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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판이 바뀐다]미·유럽도 일할 사람 없어 발동동…자발적 퇴사 급증한 ‘대퇴직’ 시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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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호 09면

SPECIAL REPORT

미국은 매달 평균 400만 명이 퇴사하며 구인난을 겪고 있다. 사진은 미국 햄버거 체인점인 웬디스의 구인 광고.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은 매달 평균 400만 명이 퇴사하며 구인난을 겪고 있다. 사진은 미국 햄버거 체인점인 웬디스의 구인 광고. [로이터=연합뉴스]

“안 그래도 박봉(underpaid)이라 다니기 싫었는데, 비욘세의 말대로 회사를 그만뒀다.” 최근 미국의 온라인커뮤니티인 ‘레딧’의 밈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작성자가 언급한 ‘비욘세의 말’은 지난 20일(현지시간) 공개된 비욘세의 7집 앨범 수록곡 ‘브레이크 마이 소울(Break my soul)’을 가리킨다. 이 노래의 ‘방금 회사를 그만뒀어. 저녁 9시까지 일하고 5시간 밖에 못 쉬었어. 회사는 날 정말 힘들게 해’란 가사가 화제를 일으켰고, CNN 등 미국 언론은 ‘대퇴직의 찬가’라고 보도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지난해 초부터 급증한 자발적 퇴사를 상징하는 노래란 것이다.

미국에선 ‘대퇴직 시대’라고 부를 만큼 일을 그만 두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미국 내 자발적 퇴직자는 지난 3월 사상 최고 수준인 454만 명을 찍은 뒤, 4월 440만 명대를 기록하며 고공행진하고 있다. 올 들어 미국 정부가 지급하던 코로나19 지원금이 축소되고, 미국 가계 저축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4.4%)까지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자발적 퇴사자가 줄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CNN은 “코로나19 이후 직장 내 경력과 승진에 목을 매던 문화를 걷어차 버리는 사람들이 늘었다”며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이렇게 퇴사자들이 급증한 이유는 뭘까.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떠날 만큼 일자리가 많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뉴욕타임스는 자발적 퇴사와 이직 비율이 1대 0.91로 거의 유사하다는 점을 들어 매달 평균 400만 명의 미국인 가운데 91%는 이직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바라트 라마무르티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부위원장은 트위터를 통해 “근로자들은 보수가 더 좋은 새로운 일을 하러 가기 위해 퇴사하고 있다”며 “대퇴직이 아니라 대이직(Great Upgrade)”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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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일할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임금을 올리고 있다. 미국 애플은 지난 5월 시간제 매장 직원의 최저시급을 22달러로 인상하기로 했다. 지난해에 비해서는 10% 인상이고,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8년에 비해선 45%나 높아진 금액이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과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는 임금중윗값을 기준으로 전년 대비 각각 8%, 11% 인상했다.

신규 입사를 독려하기 위해 사이닝보너스(일회성 인센티브)를 제시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사이닝보너스는 입사시 급여 조건과 별도로 지급하는 보너스다. 미국 아마존은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텍사스 등 미국 전역의 물류 창고에서 사이닝보너스 1000달러(약 120만원)를 제시하며 ‘일할 사람 찾기’에 나선 상황이다. 미국 취업 사이트 업체 집리크루터는 “사이닝보너스는 미국 근로자의 4%만 받던 특혜였는데 최근 6개월 사이 22%의 근로자가 받을 정도로 상황이 변했다”고 평가했다.

최근엔 급격한 물가상승으로 급여 생활자들의 생활고가 가중됐다는 점도 기업들의 고민거리다. 이에 월트디즈니는 지난 4월 플로리다주 디즈니월드 인근에 주택 1300가구가량을 건설하기로 했다. 이 지역 임대료가 지난 2년간 26%나 오를 만큼 생활비가 만만찮은 상황이다 보니 직접 주택을 짓기로 한 것이다.

유럽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최근 영국의 철도 파업을 시작으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해 인력난이 심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벨기에에서도 공공노조가 지난 31일 파업에 돌입했고, 프랑스 샤를드골 공항 직원들은 1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여기에 항공업계에선 코로나19 확산 이후 축소한 인력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 최대 항공사 루프트한자는 지난 6월 성명을 통해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는데 기반시설과 지상 조업업체 등의 인력난으로 병목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에서도 구인난이 심각하다. 특히 관광업과 외식업계에선 아르바이트 구인난 속에 축하금을 내건 채용공고가 올라올 정도다. 일본 채용정보회사 리크루트에 따르면 도쿄와 오사카, 나고야 등 3대 도시 음식점의 아르바이트·파트타임 평균 시급은 지난 5월 1055엔(약 1만원)을 기록하며 4월에 이어 2개월 연속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다만 일각에선 최근 부상하고 있는 경기침체 우려가 현실화할 경우 근로자 우위 시장에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 세계가 경기침체에 빠져들면 일자리가 귀해지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타임스는 “경기침체 우려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직장을 관두는 일에 더 신중해지게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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