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품종, K-농기술 등에 업고 세계 시장 노크

중앙일보

입력

“한국 딸기가 맛있다.”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선풍적인 인기를 끈 여자 컬링 종목에서 우리나라와 준결승전을 벌인 일본팀 스즈끼 유미 선수의 이 발언이 화제가 됐다. 스즈끼 선수는 귀국한 후 일본 딸기 180박스를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맛있는 일본 딸기를 많이 사랑해 달라는 의미였다고.

당시 일본의 농림수산상이 나서서 한국 딸기가 일본 딸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예민하게 반응할 정도로 일본의 딸기에 대한 자부심은 크다. 2005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딸기 품종의 대부분은 일본에서 온 ‘육보’와 ‘장희’였다.

2005년 우리나라 딸기 품종 점유율은 9.2%에 불과했지만 16년 후인 2021년 이 점유율은 96.3%로 뛰어올라 놀라운 역사를 쓰게 된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05년 충남농업기술원 딸기연구소에서 개발한 ‘설향(雪香)’ 품종은 생소하고 무르다는 이유로 처음에는 외면을 당했다. 그러나 풍부한 과즙에 당도가 높고, 수량이 많으며 흰가루병에 강한 장점이 알려지면서 현재 설향은 점유율 84.5%로 우리나라의 딸기를 대표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눈 속의 향기’라는 이름 그대로 설향이 개발된 이후로 이른 봄이 되어야 맛볼 수 있었던 봄철 과일 딸기는 겨울에도 만날 수 있는 과일이 되었다.

현재 국산 딸기는 설향을 포함한 18품종이 재배되고 있다. 2012년에 담양군농업기술센터에서 육성된 ‘죽향’, 2016년 경상남도농업기술원에서 육성한 ‘금실’, 2017년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육성한 ‘아리향’ 등 각자의 특성을 갖춘 우수한 국산 딸기 품종이 한국 딸기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다.

국산 딸기는 홍콩,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021년의 딸기 수출량은 4871톤, 수출금액은 6468만 달러로, 2005년에 비해 15배나 증가했다. 일본 딸기 품종에 대한 로열티로 연간 부담해야 했던 27억 원을 절감한 것은 덤이다.

국산 딸기가 딸기 강국 일본을 넘어서 품종 독립을 이루고 수출 효자 품목으로 거듭난 데에는 품종 국산화를 위한 열정과 선진 농업기술이 있었다. 딸기 품종의 뿌리가 어디에 있건 새로운 품종을 육성하고 품종에 맞는 최적 재배기술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딸기의 국산화를 앞당기는 기적을 만든 것이다.

선진 농업기술로 외국 품종을 국산화시킨 사례는 샤인머스켓 포도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명품포도로 떠올라 비싼 가격에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샤인머스켓은 사실은 일본 품종이지만 로열티에 대한 부담은 없다.

국산 샤인머스켓은 중국과 베트남 등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효자 노릇을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수출 규모도 이미 일본의 5배를 넘어서고 있다.

샤인머스켓의 수출 성공에는 우리나라의 수준 높은 재배기술이 있었다. 샤인머스켓의 품질을 높이는 송이의 적정 무게, 수확 시기 등의 기술이 정립되어 있고, 또 3개월까지 보관할 수 있는 장기 저장 기술 개발로 출하 시기를 조절할 수 있다. 기회는 준비된 자만이 얻을 수 있다.

세계 수출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국산 품종의 개발 성과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이다. 2012년 이후 주요 원예작물의 국산화율은 조금씩 높아지고, 로열티 지급액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채소 2개 작물(딸기, 양파), 화훼 6개 작물(장미‧국화‧난‧카네이션‧거베라‧포인세티아), 과수 4개 작물(키위‧감귤‧블루베리‧체리)과 버섯의 평균 국산화율은 2012년 17.9%에서 2021년 29.4%로 상승했다.

국산화율이 상승함에 따라 로열티 지급액도 꾸준한 감소 추세다. 2012년 175억7000만원이었던 로열티 지급액은 2015년 123억2000만원, 2021년 95억8000만원으로 줄어들었다. 국산 품종의 수출 확대에 따라 외국에서 로열티를 받는 품종도 늘어나고 있다. 2015년 이후 외국에서 로열티를 받는 작물은 장미‧딸기‧국화‧키위‧이탈리안라이그라스의 5개 작물, 25개 품종으로 약 21억 800만 원을 벌어들였다.

세계 버섯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서양 음식에 많이 사용되는 식재료인 양송이의 국산화율이 67.8%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다. 2010년 4%에 비해 16배나 증가한 수치이다. 전체 국산 양송이 품종의 47.8%를 차지하는 ‘새한’, ‘도담’, ‘새도’ 3품종은 국산 품종 보급의 일등 공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양송이를 앞세운 국산 버섯 품종 보급률은 2021년 60.0%로 이제는 수출에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에는 버섯 씨균만 심으면 바로 재배할 수 있는 ‘완성형 버섯 배지’를 베트남에 시범 수출해 현지 생산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현재 표고, 느타리, 느티만가닥버섯 배지가 수출되고 있고 올 9월에는 양송이 배지도 추가될 예정이다. 완성형 버섯 배지 수출로 동남아 국가에 현지 버섯 재배 시스템이 정착되면 우리나라 버섯 수출량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수한 국산 품종은 세계의 꽃 시장도 두드리고 있다. 일본 국화를 대체하기 위해 2004년 개발된 ‘백마’ 품종은 일본의 주력 품종 ‘신마’보다 장점이 많아 2007년부터 일본에 본격적으로 수출이 시작된 이래 2021년까지 수출량 2520만4000 본, 수출액 1539만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백마는 국산 품종 점유율 확대에도 크게 이바지하면서 2006년 0.9%에 불과했던 국산 국화의 품종 점유율은 2021년 33.9%까지 올라갔다. 백마의 후속 품종으로 2015년 개발된 ‘백강’ 품종 역시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대한민국 우수 품종상 대회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은 ‘홍산’ 마늘은 1980년대부터 장기계획 아래 전략적으로 육성한 품종이다. 2016년 품종 등록된 홍산 마늘은 기능 성분인 ‘알리신’이 다른 품종보다 45% 이상 더 많아 경쟁력이 매우 높다. 홍산은 전국 어디에서나 재배할 수 있으며, 중국·스페인으로부터 도입된 수입 씨마늘인 남도, 대서의 대체 품종으로 주목받는다.

우리나라의 국산 품종은 전 세계적인 식량 위기 속에서 식량 안보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며 0.8%에 불과한 밀의 자급기반을 높이기 위해 밀 품종육성에 주력한 결과 ‘우리 밀 삼총사’로 알려진 국산 밀 품종 개발에 성공했다. 제빵적성이 좋은 밀 ‘황금알’, 알러지 저감 밀 ‘오프리’, 기능 성분이 풍부한 유색 밀 ‘아리흑’은 우리 밀 산업이 발전을 주도할 것으로 기대된다.

K-농업기술과 결합한 국산 품종은 우수성과 경쟁력으로 세계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농업 강국 네덜란드와 일본의 품종들을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우리 기술로 개발된 K-품종이 세계 속으로 진출해 농업 선진국의 품종들과 당당하게 경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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