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혼하고 사업해” “치마사장” 소리 뚫고 매출 330억 ‘철의 여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진덕수 대홍코스텍 회장은 1992년 철강 소재 기업을 창업했다. 진 회장(맨 왼쪽)이 사업을 시작한 지 8년 후 신공장 착공식에서 첫 삽을 뜨고 있다. [사진 대홍코스텍]

진덕수 대홍코스텍 회장은 1992년 철강 소재 기업을 창업했다. 진 회장(맨 왼쪽)이 사업을 시작한 지 8년 후 신공장 착공식에서 첫 삽을 뜨고 있다. [사진 대홍코스텍]

오는 5~8일은 ‘제1회 여성기업 주간’이다. 한국 기업 689만 개 중 여성이 소유하거나 경영하는 기업은 277만 개(40.2%)다. 기업 경영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여성기업과 여성기업인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가정주부서 창업 도전한 여성 기업인 #“영업무기는 제품력과 성실함, 정리정돈” #공장에 화재 났어도 월급은 제때 지급” #5~8일 제1회 여성기업 주간…법정 지정

지난해 말 ‘여성기업 지원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매년 7월 첫째 주가 법정 여성기업 주간으로 지정됐다. 그동안 매년 7월 중 하루를 정해 ‘여성경제인의 날’ 행사를 열어왔던 것에 비해 올해 행사가 대폭 커졌다.

이 기간엔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주최로 여성기업인 포상, 여성기업 판촉전, 여성경제포럼 등 전국적으로 30여 개의 행사가 열린다. 이에 앞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여성기업인의 목소리를 2회에 거쳐 싣는다. 먼저 가정주부 출신으로 제조·가공 사업에 나선 여장부 스토리다.

40세 전업주부에서 철강회사 창업 

1992년 동생이 근무하던 철강공장을 찾았다가 이내 창업을 결심했다. 그것도 철강 가공회사다. 아이 둘을 키우던 전업주부 진덕수(68) 대홍코스텍 회장의 도전은 이렇게 시작했다.

“공장 안에 가득 쌓아둔 철강재를 봤는데 반질반질 윤이 나더군요. 우직하면서 섬세한 면도 있는 것 같고요. 철강은 산업의 쌀이라고 하잖아요. 남녀 구분 안 하는 5남매 집에서 자랐는데, 사회는 남자의 전유물이란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습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하지만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 군 장교였던 남편이 “사업을 할 거면 이혼을 하자”며 가로막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걸 못하면 힘든 성격이라 6개월을 버티다 시작했다고 한다. 아파트 담보로 대출받은 8000만원을 종잣돈 삼아 50평 임대 공장에서 철강 가공업을 시작했다. 수주 전화를 받으며 일본어로 된 전문 용어도 배웠다. 일이 너무 재미있어 주말에도 출근했다.

당시 고객사나 금융기관 등에서 실사하러 왔다가 진 회장이 여성인 걸 알고 깜짝 놀라 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진 회장은 “그때 ‘치마사장’이 아니냐는 말도 들어봤다”고 말했다. ‘바지사장’(명의만 빌려주는 유령 사장)이 아니냐는 얘기다.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냥 물러설 수 없었다. 진 회장은 “남편이 ‘봐라. 내가 사업 이래서 못하게 했잖나’라는 말도 듣기 싫고, ‘여자가 뭐 그렇지’란 소리 안 들으려고 이를 악물었다”고 했다. 이후 곳곳을 돌며 돈을 메꿔 다시 시작했다.

진 회장은 “당시 고객사가 많이 도와줬다. 내가 취급하는 철보다 더 단단한 게 신용이구나, 가장 중요한 게 신뢰구나 깨달았다”고 말했다.

다시 일어선 진 회장을 두고 주변에선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붙여줬다고 한다. 새 압연 기술을 도입하고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입지를 다졌다. 지난해 매출이 330억원에 이른다. 비영리재단인 덕수복지재단도 운영중이다. 현재 20~30%가량인 수출 비중을 늘리는 게 꿈이다.

진 회장은 “회사 직원 30~40%가 여성”이라며 “남녀 안 따지고 능력과 인성, 적극성을 봤더니 다른 철강회사보다 여성이 많은 편”이라고 소개했다.

“유모차 대신 여행가방 끌며 바이어 발굴”

신경옥(59) 세신산업 대표는 한 번의 부도와 두 번의 화재사고를 이겨낸 인물이다. 가정주부였던 신 대표는 1991년 생계를 위해 재래시장에 주방용품점 ‘은성상회’를 열었다. 네 살배기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장사하러 다니던 그는 외환위기 때 부도를 냈다.

하지만 3년 후 다시 세신산업을 설립하며 주방용품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그의 표현으로 “매일매일이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불이 나서 제품과 장비가 다 타고 건물이 무너지기도 했어요. 그래도 직원들 월급은 안 밀렸습니다. 재기 비결도 약속을 생명 같이 지킨 것입니다. 그렇게 신용이 쌓이니까 옆에서 도와주더군요.”

그는 이후 대형 여행 가방을 끌고 전 세계를 다니며 바이어를 발굴했다. 특히 직접 디자인한 프라이팬 세트가 효자 상품이 됐다.

신 대표는 “유럽에선 국물 요리보다는 오븐 요리를 주로 하고, 주방용품 소재가 주로 무쇠인데 손목에 무리가 가기 쉽다”며 “금형과 디자인 등을 바꾸면서 시장에서 주목 받았다”고 말했다. 연구개발 등으로 시장 개척과 고용 창출에 이바지한 점을 인정 받아 2017년엔 정부에서 ‘산업포장’도 받았다.

신 대표는 다른 회사와 또 다른 차별점으로 ‘정리정돈’을 꼽았다. 그는 “외부 분들이 회사에 와보면 하나같이 ‘회사가 어떻게 이렇게 깨끗하냐’고 한다”며 “직접 현장에 가서 구석구석 쓸고 닦고 정리하다 보면 재고도, 불량도, 안전사고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 대표는 “남자는 사업 하다 힘들면 술도 마시고, 서로 교류하면서 견디는데 여자들은 고비를 넘기기가 더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기업 오래 하신 선배 여성 경영인을 멘토 삼아 보라”고 후배 여성 경영인들에게 조언했다.

그는 “한 번 실패한다고 해서 포기하면 그렇게 끝난다. 그 실패의 원인을 찾아서 다시 도전하면 성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신경옥 대표(맨 오른쪽)가 이끄는 세신산업은 2017년 무역의 날에 '1000만불 수출의 탑'을 받았다. [사진 세신산업 홈페이지]

신경옥 대표(맨 오른쪽)가 이끄는 세신산업은 2017년 무역의 날에 '1000만불 수출의 탑'을 받았다. [사진 세신산업 홈페이지]

직접 제품 만들며 밑바닥부터 시작 

2001년 남편이 하던 사업을 맡은 지 20년 만에 회사 매출을 18배 가까이 키운 경영인도 있다. 친환경 제설제 제조업체인 해천케미칼을 이끄는 변화순(55) 대표 얘기다.

두 자녀를 키우는 주부였던 변 대표는 건강이 악화되던 남편이 자신이 하던 사업을 해보라고 권유한 게 시작이었다고 한다. 변 대표는 “엄두는 나지 않았지만 시작은 했다. 아무것도 모르니 밑바닥부터 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2001년 10억원 규모였던 회사 매출은 최근엔 185억원으로 커졌다. 변 대표는 이렇게 회사를 키운 비결에 대해 “거래처에 진실하게 대한 게 통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보수적이고 남자 비중이 높은 화학 시장에서 처음 비즈니스를 자리 잡는 게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품질과 시장 경쟁력이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비즈니스를 이어 오다 보니 고객사들의 신뢰를 얻게 됐어요. 그런 이유 때문인지 오랜 관계를 유지하는 고객사와 신규 문의가 늘었습니다.”

연구개발에도 적극 투자해 저부식 염화칼슘을 개발해 환경을 오염시키는 중국산 염화칼슘을 대체했다. 특히 원자재 가격 폭등과 불황 속에서 중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수입국 다변화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보일러 배관에 사용되는 청관제와 스케일 제거제도 개발했다. 지금은 글로벌 화학사인 바스프에도 제품을 납품하고 있고, 친환경 제설제는 조달청에도 들어간다.

변 대표는 “사업을 시작한 이상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령 노동법이나 화학법, 산업안전법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당히 비싼 수업료를 치러야 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