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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판이 바뀐다]최저임금 1만원 근접, 전문가 “산업별 차등 적용 고민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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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호 11면

SPECIAL REPORT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된 지난달 30일 서울시내 한 편의점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한국편의점주협의회는 이날 “인상 결정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강력 반발했다. [뉴스1]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된 지난달 30일 서울시내 한 편의점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한국편의점주협의회는 이날 “인상 결정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강력 반발했다. [뉴스1]

2023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5% 오른다. 최저임금 심의·의결 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달 29일 밤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9160원)보다 5.0% 오른 시간당 9620원으로 결정했다. 내년도 인상률은 올해 인상률(5.1%)과 비슷한 수준으로, ‘경제성장률 전망치(2.7%)+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4.5%)-취업자 증가율 전망치(2.2%)’ 산식에 따라 결정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물가 상승률은 매달 상승폭이 커지고 있고, 지난달엔 5.4%를 기록했다.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로 한국은행은 4.5%, 한국개발연구원(KDI)은 4.2%를 제시했다. 정부는 연간 물가 상승률이 4.7%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경제성장률을 고려해 내년도 최저임금을 책정한 것이다.

그런데, 노사 모두 불만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소속 근로자위원 4명은 표결을 거부했고, 경영계 쪽 사용자위원 9명은 기권했다. 노동계는 하반기 추가 물가 상승에 대비해 인상률을 더 높게 잡아야 한다 했지만, 경영계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맞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30일 입장문을 통해 “물가 급등 등으로 국민의 경제적 부담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물가가 추가로 상승하는 악순환에 빠지고 있다”며 “서민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영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한계 상황에 내몰릴 것이 자명하다”고 비판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현실을 외면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 충격은 불가피하다”며 “고용 축소의 고통은 중소기업과 저숙련 취약계층 근로자가 감당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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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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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경영계가 요구한 동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올해 들어 물가가 치솟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카페 아르바이트생 김모(28)씨는 한 인터넷 게시판에 “조금이라도 인상돼 반갑지만, 최저임금이 1만원까지 오른다는 소문에 기대했지만 이뤄지지 않아 아쉽다”며 “최소 물가 상승률에 맞춰서 올려줬으면 어땠을까 싶다”고 적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코로나19로 불평등이 심해진 지금, 최저임금을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인상 수단이라고만 정해놓는 그런 논리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미 오른 물가를 반영하는 실질 임금 유지 수준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물가가 오르면 임금 소득으로 생계를 영위하는 가구가 힘든 게 사실이고, 이를 내년도 최저임금에 반영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코로나19 여파로 노동시장의 판이 바뀌면서 ‘임금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 상승은 임금발 인플레이션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 특히 상승 속도가 급격하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중소·영세 업계에 타격이 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 집계 결과 한국의 최근 5년간 최저임금 누적 인상률은 41.6%로 주요 7개국(G7)보다 월등히 높았다. 내년도를 고려하면 미국은 5년간 아예 변화가 없었고, G7 중 가장 인상률이 높은 캐나다와 영국도 각각 31.0%, 26.0%였다.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2018년도 최저임금(7530원)을 전년보다 16.4% 올렸다. 2019년도 최저임금(8350원) 역시 전년보다 10.9% 인상했다.

그동안 덜 오른 부분이 있다고 해도 최근 5년간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이) 너무 빨리 올라가게 되면 이를 못 지키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고, 그러면 불법적으로 하게 된다”며 “노동시장을 왜곡하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고, 이게 (노동시장의) 효율성을 떨어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중기중앙회가 경총과 함께 최저임금 근로자를 고용하는 중소기업 6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의견조사에 따르면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시 대응 방법으로 ‘신규 채용 축소’(36.8%), ‘기존 인원 감축’(9.8%) 등 고용을 줄일 것이라는 의견이 46.6%에 달했다. 직원이 많고 영업시간이 길수록 자영업자들이 받은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또 소상공인연합회에서 실시한 조사에서도 소상공인 65.7%가 최저임금 인상 시 대처 방안으로 ‘기존 인력 감원’(34.1%), ‘근로시간 단축’(31.6%) 등 일자리를 줄이겠다고 대답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 상승률을 고려해 인상했다고 하지만 물가 급등 다음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경기 침체, 실업이 될 것”이라며 “(기업에선 저성장에 임금을 주려니) 일자리를 줄일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 결정 때) 근로자의 여건을 고려하는 건 당연한 거지만 기업의 경제적 여건, 생산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인상 속도를 정하고 그 과정에서 기업과 노동계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며 “산업이나 지역도 여건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이를 구별해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종별 차등 적용은 이번에도 무산됐다.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 비율(최저임금 미만율)이 최근 몇 년간 15%에 달하고, 업종별로 농림어업·숙박음식업·도소매업에서 미만율이 전체 평균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어 경영계는 업종별 차등 적용을 강하게 주장했다. 경총에 따르면 숙박·음식업의 최저임금 미만율(법정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 비율)은 40.2%인 반면 정보통신업은 1.9%에 불과해 두 업종 간 미만율 격차가 38.3%포인트로 벌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미국, 일본을 비롯한 13개국은 단일 최저임금이 아닌 업종, 지역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다.

이 같은 업종별 차등 적용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도입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어 도입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지만, 노동계의 반대로 무산됐다. 노동계는 더 낮은 기준을 적용받는 업종에 대한 낙인효과도 우려한다. 업종별 차등 적용은 최저임금 제도 도입 첫 해에 한 번 시행되는 데 그쳤고, 지난 7년 동안 최임위에서 시행 여부를 두고 표결을 진행했지만 모두 부결됐다. 이에 대해 경총은 “한계에 다다른 일부 업종의 최저임금 수용성조차 감안하지 않은 이번 결정으로 업종별 차등 적용 필요성은 더욱 뚜렷해졌다”며 “정부는 업종별 구분 적용을 위한 실질적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고, 내년 심의 시에는 반드시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시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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