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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대목 탓 대관 쩔쩔…‘음력 영화제’ 오명 씻고 전용관 마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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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호 22면

[김동호 남기고 싶은 이야기] 타이거 사람들 〈11〉 부산 ‘영화의전당’

김동호 부산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왼쪽)과 배우 강수연이 2011년 10월 부산 영화의전당 공식 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사진 김동호]

김동호 부산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왼쪽)과 배우 강수연이 2011년 10월 부산 영화의전당 공식 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사진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15년 중 후반 8년은 영화제 전용관인 부산영상센터(영화의전당) 건립에 온 힘을 쏟았다. ‘영화의전당’은 기획 3년, 예산확보 3년, 공사 3년 등 9년에 걸친 노력의 결실이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처음 열던 당시 200여 편의 영화를 상영할 극장을 빌리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건립 계기였다. 당시엔 멀티플렉스 극장도 없었고, 영화관의 ‘추석 대목’도 문제였다. 영화제를 추석 전에 마치거나, 명절 3주 뒤쯤에 열 수밖에 없었다. 추석을 음력으로 쇠기 때문에 첫 회는 9월에, 그 뒤 네 번은 10월에 각각 개최했다. 추석이 10월이었던 6회(11월 9~17일)와 7회(11월 14~23일)는 쌀쌀한 11월 중순에 열려 야외상영을 할 수 없었다. 일정이 겹치게 된 후쿠오카영화제나 밴쿠버영화제의 집행위원장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거나 사과하기에 바빴다.

처음엔 부산영상센터로 건립 추진

2008년 10월 부산영상센터(나중에 영화의전당으로 이름이 바뀜) 기공식. [사진 김동호]

2008년 10월 부산영상센터(나중에 영화의전당으로 이름이 바뀜) 기공식. [사진 김동호]

전 세계에서 유일한 ‘음력 영화제’의 오명도 벗어야 했기에 결국 전용관을 짓기로 결심했다. 먼저 여론조성에 들어갔다. 2002년 12월 19일의 대선을 앞두고 대선주자들에게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 건립을 ‘공약’으로 발표하도록 하고 언론사에 협조를 구했다.

그 결과 그해 11월 9일자 부산일보 1면 톱기사로 ‘PIFF전용관 세우겠다-영화제발전기금 국고지원 등 한목소리’(당시 부산영화제의 영문표기는 BIFF가 아닌 PIFF)라는 제목 아래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국민통합21 정몽준, 민주노동당 권영길 등 4당 후보의 공약이 크게 보도됐다. 부산의 국제신문과 방송3사도 비중 있게 다뤘다.

2003년이 되면서 시민 여론형성 작업에 들어갔다. 부산 지역 언론인·대학교수·문화예술인 친목 단체인 ‘신사고포럼’이 나의 제안으로 2003년 3월 10일 해운대 그랜드호텔에서 ‘PIFF전용관 건립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고 회원인 나는 주제발표를 했다.

그 뒤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공약을 근거로 문화관광부를 경유해 기획예산처에 전용관 건립예산 100억원을 요청했으나 반영되지 못했다. 2003년 9월 5일 다수 야당인 한나라당의 최병렬 대표가 ‘신항 건설’ 현장을 보려고 부산을 찾았을 때 영화인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박광수 부산영상위원회 위원장을 포함한 20명의 영화인이 모인 자리에서 전용관 설계비 30억원을 국회예결위 계수조정과정에서 반영시켜 달라고 제안했다. 최 대표는 부산시 국회의원들이 배석한 자리에서 내년 예산에 반영시키겠다고 약속했다. 9월 6일자 부산일보와 국제신문에 이런 내용이 크게 보도됐다.

사흘 뒤인 9월 8일 노무현 대통령이 부산을 방문했다. 안상영 시장이 전용관 건립비 지원을 건의했고, 다음날 기획예산처가 용역비 10억원을 포함한 40억원을 국비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이렇게 2004년 예산에 용역비와 설계비를 확보하면서 국비 230억원, 지방비 230억원 등 460억원 규모의 건축비를 일단 마련한 셈이 됐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 대신 ‘부산영상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2004년 1월 460억원 규모의 ‘부산영상센터 건립 기본계획’을 세웠다.

나는 부산영상센터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처럼 해변에 부산의 ‘랜드마크’로 세우고 싶었다.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게티센터처럼 정형화된 건축물보다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 로스앤젤레스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처럼 특징 있고 ‘추상적’인 건물을 짓고 싶었다.

그래서 파라다이스 호텔 옆의 옛 극동호텔 자리와 지금의 부산 LCT 레지던스(101층)가 들어선 자리를 제1후보지로 염두에 두고 소유주였던 삼성생명과 토지공사(8월 20일 토지공사 사장 예방), 국방부(차관과 협의) 등과 교섭했다. 제2후보지로 수영요트경기장 자리에 요트협회와 공동으로 세우는 방안도 협의했지만, 결국 부산시가 역점적으로 조성하는 ‘센텀시티’에 짓기로 확정됐다.

해변에 세우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부산시가 건립 부지를 발표하자 센텀시티에 신세계백화점·롯데백화점·KNN부산방송·동서대 등이 동시에 들어오고 영상 관련 시설들이 들어서면서 그런대로 해운대 중심에 자리할 수 있게 됐다.

2004년에 접어들면서 설계자를 국내 공모로 선정하자는 부산시(건축주택과 및 부산국제건축문화제) 주장에 맞서 국제경쟁으로 하자는 내 주장을 관철했다. 부산시 건축주택과에서 세계건축가연맹에 공개경쟁 공문을 발송한 것을 뒤집고 그해 10월 28일 초대 공모방식인 지명경쟁으로 바꿨다. 그래야만 더 좋은 건축가를 선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안준태 정무부시장의 조정과 결심이 큰 역할을 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5년 2월 22일 초대건축가 선정위원회를 구성해 세계 정상급 설계자를 제외한 차순위 21명의 후보를 우선 골랐다. 이어 7월에 스티븐 홀(미국), 버나드 츄미(스위스), 쿱  힘멜브라우(오스트리아), MVRDV(네덜란드), 에릭 반 에게라트(네덜란드), 텐 아키텍토스(멕시코), 하이키넨-코모넨(핀란드) 등 1차 후보 7명을 선정했다. 이와 함께 피터 쿡(영국), 이소자키 아라타(磯崎新·일본), 마시밀리아노푹사스(이탈리아), 김병헌, 김종성 등 다섯 명의 건축가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했다.

심사과정에서부터 기공식까지 시민축제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2005년 10월 6~14일) 기간인 10월 6일 해운대 그랜드호텔에서 후보 건축가 6명이 부산시민과 심사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공개발표회를 열었다. 7~14일에는 시민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해변에 모형을 전시했다. 심사위원회는 7일 1차로 후보를 세 명으로 압축해 발표했지만, 내부 의견차로당선자는 내지 못했다.

결국 크리스틴 홀레이(영국), 하세가와 이츠코(長谷川逸子·일본) 등 여섯 명으로 심사위원회를 다시 구성해 3개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해 쿱 힘멜브라우사가 설계자로 확정했다. 국내 설계업체로는 희림종합건축사가 정해졌다. 설계업체가 산정한 건축비는 1278억원으로 당초 예산 460억원의 세 배나 됐다.

예산확보가 최대 과제가 됐다. 2006년 초 부산시에서 문화관광부와 기획예산처에 증액을 요구했지만 ‘불가’ 통보를 받았다. 나는 예산을 확보하려고 문광부와 기획예산처를 찾아다녔다. 3월 2일 오전 가장 먼저 문광부의 박양우 기획관리실장, 오후엔 경기고 후배인 신철식 기획예산처 기획관리실장을 각각 만났다. 신 실장이 다음날 김대식 등 담당국장들과의 저녁 자리를 마련해줬고 이 자리엔 안성기·강수연 배우와 이춘연 영화인회의 대표가 자리를 함께해 설득에 힘을 보탰다. 4월 7일엔 기획예산처 직원들을 초청해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영화를 보고 장미희 배우와 함께하는 간담회 자리를 주선했다. 경제기획원 당시 예산국장이던 장병완 차관(후에 장관 승진)의 역할도 컸다.

2008년 기공식, 2011년 공식 개관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전당 전경. [뉴시스]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전당 전경. [뉴시스]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설득에만 약 2년이 흘러갔고 건축예산 규모는 1700억원대로 늘었다. 부산시의 허남식 시장, 안준태 부시장, 건설본부의 김영기 부장 등 담당 국·과장과 실무자들의 노력이 뒷받침됐고, 이재웅·윤원호 등 국회의원, 최인호 비서관 등 부산 출신 인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부산상공회의소 신정택 회장이 설득 작업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결국 기획예산처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예비타당성 검토를 요청했고 나는 경기고 후배인 현오석 원장의 주선으로 KDI 간부와 직원을 상대로 ‘특강 뒤 가든파티’까지 하면서 협의를 끌어냈다. 2008년 5월 30일 기획재정부(기획예산처가 기획재정부로 격상)가 ‘단 건축의 미학적 측면을 제고하는 방향의 추가투자는 사업주체인 부산시의 자체 자금조달로 수행 가능하다’는 조건을 붙여 691억원의 국비 지원을 결정했다. 마지막 단계에서 허남식 시장이 국비 이외의 예산 약 1000억원을 부산시가 부담하기로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일인 2008년 10월 2일 오전 11시30분 김장실 문화관광부 차관, 허남식 부산광역시장, 설계회사의 대표, 영화제에 참석한 내외 귀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공식이 열렸다. ‘영화의전당’으로 이름을 바꾼 부산영상센터는 2011년 공식 개관했다. 나는 준공을 1년 남긴 2010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에서 물러났다. 오늘날 ‘영화의전당’은 부산의 문화공간이자 명소,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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