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말총 공예 접목한 바구니, 조선 500년 전통 되살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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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호 16면

‘로에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

스페인 럭셔리 브랜드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 업계가 꼽는 천재 디자이너이자,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오늘날 가장 진보적인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스페인 럭셔리 브랜드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 업계가 꼽는 천재 디자이너이자,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오늘날 가장 진보적인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지난달 30일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스페인 럭셔리 브랜드 ‘로에베(LOEWE)’가 진행하는 ‘2022 로에베 재단 공예상’ 시상식이 열렸다. 올해로 5회를 맞는 이 상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공예’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현대 장인 정신의 독창성, 탁월함, 예술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로에베 재단이 시작했다. 올해도 116개국에서 도자·목공·섬유·가죽·유리·금속·주얼리·옻칠 등 다양한 소재를 이용한 3100개 작품이 응모했고, 이중 30개의 최종 후보작이 서울공예박물관에 전시됐다. 그리고 지난 30일, 13명의 전문 심사위원이 서울에 모여 최종 우승자를 발표했다.

이날 저녁 영예의 주인공으로 호명된 작품은 한국작가 정다혜씨가 만든 바구니 ‘성실의 시간’이다. 섬세하면서도 견고해 보이는 이 바구니의 소재는 ‘말총(말의 갈기나 꼬리의 털)’이다. 말총 공예는 조선시대 때 갓을 비롯해 다양한 남성용 머리장식에 사용될 만큼 중요했지만 일제강점기 단발령과 함께 사장되고 현재는 몇몇 장인들에 의해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정 작가는 대학원 논문을 준비하다 말총을 발견한 후 이를 엮어 빗살무늬 토기 형태를 만드는 작업에 몰두해왔다. 이번 ‘성실의 시간’을 짤 때는 조선시대 남성들의 모자 망건·방건·사방관을 만들 때 쓰였던 짜임 기법과 무늬를 이용해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을 다방면으로 담아냈다. 정 작가는 “이번 수상으로 사장되고 있는 말총공예와 그 안에 담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기쁘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한편 이날 시상식을 위해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도 한국을 찾았다. 영국 출신 디자이너 조나단 앤더슨은 2013년 로에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한 후 브랜드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현대적인 라이프 스타일과의 연결을 위해 아트·디자인·장인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공예’를 키워드로 내걸었다. 동시에 로에베 재단과 함께 ‘로에베 재단 공예상’을 출범시켰다.

청소년 때부터 다양한 공예품을 수집해온 앤더슨은 2017년 한국 방문 시 달항아리 20개를 구입해 세계 각지의 로에베 매장을 꾸몄는가 하면, 당시 함께 구매한 조선시대 목가구를 런던 집 침실 테이블로 사용하는 등 한국 공예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시상식이 있던 30일 중앙SUNDAY가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2022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우승자로 선정된 한국의 정다혜 작가. [사진 로에베]

‘2022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우승자로 선정된 한국의 정다혜 작가. [사진 로에베]

최종 우승작으로 말총으로 만든 바구니 ‘성실의 시간’을 선정한 이유는.
“나를 포함한 심사위원단 전원은 정다혜 작가가 ‘전통을 되살려 현대를 풍요롭게 한다’는 공예상의 가장 중요한 목표를 되살린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 500년의 긴 역사를 지닌 한국 모자 공예 기술과 말총을 접목시켜 섬세한 완성도와 투명성, 감도 높은 촉감을 창조했다.”
달항아리, 조선 목가구도 좋아한다.
“처음 브리티시 뮤지엄에서 달항아리를 발견하고 18세기 작품인데도 완벽한 모더니티를 뽐내는 모습에 매료됐다. 어제도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조선 선비들이 사용했던 ‘서안’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기능적인 아이디어도 확실하고, 그 아이디어를 실현한 기술과 모던한 디자인 미학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서양에선 18세기 중반~19세기나 돼야 나타나는 디자인인데 한국에선 18세기 초부터 이미 그것을 사용했다니! 나는 인생을 최대한 가볍고 평화롭게 만들자는 주의인데, 아무리 우울한 공간이라도 이런 가구를 놓으면 내가 원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2022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우승자로 선정된 한국의 정다혜가 만든 말총 공예품. [사진 로에베]

‘2022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우승자로 선정된 한국의 정다혜가 만든 말총 공예품. [사진 로에베]

한국의 다른 공예품 중 또 어떤 것에 관심이 가나.
“영국 작가들은 한국 공예에 관심이 많다. 영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고유한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1920년대 영국 작가가 만든 상감기법의 도자기를 발견했는데, 그 기법 역시 한국 (고려청자)도자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상감기법은 정말 마법 같은 기술이다. 이야기가 담겨 있고, 장식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컬러를 갖고 있어 계속 눈길을 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공예 소재와 형태는 뭔가.
“역시나 도자기다. 바구니 형태도 좋아한다. 얼마 전 있었던 ‘밀라노 디자인박람회’ 때도 전 세계에서 수집한 240개의 바구니를 수선해서 전시했다. 바구니는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전통 공예품이다. 나라마다 이름만 다를 뿐. 이 바구니들을 수선해서 재탄생시키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175년 역사의 로에베가 자랑하는 ‘가죽’으로 수선해서 발전된 형태로 재탄생시키자는 게 핵심 아이디어였다.”
‘수선’은 요즘 화두인 ‘지속가능한 패션’의 개념 중 하나다.
“기본적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수선하고, 재발견해서 더 발전시키는 방법에 관심이 많다. 과거에 있었던 것들이 현대에도 존재함으로써 과거와 현재가 융합하고,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융합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흥미롭고 놀라운 일이다. 내가 디자인할 때도 늘 염두에 두는 것이 ‘선순환’이다. 굉장히 훌륭한 디자인을 만들어내고, 그게 오래 유지되고, 때로는 수선을 통해 새로운 혁신을 맞는 과정이 현대의 우리에겐 필요하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을 통해 공예의 본질을 고민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 공예는 어떻게 젊은 층과 관계를 맺게 될까.
“디지털 시대로 발전할수록 직접 손에 닿는 ‘촉감’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런데 사실 진짜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감정과 연결되는 것이다. 때문에 손으로 작업하는 공예의 중요성은 더 커질 거라고 확신한다. 인간의 감정이 담긴 촉감은 치유의 힘을 갖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변화·발전시킬까. 현대 패션이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30개의 최종 후보작 전시는 7월 31일까지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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