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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해 키워드 30]<영화> 할리우드 제친 찰리우드, 과제는 '매력 끌어올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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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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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화제가 됐던 중국 블록버스터 영화 〈장진호〉가 결국 중국 박스오피스 기록을 갈아치웠다.

중국 블록버스터 영화 〈장진호〉

중국 블록버스터 영화 〈장진호〉

지난해 9월 개봉한 이 영화는 올해 5월 기준 57억7546만 위안(약 1조 1900억원)을 기록해 2017년 개봉한 〈전랑2〉의 56억 8874만 위안을 넘어섰다. 하지만 전 세계 총 수입 9억254만 달러(2021년 말 기준) 중 중국 외 지역에서 거둔 수익은 314만 달러에 불과했다. 6·25 전쟁이란 민감한 주제 때문에 한국에선 개봉이 불발됐다. 말레시아에서도 ‘공산주의 선전’이란 이유로 개봉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미국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이어 2021년 전 세계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했다. 3위도 중국 영화 〈안녕, 리환잉〉이 차지했다.

〈장진호〉는 중국 영화산업의 명과 암을 동시에 보여준다. 압도적인 자국 시장 규모에 힘입어 양적 거대함을 이뤘지만 내용적으론 아직 세계인의 보편적 선택을 받지 못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2010년대부터 중국 영화계는 흔히 ‘찰리우드(China+Hollywood)’로 불려왔다. 상업 영화의 대명사 미국 할리우드만큼 중국 영화산업의 덩치가 커졌다는 의미다. 찰리우드는 중국 국내 영화시장과 해외 영화산업 진출이라는 두 차원에서 쓰이는 용어다.

중국 영화산업은 2012년 2배로 급성장하며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가 됐다. 2016년 말 스크린 개수가 미국을 추월했고 2020년 시장 규모마저 미국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개혁개방의 과실이 맺히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멀티플렉스가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했고, 중국인들에게 영화 관람은 아주 접근성 좋은 취미생활이었다. 중국에서의 역대 흥행 순위 톱10을 보면 모두 2017년 이후 개봉한 영화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이후 개봉된 작품도 4편이나 된다. 한해 관람객 수는 17억이 넘는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도 한 몫을 했다. 정부는 2008년부터 문화산업을 핵심 성장동력으로 삼고 영화관 확장을 진행해 왔다. 2022년 현재 스크린 수는 약 10만, 2026년까지 14만 개를 넘긴다는 목표인데 이 숫자대로면 현재 미국 스크린 수의 3.5배 한국의 50배 수준이다.

중국의 영화 촬영 세트장은 웬만한 중소 도시를 방불케 한다. 저장(浙江)성의 헝뎬스튜디오(橫店影視城)는 36㎢의 부지(약 1100만평·축구장 60배 크기)에 자금성과 진(秦)나라 아방궁 등을 실물 크기로 재현했다. 2200여년 전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부터 현대까지 시대별 소품 수십만 가지가 구비돼 있고, 단역 배우는 4만 명이 넘는다. 〈미션 임파서블 3〉, 〈미이라 3〉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도 여기서 제작됐다.

저장(浙江)성의 헝뎬스튜디오(橫店影視城) [사진 셔터스톡]

저장(浙江)성의 헝뎬스튜디오(橫店影視城) [사진 셔터스톡]

할리우드 등 세계 영화시장에 끼치는 영향력에서도 찰리우드의 위력이 발휘된다. 1980년대 소니 등 일본 거대 자본들이 할리우드 제작사들을 삼켰듯 중국 자본들이 할리우드를 삼키고 있다. 〈다크 나이트〉 시리즈와 〈쥬라기 월드〉 등을 제작한 레전더리 픽쳐스는 완다 그룹에 넘어갔다. 〈미드웨이〉는 중국 투자자들에 의해 완성될 수 있었고 〈베놈〉엔 텐센트가 투자했다. 이런 사례는 넘쳐나고 있고 이제 할리우드 영화 오프닝 화면에서 중국 기업 로고가 등장하는 게 전혀 낯설지 않다.

이렇다 보니 영화 내용에도 중국의 입김이 커지고 있다.  

장쯔이(章子怡)는 〈클로버필드 패러독스〉에서 중국 출신 우주인으로 등장하는데, 각국에서 모인 우주인들이 모두 영어로 소통하는데도 장쯔이 혼자만 중국어를 쓰는 우스꽝스러운 설정이 나온다. 〈월드워Z〉에선 좀비 바이러스 발원지가 원래 중국이었다가 한국으로 급수정됐다. 리처드 기어는 중국 사법제도를 비판한 〈레드 코너〉에 출연하고 달라이 라마를 지지했다가 할리우드에서 섭외 기피대상이 됐다.

〈클로버필드 패러독스〉에서 중국 출신 우주인으로 등장하는 장쯔이 [출처 넷플릭스]

〈클로버필드 패러독스〉에서 중국 출신 우주인으로 등장하는 장쯔이 [출처 넷플릭스]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가 진행된 이후론 영화산업도 여기에 편승하고 있다. 카자흐스탄과는 중국 출신 카자흐 작곡가 일대기를 그린 전기 영화를 합작했고, 중국 공주와 터키 요리사가 주인공인 터키 영화에 투자했다. 이란과는 코미디 영화를, 인도네시아와는 재난 영화도 합작했다. 서부 푸젠(福建)성 푸저우(福州)에서는 실크로드 국제영화제도 열린다.

앞서 지적했듯이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중국 영화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점이 크다. 사상의 통제 때문에 다양한 장르와 자유로운 내용의 작품이 제작되기 어려운 환경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동성애나 공포물,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영화, 정치적으로 민감한 작품이나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영화는 제작되지도 수입되지도 못한다. 〈장진호〉나 〈건국대업〉, 〈중국의사〉처럼 공산당을 찬양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소위 주선율(主旋律) 영화가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2021년)을 전후해 대거 개봉했는데, 이런 주제의 영화들은 해외 관객들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 〈전랑〉 시리즈나 〈홍해행동〉처럼 중국인 전쟁영웅들이 등장하는 액션물들은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하면 손발이 오글거림을 느끼기 십상이다.

과거 한국에서도 시행됐던 스크린 쿼터제 같은 상영 제한도 존재한다. 성수기에 해당하는 춘절(설) 연휴, 노동절 연휴, 중추절(추석) 연휴, 여름방학 기간인 6월 말~8월 중순 6주 동안은 외국 영화 개봉을 금지하고 있다. 또 원칙적으로 외국 영화는 1년에 34편까지만 개봉할 수 있다. 이런 사정들 때문에 중국 역대 흥행 10위권에 외국 영화는 〈어벤져스: 엔드게임〉 한 편뿐이다.

국내 영화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이지만 중국 영화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는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한국의 사례처럼 중국 영화가 세계인의 선택을 받을 만큼 매력적이 된다면 이런 규제도 없어질 것이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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