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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텔레그램 마약왕'은 고3이었다…어른들 부려 밀수·밀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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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찰이 불법 마약 유통 혐의로 한 ‘텔레그램 마약방’을 수사하던 가운데 충격적인 사례가 나왔다. 현재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이 총책으로 검거된 것이다. 이 18세 학생은 이른바 '텔레그램 마약방'을 직접 개설해 운영하면서, 필로폰(메스암페타민)·엑스터시(MDMA)·대마 등 다양한 종류의 마약류를 '해외 상선'으로부터 밀수해 국내에 유통했다고 한다.

이 학생은 이 과정에서 익명성이 보장되는 소셜네트워크(SNS)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이용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20~30대 중간 판매책과 환전책, 인출책 등을 모집해 '하선'으로 부리는 범죄집단을 조직했다. 현직 고등학생이 마약류를 단순 구입해 투약하는 단계를 넘어 밀수·밀매 조직을 구성해 운영한 사실은 수사기관마저 충격에 빠뜨렸다. 경찰은 현재 이 마약방의 하선과 구매자들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필로폰(메트암페타민). 미국 마약단속국(DEA)

필로폰(메트암페타민). 미국 마약단속국(DEA)

[10대 마약공화국④] '텔레그램 마약방' 트렌드에…밀수·밀매 조직 만든 고3

"지금은 50~60대 마약 판매자들이 잡혀들어와서 농담삼아 이런 말을 해요. 자기도 빨리 텔레그램을 배워야 되는데 큰일 났다고. 요새는 구매자들은 단속을 피해 판매자를 만나려고도 안 한다는 거거든요. 이제 텔레그램을 통하지 않으면 약을 팔 수가 없다는 거죠."

김대규 경남경찰청 마약수사대장은 최근 급속도로 변한 마약범죄 트렌드를 이렇게 설명한다. 마약사범들은 국제 마약상들이 구축한 '딥 웹'(Deep Web·IP주소 추적이 불가능하도록 설계된 특수 웹브라우저로만 접속 가능한 웹. '다크 웹'으로도 불린다)에서 마약류를 '직구' 하거나, 텔레그램 등 보안 메신저로 해외 판매 상선과 은밀하게 접촉한다. 결제는 대부분 가상화폐로 이뤄진다. 물건은 국제우편이나 특송화물로 손쉽게 수령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는 일은 없고 전화·e메일 등 통신기록조차 남기지도 않는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런 트렌드는 마약류 범죄자의 연령을 계속 낮추고 10대 청소년까지 확산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 10대들이 메신저와 채팅앱 등 이런 정보통신(IT) 트렌드 변화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마약류 사범은 총 450명으로, 전체의 2.8%다. 10년 전(41명, 0.4%)에 비해 인원은 11배 늘었고, 비중은 7배 커졌다. 20대 마약사범 역시 5077명으로 전 세대에서 가장 큰 비중(31.4%)을 차지했다. 20대는 10년 전(750명, 8.2%)에 비해 말 그대로 '폭증'했다. 어른들이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해 주춤하는 사이, 고등학교 3학년생이 밀수에까지 손을 뻗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세관 적발도, 현장 검거도 '열 번에 한 번' 걸러내"

대검찰청은 국내에서 유통되는 마약류 대부분이 동남아시아, 남미, 중국, 미국 등 해외에서 밀수입된다고 설명한다. 내국인이 마약류를 직접 재배·제조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2000년대 이후엔 농촌 등지 양귀비·대마 재배자 외엔 손 꼽을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텔레그램 등에 기반한 비대면·국제화 트렌드를 거슬러가면서, 굳이 위험하게 마약류를 직접 제조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연간 1억개에 달하는 해외 직구(전자상거래) 활용까지 마약류 밀수가 극도로 파편화하고, 밀수범의 연령도 낮아지면서 수사기관의 첩보 수집도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 때문에 수사 일선의 고충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최병찬 인천지검 강력범죄형사부 수사관은 "밀수범들이 지능화, 비대면화한 탓에 요새는 현장을 열 번 나가면 그중 한 번쯤 검거에 성공하는 게 보통"이라며 "세관이 국제화물·우편에서 적발한 밀수 마약도 실제 밀수량 대비 많아야 열 개 중 한 개라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가 잡아내는 건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했다. 마약류 범죄 수사 일선에서 느끼는 '체감 암수율(검거 대비 실제 발생범죄 수를 계산하는 배수)'은 100배를 상회한다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도, 국제범죄조직도 들여오는 마약

우리 국민만 아니라 국내 체류 외국인의 마약 밀수도 늘고 있다. 요즘엔 동남아시아 출신의 국내 체류 노동자들을 매개로 한 마약류 밀수가 고착화하고 있다. 2020년 7월엔 한 말레이시아인이 자국에서 여행용 가방 안에 필로폰 513g, 대마 90g, 야바 978정, 엑스터시 48정 및 분말 26.34g을 국내로 밀수입하다 적발됐다. 작년 5월엔 태국인이 항공 특송화물을 이용해 필로폰 약 4kg을 국내로 들여오다 걸렸고, 같은 해 9월엔 또 다른 태국인이 필로폰 940g, 야바 4444정을 국내로 밀수입했다가 적발됐다. 수사기관들은 밀수범이 불법체류자인 경우 신원 확인부터 쉽지 않아 골치라고 한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한 검찰 관계자는 "국내 태국인 불법 체류자만 15만여명으로 이 사람들이 필로폰·야바 등을 국내로 계속 들여온다"며 "아직은 이렇게 들어온 마약류가 국내 거주 태국인이 운영하는 상점 등에서 자국민 안에서 주로 유통·소비되는 추세지만, 향후 우리 국민에 유입되는 걸 막으려면 적극적인 외국인 체류자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민청을 설립해 불법 체류자의 범죄행위에 대해 체계적 감시와 관리를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다.

국제범죄 조직이 호주나 일본 등을 최종 목적지로 하는 마약류 유통의 '환승센터'로 한국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대검은 최근 펴낸 '2021 마약류 범죄 백서'에서 "국제 마약범죄조직이 여러 국적의 마약 운반책을 활용, 우리나라를 마약 세탁의 중간 경유지로 이용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적발된다"고 지적했다. 부산지검과 부산본부세관·국가정보원 등은 지난해 7월 비행기 감속장치 부품인 헬리컬 기어에 필로폰 약 404kg을 숨겨 멕시코에서 국내로 밀수입하고, 같은 방식으로 필로폰 약 730kg을 밀수입한 뒤 이미 호주로 밀수출한 호주 국적 한국계 30대를 검거하기도 했다. 이 30대는 1심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신준호 인천지검 강력범죄형사부장은 "우리나라가 아직 상대적으로 마약 통제국으로 분류되는 점이 역이용한 것"이라며 "태국·필리핀·베트남에서 출발한 화물이 우리나라를 한번 거쳐서 호주나 일본 등 최종 소비국으로 가면 현지 세관이 안심하고 본다는 점을 노려 한국을 마약 세탁국으로 활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밀수 막는 관세청 "전국 공항·항만 마약 전담 인력 70명뿐"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10대까지 가담한 마약 유통망의 고리를 끊으려면 밀수입 단계에서 차단해야 한다. 통관·검색의 최전선을 담당한 관세청은 단속 자원을 늘려달라고 호소한다. 코카인을 녹인 와인을 와인병에 포장해 들여오거나, 화장품·곡물·돌·커피머신·기계부품 등에 교묘히 은닉한 마약류를 일일이 검색으로 잡기엔 현재 인력으론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삼공 관세청 국제조사과 사무관은 "마약류를 밀반입하면서 '마약 들여왔다'고 신고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지 않나? 온갖 은닉 기법에 능통한 프로에 맞선 관세청 마약 전담 인력은 70명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마약수사직군 경찰은 약 1150명, 검찰 약 290명인데 70명이 전국의 모든 공항·항만 등 세관 감시를 도맡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화물을 일일이 전수 검사하거나 의심 화물을 다 뜯어 볼 수 없는 현재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곤 있지만 전담 인력 충원은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검찰도 "마약 인력 없어 허술한 통관…방충망 없이 모기 잡는 격"

관세청의 밀수 차단 역량 제고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은 다른 수사기관에서도 나온다. 신 부장검사는 "우리나라는 공항·항만만 꽉 틀어막아도 마약류 밀수를 막을 수 있기 때문에 관세청 마약 단속 조직과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며 "통관을 강화하지 않고 마약류를 단속한다는 건 방충망도 없이 창문을 열고 모기를 잡겠다는 격"이라고 말했다.

10대 마약공화국

단순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청소년이 해외직구로 마약을 밀수하고 메신저 채팅앱으로 판매하는 세상입니다. 한때 마약청정국에서 시나브로 10대들의 마약공화국으로 전락한 대한민국. 중앙일보가 대검찰청ㆍ국가수사본부ㆍ식품의약품안전처ㆍ마약퇴치운동본부 전문가와 단속은 물론 치료ㆍ재활ㆍ교육예방 전반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합니다. 세계 마약 퇴치의 날인 6월 26일부터 중앙일보 10대 마약공화국(www.joongang.co.kr/series/11575)을 만나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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