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449명당 놀이시설 1곳 “뛰놀 곳도 축구할 곳도 없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2.07.02 00:02

업데이트 2022.07.02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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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호 12면

아이들 놀이터 태부족 

대전 서구 엑스포시민공원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 [뉴스1]

대전 서구 엑스포시민공원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 [뉴스1]

“퇴근 후 저녁에 아이들이랑 같이 놀만한 공간이 없습니다. 요즘 애들끼리 모여서 축구할 곳도 없는걸요. 얼마나 답답했는지 중학교 1학년 첫째 아들이 탁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주말마다 차를 끌고 멀리 나가서 배드민턴도 치는데 요즘 기름값에, 주차비에….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공간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8일 서울에서 세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박철한(43)씨가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요즘 아이들과 어디에서 노세요?”라는 짧은 질문에 평소 아이들과 놀아줄 장소가 마땅찮던 그간의 고충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박씨는 현재 유치원생 남아, 초등학생 여아, 중학생 남아까지 2남 1녀의 아빠이자 직장인이다. 인근에 갈만한 곳은 주택가 놀이터 뿐이다. 하지만 근처에 주택과 자동차가 즐비한 이곳에서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은 제한적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주말마다 근교로 나가 다양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매주 세 아이와 ‘작정하고 놀아주는 비용’도 만만찮다. “집은 층간소음 때문에 안 되죠. 골목길은 자동차에 오토바이까지 지나다녀 위험하죠. 키즈카페처럼 아이만 노는 곳이 아닌, 부모가 아이와 함께 놀 수 있는 곳은 정말 없어요.”

어린이 507만명, 놀이시설 7만8000곳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장소가 턱없이 부족하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 만 18세 이하 어린이 및 청소년은 787만909명이다. 이중 만 12세 이하 어린이는 507만6705명이다. 반면 전국 어린이 놀이시설은 7만8259곳에 불과하다. 만 12세 이하 어린이 인구로만 계산해도 어린이 65명이 놀이시설 1곳을 함께 이용하는 셈이다. 그렇게 나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통계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실상은 수치 이상으로 열악하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먼저 집계된 놀이시설 7만8259곳 중 절반 이상인 4만1183곳이 아파트 등 주택단지에 있는 놀이터다. 자동차와 주택으로 둘러싸여 있어 공간이 제한적이다. 그나마 지상주차장이 없는 신축 아파트의 어린이 놀이터는 넓은 편이다. 하지만 아이들끼리면 몰라도 부모가 아이와 함께 놀 장소를 찾아 타 아파트 놀이터를 찾기엔 눈치가 보인다. 공간이 부족해 이용 가능 연령을 초등학생 이하로 제한하고, 공놀이를 금지하는 곳도 상당수다. ‘14세 미만 이용 가능’ ‘축구·야구 금지’등의 안내판을 만나기 일쑤다.

보육·교육 시설 내 놀이시설은 그림의 떡이다. 어린이집·유치원·학교에 설치된 놀이터는 2만2433곳이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있는 시간이면 몰라도, 하원 후 어린이집 및 유치원에 있는 놀이터를 이용하는 사례는 드물다. 등록된 아이도 그런데, 외부 어린이가 이용할 수 있을 리는 더더욱 없다. 전국 초·중·고교에 있는 놀이시설 6656개도 이용하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현재 코로나19를 이유로 운동장 개방을 하지 않는 학교가 상당수고, 코로나와 무관하게 이미 이전부터 외부인 출입을 금지한 학교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내 공립학교 973개교만 하더라도 지난 4월 기준 운동장이 있는 958개교 중 운동장을 개방한 학교는 518개교에 불과하다. 개방을 하더라도 일몰 시간 전 등 제한을 둬 오후 8시 전에 닫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학교 바로 앞에 살아도 퇴근한 워킹맘·워킹대디가 저녁을 먹고 아이와 함께 찾긴 어려운 시간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운동장을 개방하지 않는 학교에서는 재학생조차 하교 후 운동장 이용이 불가능하다. 지난 29일 오후 7시 서울 도봉구 소재 A초등학교의 교문 위엔 출입 통제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코로나 감염 예방 차원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일체 금지한다’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을 제외하고는 학교 출입문을 개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학교 보안관에게 하교시간 이후 재학생도 이용할 수 없냐고 물으니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A초등학교 관계자는 “코로나19와 교내 안전사고 발생을 우려해 운동장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며 “방과후 수업이 있는 5시까지는 재학생들의 운동장 사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해당 학교는 인근 아파트 단지만 9개일 정도로 가족 단위 주민이 많이 사는 곳에 있다.

A초등학교 5학년 학생의 부모인 정소양(51)씨는 “예전에는 아이가 하교 후 운동장에서 많이 놀았고, 지역 주민들도 저녁에 걷곤 했는데 지금은 아이들도 못 들어간다”며 “애들이 가까운 운동장을 놔두고 인근에 조성된 다른 아파트 놀이터나 차도에서 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축구하는 모습은 추억이 된 셈이다.

하지만 학교 운동장 개방을 강제할 방안은 없다. “모든 국민은 국립학교의 시설 등을 이용할 수 있다”는 초·중등교육법 11조에 따라 원칙적으로는 지역 주민이 운동장 등 학교 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학교교육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 한해 가능하고, ‘학교장의 결정’이 우선한다. 대표적으로 전라북도 교육규칙에는 “학교운영 및 교육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학교장이 학교 체육시설 이용을 거부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지난 29일 오후 7시 서울 도봉구 소재 한 초등학교 정문에 출입 통제 안내문이 붙어있다. 윤혜인 기자

지난 29일 오후 7시 서울 도봉구 소재 한 초등학교 정문에 출입 통제 안내문이 붙어있다. 윤혜인 기자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대부분이 이와 비슷한 내용의 교육규칙 혹은 조례를 가지고 있다. 전라북도교육청이 지난 4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학교 체육 시설 개방을 권장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도내에 여전히 운동장을 개방하지 않는 학교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 역시 지난 4월 사회적거리두기 해제 내용과 조례상 학교 시설 개방이 원칙이라는 내용을 각 학교에 안내한 바 있다. 전라북도교육청 관계자는 “코로나 감염 우려로 개방을 안 한다는 학교에게 개방을 강제할 방안은 없다”며 “현재로써는 학교장 결정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위의 시설들을 제외하면 남는 곳은 겨우 1만4643곳. 이마저도 식당·찜질방·휴게소·병원 등 일반 영업장 한편에 설치된 어린이 시설이 포함된 수치다. 언제든 갈 수 있는 도시공원·자연휴양림·하천은 1만1308곳뿐이다. 실질적으로 어린이 449명(어린이와 청소년의 경우 696명)이 도시공원 놀이시설 1곳을 함께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갈 만한 곳이 없을 때마다 매번 키즈카페 등 유료 시설을 이용하자니 비용이 부담된다. 아이들 스스로도 어린이 놀이시설이 부족하다는 걸 체감할 수 있을 정도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전국 만 18세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 447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장 원하는 아동 정책으로 ‘놀이 및 문화시설 확대’가 꼽혔다.

성장기 신체활동, 심신 건강에 중요

몸과 마음이 자라는 아동·청소년기 신체 활동은 중요하다. 운동을 안 하면 키가 안 크고 비만율이 높아진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학생의 과체중·비만율이 2019년 26.7%에서 2021년 32.1%로 5.4%포인트 증가했다. 서울 초·중·고교생 3명 중 1명은 과체중 혹은 비만인 셈이다. 또 아동·청소년기에는 성인보다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많이 분비된다. 아이들이 쉬지 않고 뛸만큼 기운이 펄펄나고 활동적인 이유다. 이때 많이 움직여야 몸과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아이들에게 ‘30분 동안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라고 하는 것은 어른에게 3시간 동안 움직이지 말라는 것과 유사하다”며 “도파민이 활성화된 초등학교 저학년과 유아 때는 특히 많이 뛰어놀아야 심적으로 편안해진다”고 말했다.

어린이 시설 부족 현상은 사회복지에 인색한 면이 반영된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이 낮은데 그 영향이 반영된 결과 아니겠느냐”며 “전반적으로 사회복지를 위한 지원이 낮을 뿐만 아니라 ‘우회전 신호등’ 등 아동의 안전을 위한 투자도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영국이나 독일에서는 가까운 곳에 주민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체육시설이 있어 우리나라처럼 운동장이 크게 있는 학교가 오히려 드물다”며 “우리나라에서 학교 운동장이 놀이시설 부족 문제를 보완적으로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하긴 했지만, 학교만 오픈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체육시설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신 교수는 어린이 놀이시설 조성에 미래가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이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잘 자라려면 아무 시설이 없더라도 넓은 공간에서 뛰어노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실상 도심지에는 그런 공간이 없는 게 현실이죠.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아이들이 야외에서 마음껏 놀 수 있는 공원을 조성해야 아이들의 행복지수가 많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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