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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하나로 암세포가 소멸했다...美 뒤집은 임상 결과 '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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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고 수준 암 치료기관인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MSK) 암센터의 소규모 임상에서 직장암 환자 전원의 암세포가 사라지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외과 수술, 화학 요법, 방사선 치료 없이 단순 약물 투여로만 이뤄낸 결과여서 미국 의학계도 이례적인 성과라고 평가합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같은 미국 유력 언론도 크게 다뤘죠.

임상에 참여한 첫 환자인 사샤 로스(맨 왼쪽)와 연구 책임자인 루이스 디아스 박사(왼쪽에서 두번째)와 연구진. 사진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

임상에 참여한 첫 환자인 사샤 로스(맨 왼쪽)와 연구 책임자인 루이스 디아스 박사(왼쪽에서 두번째)와 연구진. 사진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

이러한 임상 결과는 지난달 5일 미국 임상종양학회에서 발표됐습니다. 연구 책임자인 루이스 알베르토 디아스 주니어 박사는 “암 연구 역사에서 이렇게 모든 환자의 암이 사라지는 결과가 나온 건 처음이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임상 시험은 ‘면역관문억제제’라는 단일 항암제로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주목받습니다.

약물로만 이뤄낸 암 완치 판정

미국 2위 암센터로 평가받는 MSK 암센터는 2019년 직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을 시작했습니다. 면역관문억제제의 효과를 검증하려는 시험이었죠. 수술, 화학 요법, 방사선 치료 등 다른 치료를 전혀 받지 않은 암 환자 12명을 불러모았습니다.

이들에게 3주에 한 번씩 6개월 동안 총 9번 면역관문억제제인 ‘도스탈리맙’을 투여했습니다. 1회당 비용은 1만1000달러였죠. 임상은 글로벌 제약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후원을 받아 진행됐습니다.

직장암은 다른 암에 비해 생존율 자체가 낮지는 않지만, 삶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는 암이다. 보통 암은 항문 근처에 많이 생기는데 이를 수술로 제거할 때 인공 항문을 만들고 배변주머니를 차야 하는 일이 생긴다.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에도 주의해야 한다. 직장 근처에 여성의 난소나 남성의 고환이 위치해 있어 불임의 위험도 있다. 이때문에 직장암 치료를 받는 여성은 난소를 떼내 갈비뼈 아래로 옮기는 수술을 받기도 한다. 사진의 위쪽 원은 결장암, 아래쪽 원은 직장암을 가리킨다. 대장에서 구불구불한 부분은 결장, 항문으로 이어지는 곧바른 부분은 직장이다. 사진 블라우센 메디컬

직장암은 다른 암에 비해 생존율 자체가 낮지는 않지만, 삶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는 암이다. 보통 암은 항문 근처에 많이 생기는데 이를 수술로 제거할 때 인공 항문을 만들고 배변주머니를 차야 하는 일이 생긴다.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에도 주의해야 한다. 직장 근처에 여성의 난소나 남성의 고환이 위치해 있어 불임의 위험도 있다. 이때문에 직장암 치료를 받는 여성은 난소를 떼내 갈비뼈 아래로 옮기는 수술을 받기도 한다. 사진의 위쪽 원은 결장암, 아래쪽 원은 직장암을 가리킨다. 대장에서 구불구불한 부분은 결장, 항문으로 이어지는 곧바른 부분은 직장이다. 사진 블라우센 메디컬

임상시험 결과 12명 환자 전원의 종양이 임상적으로 ‘완전 관해’ 판정을 받았습니다. 완전 관해란 의학 용어로 현대 과학 기술로는 몸에서 종양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통상적으로 완치와 동의어로 쓰이죠. 환자 12명은 내시경 검사와 생검, FPI, MRI, PET-CT와 같은 정밀 검사에서 종양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심각한 부작용도 없었죠.

미국 의료계가 이례적 결과라고 평가한 이유입니다. 키미 응 하버드대 의대 대장암 전문의는 “전례 없는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하나 사노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라인버거 종합암센터 전문의는 “작은 규모지만 주목할 만한 결과”라고 평했죠.

암 환자의 새로운 희망 ‘면역관문억제제’

이번에 사용된 면역관문억제제는 제3 세대 항암제인 ‘면역항암제’의 일종입니다. 우리 몸의 면역력을 활용해 암세포를 없애죠. 1세대인 ‘화학항암제’는 화학물질을 체내에 투여해 암세포를 죽입니다. 하지만 정상세포도 공격하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흔히 암 치료를 받고 머리가 빠진다거나 구토를 한다거나 하는 부작용은 대체로 화학항암제때문이죠.

2세대인 ‘표적항암제’는 말 그대로 암세포만 표적으로 두고 공격합니다. 부작용은 적지만, 암세포가 내성이 생긴다는 단점이 있죠. 이를 극복하고자 나온 것이 면역항암제입니다. 면역항암제는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이용해 암세포를 공격합니다.

2011년 미국 FDA가 악성 흑색종에 대한 면역관문억제제인 ‘이필리무맙(상품명 여보이)’를 승인하면서 3세대 항암제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후 여러 제약회사들이 면역관문억제제 개발에 뛰어들었죠. 지난해 항암제 중 가장 큰 매출을 올린 약물 역시 면역관문억제제인 키트루다였습니다.

오른쪽 그림은 암세포가 어떻게 면역세포인 T세포를 약화시키는지를 나타낸다. 암세포는 마치 정상세포(면역조절세포)인 것처럼 가짜 신분증을 제시해 T세포를 약화시킨다. 왼쪽그림은 면역관문억제제는 이런 암세포의 능력을 봉쇄하는 장면이다. 암세포의 가짜 신분증을 무력화시키고 T세포가 암세포를 파괴할 수 있게 한다. 사진 미국 국립암연구소

오른쪽 그림은 암세포가 어떻게 면역세포인 T세포를 약화시키는지를 나타낸다. 암세포는 마치 정상세포(면역조절세포)인 것처럼 가짜 신분증을 제시해 T세포를 약화시킨다. 왼쪽그림은 면역관문억제제는 이런 암세포의 능력을 봉쇄하는 장면이다. 암세포의 가짜 신분증을 무력화시키고 T세포가 암세포를 파괴할 수 있게 한다. 사진 미국 국립암연구소

면역관문억제제는 암의 가장 교묘한 위장막을 벗겨주는 약물입니다. 우리 몸엔 늘 암세포로 발전할 수 있는 돌연변이 세포가 자라는데 대부분은 면역 세포에 의해 파괴됩니다. 하지만 일부가 암으로 발전하고 나면 자신이 마치 정상 세포인 것처럼 위장하죠. 그래서 면역 세포도 암세포를 정상 세포로 착각하고 지나칩니다. 그러면 암세포는 무한증식해 우리 몸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망가뜨리죠.

면역관문억제제는 우리 면역 세포에 암세포를 인지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화학항암제·표적항암제와 달리 우리 몸의 면역 체계를 이용해 암세포를 제거하죠. 면역관문억제제가 사용된 이후 암 치료엔 일대 혁신이 일어났습니다. 이명아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대장암센터 교수는 “면역관문억제제가 다른 치료 방법과 병행해서 사용되면서 기존 몇 달만 살 수 있었던 환자가 몇 년까지 살아남는 사례도 늘어났다”고 설명했습니다.

특정 환자에게만 적용…보편적 사례로 보긴 힘들어

이번 임상시험은 면역관문억제제로만 치료했음에도 큰 효과를 발휘한 사례입니다. 또한 특정 유전적 결함을 가진 사람들에게 면역관문억제제가 특효를 낸다는 걸 증명한 사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결과엔 뚜렷한 한계도 있죠.

이번 임상에 사용된 도스탈리맙은 직장암 환자 중 암이 전이되지 않은 MMR 결핍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됐습니다. MMR 결핍이란 세포가 분열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량 유전자’를 바로잡아 주는 능력이 없는 걸 뜻합니다. 일종의 유전 결함입니다. 불량 유전자를 바로잡지 못하니 몸속엔 돌연변이 세포의 비율이 상당히 높고, 이 세포가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비약적으로 증가하죠.

MMR 결핍으로 암이 발생한 환자는 전체 직장암 환자의 약 4%로 추정됩니다. 이명아 교수는 “전이되지 않은 환자를 대상으로 했고, 특정 유전자에만 적용됐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사례로 보기는 힘들다”며 “추가적인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암 백신에 대한 연구도 활발합니다. 보통 백신은 예방에 주로 쓰이지만, 암과 관련해서는 예방뿐 아니라 치료 개념까지 포함해서 쓰입니다. 암의 발병 원인은 유전자 결함, 바이러스 등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의 원인만 타깃으로 해서 백신을 개발하기는 힘듭니다.

이 때문에 최근엔 ‘개인 맞춤형’ 백신이 주로 연구되고 있죠.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에릭 랜더 미국 바이든 대통령 과학고문이 MIT 교수 시절이었던 2010년 낸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죠. 그는 당시 “사람마다 암세포가 생기는 이유가 다르다면,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백신을 만드는 게 가장 효과적이지 않겠나”라고 했죠.

에릭 랜더 박사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이끈 미국의 저명한 수학자이자 유전학자다. 그는 암 연구에 인간마다 유전자의 독특성을 반영해 개인맞춤형 치료가 필요하다는 아이디어를 10여년 전 냈다. 현재 세계적으로 개인맞춤형 백신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며 조금씩 성과를 보이고 있다. 랜더 박사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로 있던 지난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의해 과학기술정책실장 겸 과학 고문으로 지명됐다. 사진은 랜더 박사가 지난해 1월 16일 델라웨어 주 윌밍턴에서 열린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사진 AP

에릭 랜더 박사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이끈 미국의 저명한 수학자이자 유전학자다. 그는 암 연구에 인간마다 유전자의 독특성을 반영해 개인맞춤형 치료가 필요하다는 아이디어를 10여년 전 냈다. 현재 세계적으로 개인맞춤형 백신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며 조금씩 성과를 보이고 있다. 랜더 박사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로 있던 지난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의해 과학기술정책실장 겸 과학 고문으로 지명됐다. 사진은 랜더 박사가 지난해 1월 16일 델라웨어 주 윌밍턴에서 열린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사진 AP

2014년엔 악성 흑색종 환자 8명을 대상으로 세계 최초의 개인 맞춤형 백신 테스트가 진행됐습니다. 펨브롤리주맙이라는 면역관문억제제와 함께 개인 맞춤형 백신을 투여했죠. 이 중 7명이 살아남았으며 8년이 지난 지금도 암이 재발하지 않았습니다.

그중 역사상 최초로 개인 맞춤형 백신을 처방받은 환자인 마크 래쉬웨이(당시 60세)는 흑색종 판정 당시 폐까지 암이 전이된 환자였습니다. 암이 폐까지 전이돼 등에서 돌출된 종양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심각했죠.

하지만 개인맞춤형 처방과 약물 치료를 병행하면서 1년도 되지 않아 종양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이후 완치 판정을 받았고 지금도 재발 없이 생존해 있죠. 이명아 교수는 “개인 맞춤형 암 치료제 연구는 현재 암 관련 연구에서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분야 중 하나”라며 “암의 발생 부위별로 접근하기보다 개인마다 암이 발생하는 특성에 맞춰 치료한다는 점에서 더 근본적으로 암을 막을 수 있는 치료”라고 했습니다.

코로나가 열어준 개인 맞춤형 백신의 미래

미국 국립암연구소도 개인 맞춤형 백신의 전망이 밝다고 예측합니다. 그 이유로 바로 ‘코로나 19’를 들었죠. 코로나19가 처음 전 세계에 퍼질 때만 해도 의료계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보통 백신 개발엔 10~15년이 걸리기 때문이죠. 하지만 화이자의 후원을 받는 독일 제약사 바이오엔테크가 mRNA 방식의 백신을 내놓으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당시 바이오엔테크는 개인 맞춤형 암 백신에 mRNA 방식을 적용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죠. 이 기술을 바로 코로나19 백신에 적용하면서 백신 개발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겁니다.

mRNA 백신은 바이러스를 물리칠 수 있는 설명서를 체내로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세포에 설계도를 건네주면 세포가 알아서 바이러스 항체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으로 작동되죠. 하지만 mRNA가 제대로 전달이 될지, 세포가 이를 받아들여 정상적으로 작동할지에 대해 과학계는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 개발과 함께 이 의문점이 해소됐죠.

mRNA 방식을 적용해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의 개발을 앞당긴 우구르 사힌(왼쪽)과 외즐렘 튀레지(오른쪽) 부부. 두 사람은 바이오엔테크의 창립자로 암 백신에 mRNA 방식을 적용하던 중 코로나 확산을 맞았고, 이를 코로나 바이러스에 적용해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사진 AP=연합뉴스

mRNA 방식을 적용해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의 개발을 앞당긴 우구르 사힌(왼쪽)과 외즐렘 튀레지(오른쪽) 부부. 두 사람은 바이오엔테크의 창립자로 암 백신에 mRNA 방식을 적용하던 중 코로나 확산을 맞았고, 이를 코로나 바이러스에 적용해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사진 AP=연합뉴스

지금도 바이오엔테크는 130명 이상의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한 mRNA 방식의 개인 맞춤형 암 백신 임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올해 말쯤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죠

암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면역관문억제제 그리고 개인맞춤형 백신이라는 혁신적 연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자기 유전자 결함에 딱 맞는 암 예방 백신을 누구나 접종하는 날도 올 거라고 의료계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미국 국립암센터의 면역종양학과장인 제프리 쉴롬은 “우리는 이미 문틈에 발을 집어넣었고 서서히 문을 열고 있다. 암 백신 개발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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