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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 테크'로 한달 6만원 절약…20년만에 돌아온 '만원의 행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9일 오전 서울 관악구 한 가정집에서 직장인 김모 씨가 출근 전 점심에 먹을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

29일 오전 서울 관악구 한 가정집에서 직장인 김모 씨가 출근 전 점심에 먹을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

“요즘 물가를 보면 ‘만원의 행복’은 판타지 같다.”  

최근 SNS에서 1만6000여명이 ‘좋아요’를 누른 글이다. 2000년대 초 TV에 방영된 ‘만원의 행복’을 떠올리며 그리워한 것이다. “요즘 물가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는 한숨 섞인 댓글이 이어졌다.

방송인 이지현이 과거 MBC '만원의 행복'에서 우유 500원 등을 사먹었다. 사진 MBC 유튜브 캡처

방송인 이지현이 과거 MBC '만원의 행복'에서 우유 500원 등을 사먹었다. 사진 MBC 유튜브 캡처

200mL 우유가 500원이었던 20년 전 물가는 판타지처럼 느껴지지만, 1만원으로 일주일을 버텨보는 아이디어는 지금도 먹히고 있다. 고물가 쇼크에 ‘절약 게임’을 펼치는 2030들이 그 룰을 소환하고 있다. “불가능이 아닐 수도 있다”면서다.

‘절약 게임’…고물가 시대를 사는 MZ만의 방식<하>

①온라인은 ‘기회의 땅’

앱테크 사례. 30일 출석을 통해 포인트 203원을 얻는다.

앱테크 사례. 30일 출석을 통해 포인트 203원을 얻는다.

직장인 김모(27)씨의 새로운 취미는 휴대전화 앱 접속이다. 이달은 편의점 앱에 매일 출석 도장을 찍은 수고로움 끝에 포인트 ‘203원’을 얻었다. 각종 앱 이벤트에 동시다발적으로 참여해 이번 달 번 돈만 6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김씨는 “물가가 너무 오른 것을 체감한 뒤 ‘앱 테크(스마트폰 앱으로 돈을 버는 재테크 방식)’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고물가 시대의 MZ세대는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온라인 세상을 적극 활용하는 특징을 보인다.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장터(중고) 게시판 등에는 외식 브랜드 기프티콘 등을 정가보다 저렴하게 사고팔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단돈 1000원이라도 아껴보겠다”(대학생 최모씨)면서다.

유튜브에서는 ‘무지출 챌린지’ ‘절약 브이로그’ 등이 인기다. 직장인 김모(31)씨는 “IMF 외환위기 때 엄마가 두부를 반 모만 사는 등 소비를 줄여 돈을 아꼈다면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절약한다”고 말했다.

②“나 혼자 산다”

절약 게임에 뛰어든 가상의 인물 김절약씨의 변화. 최근 고물가 쇼크에 따라 식사값 등을 아끼려는 2030 직장인이 늘고 있다.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절약 게임에 뛰어든 가상의 인물 김절약씨의 변화. 최근 고물가 쇼크에 따라 식사값 등을 아끼려는 2030 직장인이 늘고 있다.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MZ세대의 생존 전략은 대부분 ‘개인플레이’다. 스마트폰으로 나만의 절약 게임에 언제든 뛰어들 수 있다. ‘무지출 챌린지’를 유튜브에 공개하고 있는 유튜버 ‘헤그랑’씨는 “영상을 보고 자극받고 간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락을 싸고, 약속을 안 잡고, 회사에서 커피를 마시며, 배달을 안 시키는 등 일주일 단위로 최대한 지출하지 않는 도전을 이어간다.

‘나 혼자 산다’는 익숙한 현실이 되고 있다. 취업준비생 엄모(23·여)씨는 “도시락을 싸서 다니면서 친구와 약속은 웬만하면 잡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1번 약속에 돈 5만원은 그냥 깨지는데 학생 입장에서는 너무 큰 부담”이라는 이유에서다. 마케터 김모(32)씨도 “후배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면 사줘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가 있어 요새는 밥을 혼자 먹고 있다”고 털어놨다.

최근 여름 휴가를 포기하고 아침마다 먹던 출근 전 모닝커피를 끊었다는 직장인 윤모(26)씨. 그는 정책금융상품인 청년희망적금을 ‘청년절망적금’이라고 불렀다. “물가가 올라 생활이 퍽퍽한데 고정 지출인 청년희망적금을 넣으면 수중에 남는 돈이 없다”면서다. 편의점 도시락을 최근 자주 사 먹는다는 대학생 A씨는 “용돈은 월 40만원으로 정해져 있는데 물가가 올라 어쩔 수 없이 지출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③포기 아니라 ‘선택’

29일 오전 서울 관악구 사당역에서 직장인 김모 씨가 점심에 먹을 도시락을 들고 지하철을 타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

29일 오전 서울 관악구 사당역에서 직장인 김모 씨가 점심에 먹을 도시락을 들고 지하철을 타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

생활비 긴축이 꼭 좌절감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선택”이라고 입을 모았다. 최근 배달 앱을 휴대전화에서 지웠다는 직장인 이상훈(31)씨는 “어차피 나만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이때를 잘 버텨보려고 한다”고 다짐했다.

한국 MZ세대의 절약 게임은 연령대가 비슷한 일본 사토리(깨달음·득도) 세대(1980년대 중반∼1990년대 중반 태생)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득도(得道)한 것처럼 욕망을 억제하고 구매 의욕마저 상실한 사토리 세대와는 달리, ‘지출 제로(0)’ 수준까지 절약해도 긍정적이고 당찬 측면이 많아서다. 최근 ‘자취러’ 삶을 포기하고 부모님 집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직장인 문서연(30)씨는 “사회인 되고 처음 겪는 경제 위기지만, 주변을 보면 다 내려놓고 포기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합리적인 전략을 짜고 있다”는 게 문씨 말이다.

과거 ‘지지리 궁상’ 등으로 비하되던 절약이라는 소비 습관이 이제는 존중해야 할 삶의 태도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짠순이’ ‘자린고비’ 등과 같은 단어가 과거보다 덜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20대 직장인 최모씨는 “알뜰살뜰 절약하는 친구를 보면 우리끼리는 ‘너는 타의적 갓생(신+인생)을 산다’며 대견해하곤 한다”고 전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MZ세대는 절약을 절박한 현실의 문제를 피해갈 수 있는 게임의 퀘스트처럼 여긴다. 자발적인 것도 특징이다”고 말했다. 설 교수는 “재미를 가지고 슬기롭게 절약하는 이들의 희망이 꺾이지 않도록 사회가 계속 메시지를 주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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