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억의 외장화로 뇌 용량 줄어, 망각하며 정보 저장한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95호 27면

코딩 휴머니즘

400cc → 670cc → 1000cc → 1500cc

이 숫자는 인간 뇌 용량의 진화를 보여준다. 400만년 전 인류의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뇌 용량은 400cc였는데 이후 진화를 거듭하면서 5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러 1500cc까지 커졌다. 인류가 머리를 많이 사용하거나 기억해야 할 정보가 늘어나면서 뇌 용량도 자연스럽게 커졌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이후가 이상하다. 현생 인류, 그러니까 지금 우리의 뇌 용량은 1350cc로 오히려 줄었다. 왜 줄었을까?

물론 두뇌가 계속 커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개골은 그대로인데 뇌만 커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두개골이 점점 커졌다면 출산을 감당해야 할 여성의 골반도 같이 커져야 한다. 하지만 그런 진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골반은 그대로인데 태아의 머리만 커진다면 인류는 진작에 멸종했을지도 모른다.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약 3000년 전부터 뇌 용량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인류의 뇌, 다른 포유동물보다 6배 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바이오테크 기업인 뉴럴링크(Neural Link)의 뇌 기계 인터페이스 기술 시연회. [AFP=연합뉴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바이오테크 기업인 뉴럴링크(Neural Link)의 뇌 기계 인터페이스 기술 시연회. [AFP=연합뉴스]

뇌가 왜 작아졌는지는 인류학의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다.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가장 근거 있는 추측은 뇌가 효율성을 따라 진화했다는 것이다. 몸 전체 비율로 따져봤을 때 머리가 계속 커지는 게 효율적이라곤 할 수 없다. 이미 다른 포유동물과 비교해 봐도 인간의 뇌는 6배나 크다.

모든 것을 머릿속에 기억해야 했던 인류는 어느 순간부터 ‘기억의 외장화’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기억의 외장화가 뇌를 작아지게 했다고 추측하고 있다. 도구의 사용과 집단 지성, 기록 문화의 발달로 인해 기억해야 할 수많은 정보로부터 인간의 두뇌가 해방된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발달이 기억의 외장화를 더욱 가속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이런 기억의 외장화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래학자인 니컬러스 카는 자신의 저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이런 점을 꼬집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우리 뇌 구조를 안 좋게 바꾸고 있다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사고방식은 가벼워졌고 생각의 깊이는 더욱 얕아졌다는 것이다. 기억의 외장화란 정보를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의미한다. 우리의 기억은 하이퍼링크로 이어진 정보, 알고리즘을 따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흘러다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뇌의 효율화 관점에서 보면 ‘기억의 외장화’는 불가피할 수도 있다. 두뇌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두뇌는 우리 몸무게의 2%밖에 안 되지만 우리 몸이 소비하는 에너지 중 20%를 사용한다. 따라서 뇌의 에너지 소비 부담이 큰 만큼 기억의 외장화에 따른 두뇌 축소가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더 획기적인 기억의 외장화가 진행 중이다. ‘내 기억을 보조기억장치에 저장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고 모든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Neural Link)’는 이러한 일을 현실로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두뇌 임플란트’ 시술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기억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뇌에 칩을 이식하는 치료법인데, 쉽게 말하면 컴퓨터의 메모리처럼 보조기억장치를 뇌에 이식하여 기억을 저장하는 방법이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바이오테크 기업인 뉴럴링크(Neural Link)의 뇌에 삽입하는 칩. [AFP=연합뉴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바이오테크 기업인 뉴럴링크(Neural Link)의 뇌에 삽입하는 칩. [AFP=연합뉴스]

두뇌와 컴퓨터가 상호 교신을 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기술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Brain-Computer Interface)’ 기술은 어느덧 현실이 되었다. 뇌의 신경전달물질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꿀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뇌와 컴퓨터의 연결이 가능해진 셈이다. 마치 컴퓨터에 메모리(RAM)를 추가해서 성능을 향상하거나 USB를 꽂아서 정보를 옮겨 담는 일이 가능한 것처럼, 인간의 두뇌도 주변장치를 통한 성능 업그레이드라든가 기억을 다른 저장 장치로 저장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상상이 그렇게 인간적인 느낌으로 다가오진 않지만 말이다.

이미 뉴럴링크는 원숭이의 뇌에 칩을 이식하여 원숭이가 생각하는 대로 컴퓨터 탁구 게임을 조작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하기도 했다. 뇌에 칩을 이식한 돼지가 코를 킁킁거릴 때마다 뇌로 전달되는 후각 정보를 실시간으로 메모리칩에 저장하는 장면을 공개 시연하기도 했다. 2022년 4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러한 시술을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을 승인했고 “사람을 대상으로 칩 이식이 진행되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던 머스크의 계획은 현실이 됐다.

물론 두뇌와 컴퓨터가 완벽하게 교신하고 호환되기까지는 수많은 기술적 난관이 존재하며, 머스크도 이러한 기술이 상용화되기까지 10년 이상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이 가능해진 만큼 실현 가능성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누가 머리에 칩을 심을까? 알츠하이머와 같은 퇴행성 뇌질환으로 고생을 하고 있거나 치매 환자들에게 매우 유용할 수 있다. 뉴럴링크를 통해 모든 기억을 저장하고 다시 두뇌에서 기억을 재생할 수 있다면 기억을 잃어버리는 질병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우울증이나 불면증처럼 두뇌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불안 증세에 대한 모니터링도 가능하고 개선할 수도 있다.

물론 그 이상을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령 영원한 기억을 갖고 싶거나 두뇌의 성능 개선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두뇌 임플란트’에 얼마든지 호의적일 수 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는 ‘치아 임플란트’라든지 ‘라식 수술’처럼 크게 거부감이 없는 시술 중의 하나로 자리 잡을지도 모르겠다.

갈수록 우리가 기억해야 할, 어쩌면 기억하고 싶은 정보의 양은 증가하고 있다. 매일매일 발생하는 뉴스와 정보들, 각종 소셜미디어(SNS)에서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진과 영상들, 그리고 업무 중에 쏟아지는 이메일과 챙겨야 할 이슈들, 어느 것 하나 소홀해지고 싶지 않지만, 우리의 기억력은 그 모든 것을 저장하기에 허술하기 짝이 없다. 간혹 중요한 약속을 잊어버리거나 내 차가 어디에 주차되어 있는지 기억하지 못할 때도 있다. 함께 살아온 가족이 서로 다른 과거를 기억할 때도 있고, 사소하게는 현관 앞에서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다. 우리의 기억은 이토록 부실하기 때문에 뉴럴링크가 선보이는 두뇌 임플란트에 호의적인 사람들이 많아질지도 모르겠다.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망각 유도

그런데 왜 우리는 형편없는 기억력을 갖게 된 것일까? ‘기억의 외장화’에 따른 두뇌 축소가 결국엔 기억력을 감퇴시키는 것은 아닐까? 한동안 뇌과학자들도 이것이 두뇌의 약점이라고 생각했다. 기억을 저장하는 뉴런 간의 연결이 점차 끊어지거나 뉴런들이 수명을 다해서 자연적으로 망각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이러한 망각 과정은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수반되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최근 신경과학자들은 다른 의견을 말한다. 뇌가 적극적으로 기억을 지우거나 숨기는 것으로 밝혀졌다. 망각이란 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의도적으로 진행되는 편집 기제라는 것이다.

2016년 스크립스 연구소의 로널드 데이비스 연구팀은 초파리에게 특정 기억을 학습시킨 뒤 그 기억이 세포 수준에서 어떻게 지워지는지를 관찰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망각을 유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비슷한 시기에 칭화대학교의 이종 연구팀은 쥐의 해마 내 뉴런에서 ‘Rac1’이라는 단백질이 망각을 매개한다는 내용의 연구를 발표했다. 이 연구에서는 쥐에게 특정 정보를 기억하도록 훈련시키고 Rac1의 활성을 억제하자 쥐의 기억이 유지되는 시간이 72시간 미만에서 최소 120시간까지 연장되는 것을 관찰했다.

데이비스와 이종은 2017년 공동으로 펴낸 리뷰 논문에서 도파민과 Rac1이 매개하는 망각 기제를 ‘내재된 망각(intrinsic forgetting)’이라 일컫고 이 기제는 뇌의 기본 상태로서 새롭게 기억한 바를 끊임없이 지워나간다고 언급했다. 이외에도 새로운 것을 기억함으로써 신경 세포가 발생하면 기존에 있던 기억이 지워지기도 한다.

우리 뇌는 왜 능동적으로 기억을 지우는 것일까? 어쩌면 망각이란 뇌가 작동하는 효율적인 방식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일 뭔가를 기억해야 한다. 그때마다 뇌는 기억하기 위한 모든 신경 회로를 작동시킨다. 만약 기존의 기억들이 전부 활성화 상태라면 우리는 뭔가를 기억할 때마다 뇌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는 무한하게 늘어나게 되고 우리가 흡수할 수 있는 에너지는 뇌를 유지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해질 것이다.

『기억의 뇌과학』이란 책으로 잘 알려진 신경과학자 리사 제노바도 이런 말을 했다. “기억은 지식과 정보를 뇌에 기록하는 과정을 넘어 세상을 이해하는 질료이며, 끊임없이 왜곡되고 잊히는 과정에서 우리는 적절하면서도 개성적이고 창의적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게 된다”라고.

어쩌면 망각이란 손실이 아니라 축복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뉴럴링크가 선보이는 기억의 저장 기술이란 우리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기억과 망각이라는 적절한 균형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니까.

이탈리아 철학자 노르베르토 보비오는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우리 자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우리가 망각하는 것도 우리 자신을 만든다.

오민수 멀티캠퍼스 프로 minsuu.oh@sericeo.com
정보산업공학을 전공했고 코딩을 배웠으나 글쓰기를 더 좋아한다. 멀티캠퍼스에 입사 후 삼성그룹 파워블로거, 미디어삼성 기자를 병행하면서 ‘디지털 전환’과 관련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현재는 ‘멀티캠퍼스’에서 IT 생태계의 저변을 넓히는 일을 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