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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야곱의 자손? 서양인이 책에 기록한 근대 조선[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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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조선

1만 1천 권의 조선
김인숙 지음
은행나무

이 책의 저자 김인숙 소설가에 따르면 희귀본 고서적은 유령과도 같은 존재다. 분명히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는 책, 시간과 시간 사이, 공간과 공간 사이 어딘가에서 흔들리듯 존재하는 책들이라는 것이다.

수사(修辭)를 걷어내자. 왜 그렇다는 것일까. 희귀본이든 고서적이든 멸실돼 기록으로만 전하는 책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면 분명 실재하는 책들에 대한 이야기인 듯한데 말이다.

유령에 빗댄 고서적들은, 책 제목이 말해주듯 조선에 관한 책들이다. 한 권을 빼고는 저자가 모두 외국인들이다. 멀게는 13세기 중반 이 땅의 나라를 '솔랑가' 혹은 '카울레'로 언급한 『몽골 제국 기행』 같은 책부터 가깝게는 유명한 이사벨라 비숍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1898)이나 조선 황실 의전 담당이었던 독일인 엠마 크뢰벨의 『나는 어떻게 조선 황실에 오게 되었나』(1909) 같은 책까지 '우리'가 언급된 혹은 우리를 다룬 마흔여섯 권을 소개했다. 명지-LG한국학자료관이 소장한 1만1000권의 서양 고서 가운데 가려 뽑은 것들이다.

장로교 목사인 남편과 함께 1913년 조선에 온 여성 플로렌스 크랜이 쓴 책 '조선 꽃들과 민담'(1931,영어). 눈부시게 아름다운 책 속의 그림 역시 크랜이 직접 그렸다. 조선에서 줄곧 순천에 살았던 크랜은 어린 두 아들이 차례로 숨지자 아이들을 순천에 묻었다. [사진 은행나무]

장로교 목사인 남편과 함께 1913년 조선에 온 여성 플로렌스 크랜이 쓴 책 '조선 꽃들과 민담'(1931,영어). 눈부시게 아름다운 책 속의 그림 역시 크랜이 직접 그렸다. 조선에서 줄곧 순천에 살았던 크랜은 어린 두 아들이 차례로 숨지자 아이들을 순천에 묻었다. [사진 은행나무]

 실마리는 마흔여섯 권이 각각의 이유로 온전치 못하다는 데서 풀린다. 당연한 이치이겠지만 책들은 우리를 남김없이 기록하지 못했다. 제한된 기록은 오해와 편견을 부른다. 책들을, 잠정적으로 오해와 편견이라는 유령의 책들이라고 하고 넘어가자.

유령이되 이 책들에는 몸이 있다. 책은 이야기를 담은 몸이다. 흥미진진하거나 반대로 지루하거나 아니면 끔찍한 이야기들이 그 안에 담긴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아름답다. 얼룩, 낙서, 찢겨나간 흉터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조선이라는 타자와 맞닥뜨린 서양인들의 미묘한 시선을 전하면서 오래된 책들의 아름다운 물성까지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는 게 김인숙의 기획의도다.

 아름다운 물성은 이 책에 실린 수십장의 책 사진에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오해와 편견이야 널려 있다.
 가령 멕레오드라는 사람은 1879년 책 『조선과 사라진 열 지파』에서 한국인들이 성경의 야곱의 열두 아들 중 하나의 후손,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미케위치는 1953년 이런 책을 출간했다. 『한국인은 백인이다』. 그리스어의 '네'와 한국어의 '네'가 똑같이 'yes'를 의미한다는 우연의 일치에 착안해 한국어와 고대 그리스어, 현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8000개를 비교 분석했다. 한국인이 고대 그리스인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소설로도 만들어져 친숙한 안토니오 코레아에 얽힌 이야기는 반대로 한국인이 이탈리아에 뿌리내린 경우다. 1701년 안토니오 카를레티의 『항해록』이 근거다. 1986년 이탈리아 알비 마을의 '코레아' 성을 쓰는 사람들이 당시 한국 대통령에게 자신들의 한국인 조상을 찾아달라는 탄원서를 냈던 사실까지 소개한다.

6년간 일본에 살았던 네덜란드 사람 필립 프란츠 폰 지볼트의 20권짜리 책 '일본, 일본과 그 이웃 나라 및 보호국'(1832~1851)중 7권에 조선 관련 부분이 나온다. 사진은 조선인의 모습이 실린 페이지. [은행나무]

6년간 일본에 살았던 네덜란드 사람 필립 프란츠 폰 지볼트의 20권짜리 책 '일본, 일본과 그 이웃 나라 및 보호국'(1832~1851)중 7권에 조선 관련 부분이 나온다. 사진은 조선인의 모습이 실린 페이지. [은행나무]

 김인숙의 책은 청나라 볼모에서 돌아와 석연찮게 죽은 소현세자(1665년 『중국포교사』) , 프랑스에서 유학한 첫 조선인이었으나 귀국 1년도 되지 않아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1895년 『다시 꽃 핀 마른 나무』) 이야기를 전하는 대목에서 뜨거워진다. 적어도 기자에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김인숙은 쓴다. "세계를 만나는 방식의 차이는, 그들의 존재의 차이이기도 하다"고. "각기 다른 자리에 있고, 각기 다른 이상을 품고 있던 그 청춘들의 세계가 흔들리자 조선도 흔들렸다"고(248쪽). 김옥균은 개화파, 홍종우는 왕정주의자였다. 김옥균의 죽음은 세계관, 존재의 차이가 부른 죽음이다.

미국에서 1885년 출간된 스튜어트 컬린의 책 '조선의 게임'에 실린 '장기'. 이 책은 무려 97가지 게임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은행나무]

미국에서 1885년 출간된 스튜어트 컬린의 책 '조선의 게임'에 실린 '장기'. 이 책은 무려 97가지 게임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은행나무]

'조선이 게임'에 실린 '쌍륙하는 모습'. [사진 은행나무]

'조선이 게임'에 실린 '쌍륙하는 모습'. [사진 은행나무]

 이런 틀을 서양인에게 적용하면 조선에 대한 인상 차이로 나타난다. 이사벨라 비숍마저도 조선에 대한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관심은 결국 스스로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김인숙의 관심사는 우리의 안타까운 근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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