가겠다”고 했다.

박씨는 청록파 시인 박두진(1916∼1998) 선생의 4남 중 막내아들이다. “어렸을 때 몇 번 아버지께 시를 써서 보여드린 적이 있어요. 제목이 ‘고양이 꿈’ ‘시계’였던 걸로 기억해요. 그때는 아무 말씀 없으셨는데, 스무 서너살 무렵 어느날 ‘눈 좋을 때 책 많이 봐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또 1년 뒤쯤 단양 남한강가 돌밭에서 제게 글을 써보라고 권유하셨어요. 가는 비가 내리던 날이었는데….”

시ㆍ산문 모음집『나무를 보면 올라가고 싶어진다』를 펴낸 박영욱씨. [사진 박영욱]

시ㆍ산문 모음집『나무를 보면 올라가고 싶어진다』를 펴낸 박영욱씨. [사진 박영욱]

그는 성장 환경은 문학으로 둘러싸인 셈이었다. 아버지는 시를 쓰고 나면 꼭 어머니(아동문학가 이희성)에게 낭송해달라고 했다. 집에는 늘상 아버지에게 시를 배우기 위해 찾아온 제자들로 북적였고, 연말이면 아버지가 심사하는 신춘문예 원고들이 쌓여있었다. 보고 듣는 모든 게 시와 연결돼 있었지만, 그는 문학에 발을 담글 생각이 없었다. 대학(연세대 중어중문학과)을 졸업한 뒤 고교 중국어·한문 교사로 20여년간 교편을 잡았다.

삶의 전환점은 새천년과 함께 왔다. 2000년 밀레니엄 프로젝트 격으로 등산을 시작했다. 북한산·인왕산 등 산행길에서 자연을 접하며 얻은 느낌들을 활자로 옮기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주머니에 종이를 넣어 다니며 떠오르는 단상을 옮겨적었다. 2008년 명예퇴직을 한 뒤로는 등산과 글쓰기가 본업이 됐다.

그의 시에서 자연은 상처와 결핍에 대한 치유와 회복의 통로가 된다.
“오늘은 마시는 공기가 매우 습하다/신선한 공기로 호흡하고 싶어진다/금붕어 입 모양을 하고 뻐끔거려본다/웃음이 튀어나온다/이 웃음이 나를 살게 해준다.”(‘금붕어’ 전문)
“오늘 같은 시간의 뭉텅이들이/이승 삶의 속 것이라면/이승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조심대며 대책 세우며 살 것 없이/뒹굴듯이 살고 싶다/구름… 냇물… 그것들처럼 흘러가고 싶다.”(‘Autumn… daytime’ 중)

그의 시는 아버지의 시와 비슷한 듯 다르다. 문학평론가 송기한 대전대 교수에 따르면, 박씨의 작품은 우리 시사(詩史)의 자연시 계보를 충실히 잇고 있다. 자연과 자아의 절대적 융합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청록파 시인 중 조지훈의 세계와 가깝다.

이런 평에 대해 박씨는 “그런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동의했다. “삶이란 게 의외성도 많고 결국 죽음으로 세상에서 없어진다는 두려움도 있지요. 하지만 허무에서 끝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산에서 돌멩이·바람·구름 등을 만날 때면 현실의 부대끼는 삶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들어요. 자연과 통래하며 가을하늘 같은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살아계실 때 글을 안 썼던 게 불효였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제 3, 4년에 한 권씩 책을 내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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