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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하면 아동 살해 막을 수 있냐"…교사들 분노한 이 지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9일 오전 전남 완도군 신지면 송곡항 인근 앞바다에서 경찰이 최근 실종된 조유나양(10) 일가족의 아우디 차량을 인양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29일 오전 전남 완도군 신지면 송곡항 인근 앞바다에서 경찰이 최근 실종된 조유나양(10) 일가족의 아우디 차량을 인양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교사가 전화 걸면 아동 살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긴가요."

완도 초등학생 실종 사건과 관련해 교육부가 체험학습을 떠난 학생과 주 1회 이상 통화해 안전을 확인하라고 하자 교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효과 없는 전시행정에 불과한데다가 오히려 교사와 부모가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교외 체험학습 신청 후 가족과 함께 전남 완도에서 실종된 초등학생 조유나(10)양이 숨진 채 발견되자 교육부는 체험학습 학생관리 강화에 나섰다. 최근 교육부는 전국 시‧도교육청에 연속 5일 이상 체험학습을 신청하면 담임교사가 주 1회 이상 아동과 통화해 안전을 확인하도록 한 인천시교육청의 사례를 안내하면서 이를 토대로 ‘교외체험학습 학생 관리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피해 아동 7차례 35일 동안 체험학습 신청 

광주광역시교육청에 따르면 조양은 올해 1학기에만 7차례에 걸쳐 총 35일 교외 체험학습을 신청했다. 지난 5월 19일부터 6월 15일까지 체험학습을 신청한 조양이 신청 기간이 지나서도 등교하지 않자 학교 측은 22일 경찰에 신고했다.

광주 지역의 시민단체가 조사한 지역 학교들의 교외 체험학습 현황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제공]

광주 지역의 시민단체가 조사한 지역 학교들의 교외 체험학습 현황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제공]

교육청은 조 양의 체험학습에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교외 체험학습은 시도교육청마다 지침이 다르고 학교마다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조양이 다녔던 광주 서구 초등학교의 경우 휴일을 제외하고 최대 38일까지 체험학습이 가능하며 체험학습 1일 전까지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 당국은 조양이 수차례 체험학습을 신청하는 동안 이상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에서 부모에게 연락을 시도하고 가정 방문을 하는 등 대응을 적절하게 했다”고 말했다.

교원단체 “학부모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

교육부는 체험학습 관리를 강화한다는 방침이지만 현장 교사들은 “전화로 생사 확인을 하면 아동 살해를 막을 수 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의 초등학교 교사 김모(40)씨는 “경찰도 막지 못한 것을 학교가 어떻게 막겠나. 교사로서 무력감을 느끼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체험학습 신청기한이 정해져 있지만 학부모가 해달라고 하면 교사는 들어줄 수밖에 없다”며 “학교나 교사가 아닌 학부모가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원단체들도 잇따라 입장문을 내고 교육부의 지침에 반대를 표했다. 교사노조연맹은 지난달 30일 “장기 체험학습 시 (학생의) 소재를 파악하라는 대책은 전시적 행정에 불과하다”며 아동 존엄성 인식을 제고하는 등 장기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교총도 “전화 연락 의무화는 학부모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정책으로 연락 과정에서 불필요한 마찰이 생길 것”이라며 우려했다.

체험학습 기간 코로나19 동안 3배 넘게 늘어나

지난달 27일 실종된 조유나양 일가족이 살던 광주 남구의 한 아파트 문 앞에는 자전거 2대와 법원 특별 우편 송달 안내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뉴스1

지난달 27일 실종된 조유나양 일가족이 살던 광주 남구의 한 아파트 문 앞에는 자전거 2대와 법원 특별 우편 송달 안내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뉴스1

대신 교외 체험학습 제도 자체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전에는 체험학습 기한이 최대 15일 내외였고 그마저도 신청자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등교를 꺼리는 학부모가 늘자 정부는 체험학습을 최대 57일까지 늘려줬다. 코로나19 거리두기 단계가 조정되고 등교가 정상화됐지만 체험학습은 아직 이전 기준대로 시행 중이다.

현장체험학습이 본래의 취지를 잃고 '학습이 아닌 자유 여행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양이 체험학습을 신청한 이유도 사건 당시의 ‘제주 한 달 살기’를 비롯해 여수, 외갓집 방문 등 교육 목적과는 거리가 멀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초등학교 교사는 “부유한 학생들은 체험학습으로 여행을 다녀와 자랑하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학교에 남기 때문에 교실에 위화감이 조성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녀 살해 후 자살에 대한 대책도 아동학대 예방대책 포함하는 등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미숙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생활고를 겪는 가정을 긴급 구제할 수 있는 제도들이 있는데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학교와 주민센터를 연계해 아동의 생활 환경을 파악하는 등 위기 가정을 선제적으로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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