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결혼식 아침, 피렌체의 백합을 붉은 피로 물들인 역사 [BOOK]

중앙일보

입력

책표지

책표지

붉은 백합의 도시, 피렌체
김상근 지음

김도근 사진
하인후 옮김
시공사

깊이 있는 인문지식으로 잔뜩 무장하고 한곳을 느긋하게 탐색하는 전문가급 관광객들이 늘고 있다.  『붉은 백합의 도시,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발상지’ ‘꽃의 도시’ ‘천재들의 도시’ 등 별명이 많은 이탈리아 피렌체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은 피렌체를 남북으로 가르는 아르노강 동맥과 수없이 많은 역사적 명소들, 골목골목마다 이리저리 얽혀 있는 온갖 사연을 다 품고 있다. 거기다 우리를 안내해 줄 현지 가이드들이 피렌체 출신인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와 『신곡』을 쓴 단테다.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시리즈를 펴내고 있는 김상근 교수(연세대 신과대학)가 마키아벨리, 단테와 동행한다. 마키아벨리가 생애 마지막으로 쓴 『피렌체사』의 주요 내용은 하인후 작가의 원전 번역을 실었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필오레 성당의 백미인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의 돔. [사진 김도근]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필오레 성당의 백미인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의 돔. [사진 김도근]

 1216년부터 1525년까지의 300여 년에 걸친 피렌체 시간 여행을 담은 이 책에는 베키오 다리, 시뇨리아 광장, 단테의 집, 메르카토 베키오, 산타 크로체 광장, 산타폴리나레 광장,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피티 궁전, 산 로렌초 대성당, 메디치 저택,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산 마르코 수도원, 루첼라이 정원 등 13곳의 무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피렌체의 생생한 역사가 살아 있다. 피렌체 역사를 너무 디테일하게 현미경으로 들여봐 한국 독자들이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하지만 지금은 ‘각론의 시대’가 아닌가. 피렌체에 대한 총론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아봐야 어디 가서 말발이 잘 서질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첫 스토리는 베키오 다리에서의 혈투로 시작한다. 1216년 당시 피렌체는 이탈리아반도나 유럽의 다른 나라들처럼 교황파와 황제파로 분열돼 있었다. 피렌체 강남의 맹주이자 교황파 귀족의 리더는 부온델몬티였다. 부활절 아침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베키오 다리를 지나던 부온델몬티는 강북의 황제파 우베르티 가문 일당의 공격을 받고 피살된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이 도시의 상징 꽃인 흰 백합화가 붉은 피로 물들면서 피비린내 나는 복수와 계층 간 권력다툼의 어두운 피렌체 역사가 시작된다.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서 바라본 베키오 다리. [사진 김도근].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서 바라본 베키오 다리. [사진 김도근].

 이후 귀족 가문들은 서로 죽고 죽이다가 공멸했다. 권력은 이제 ‘유력한 평민들’에게로 넘어갔다. 황제파 우베르티 가문의 저택을 허물고 지은 시뇨리아 정청은 평민지배의 상징이다. 1282년부터는 ‘상인이거나 기술을 익힌 사람들’ 즉, 평민만이 피렌체의 선출직 행정장관(프리오리, 시뇨리)이 될 수 있었다.  피렌체 시뇨리아는 입법권과 사법권을 동시에 통제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외국과 동맹을 체결하거나 전쟁을 선포하는 것도 시뇨리아의 소관이었다. 단테도 프리오리를 역임했다. 1293년부터는 ‘정의의 규칙’에 따라 피렌체 72개 귀족 가문의 공직 진출이 원천적으로 봉쇄됐다.

 욕하면서 배우는 것은 인류의 숙명이던가. 피렌체 권력을 잡은 평민들도 귀족들처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패를 갈라 싸우기 시작했다. 경쟁자들을 악의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사소한 잘못에도 명목상의 법과 정의를 들이대며 상대방을 파괴하려 드는 귀족들의 고질병이 재현된 것이다. 백당(白黨)의 외교관 단테는 흑당(黑黨)에 밀려 피렌체에서 추방됐다. 단테는 이때부터 이탈리아 전역을 떠돌면서 『신곡』을 집필했다고 한다.

 귀족과 귀족, 귀족과 평민, 평민과 평민, 평민과 하층민, 하층민과 하층민 사이에 목숨을 건 권력 투쟁이 이어졌다. 지금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는 인간군상들의 다툼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우피치 미술관의 입구에 전시되어 있는 코시모 데 메디치의 동상. 손자 로렌초,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았던 예술가들의 동상도 함께 있다. [사진 김도근]

우피치 미술관의 입구에 전시되어 있는 코시모 데 메디치의 동상. 손자 로렌초,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았던 예술가들의 동상도 함께 있다. [사진 김도근]

 그러던 와중에 ‘르네상스의 주역’ 메디치 가문이 부상한다. 평민과 하층민의 단단한 지지를 받았던 메디치가는 참주정 형태로 피렌체 권력을 독점하다시피 한다. 1434~1494년 60년간은 메디치가가 다스리던 ‘피렌체의 황금기’였다. 메디치가의 후원으로 르네상스 문화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300여 년 동안 피렌체에서는 지배하려는 자와 지배를 당하지 않으려는 자 간의 투쟁이 이어졌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사』에서 “지배하려는 귀족(유력 가문)의 욕망과 복종을 거부하는 평민의 저항에서 비롯되는 귀족과 평민 간의 심각하지만 자연스러운 적의가, 공화국에 창궐하는 모든 악의 근원이다. 왜냐하면 공화국을 뒤흔드는 다른 모든 것이 대립하는 이 두 기질에서 그 자양분을 얻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했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지은이 김상근 교수는 말한다. “권력을 잡은 자와 권력을 잡으려는 자들의 이전투구가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부자와 가난한 자,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은 도를 넘었다. 정치가들은 권력을 잡기 위해 두 집단의 갈등을 부추긴다. 두 집단을 갈라치면 갈라칠수록 사회적 갈등은 양산되고 정치가들에게 돌아갈 이익은 커진다. 피렌체는 우리의 타산지석이다.”

 코로나가 지나가면서 그동안 꽁꽁 묶였던 하늘길도 다시 열려 가고 있다. ‘성찰하는 피렌체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가방에 이 책 한 권쯤은 넣고 다닐 만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