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나는 무슨 죄" 살인자가 된 부모…'최악 오판' 내몰린 까닭

중앙일보

입력

29일 오전 전남 완도군 신지면 송곡선착장 인근 방파제에서 경찰이 10m 바닷속에 잠겨있는 조유나(10)양 가족의 차량을 인양하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오전 전남 완도군 신지면 송곡선착장 인근 방파제에서 경찰이 10m 바닷속에 잠겨있는 조유나(10)양 가족의 차량을 인양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이와 들꽃은 저절로 자란다고 했는데….” 
전남 완도 앞바다에서 부모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된 조유나(10)양 사건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저절로 자랐을 아이는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졌다. 미성년 자녀를 죽음에 이르게 부모는 살인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비극을 막지 못하는 우리의 사회안전망을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장 극단적인 아동학대”

생전 CCTV에 포착된 조유나양 가족 모습. 사진 YTN 캡처

생전 CCTV에 포착된 조유나양 가족 모습. 사진 YTN 캡처

‘자녀 살해 후 자살’ 등 학대로 아동이 사망한 사건은 증가 추세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낸 2020년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자녀 살해 후 자살’ 등은 2016년 36건, 2017년 38건, 2018년 28건, 2019건 42건, 2020년 43건으로 집계됐다. 여성·청소년 관련 부서에서 일하는 경찰에게도 고통을 주는 사건들이다. 수년째 유사 사건을 접한 한 경찰 관계자는 “이런 사건을 직접 수사하면 트라우마가 오래 남는다”라며 “자식의 생명권을 부모가 뺏은 가장 극단적인 아동학대 범죄”라고 말했다.

조양 사건이 알려진 뒤 지역 맘 카페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아이가 무슨 죄냐” “놀러 간다고 기뻐했을 아이를 잔인하게 죽인 살인자” 등과 같은 반응이 나오고 있다. 자녀를 살해한 뒤 극단 선택을 하는 부모의 사정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들의 ‘비정한 오판’을 비판하는 의견이 많다.

‘동반 자살’ 아닌 살인

과거에만 해도 이런 사건은 ‘동반 자살’로 불렸다. 그러나 최근에는 표현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자식이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 건 아니다”라는 이유에서다.

법원의 판결에서도 비슷한 시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2월 경기도에서 6세 아들을 흉기로 찌른 뒤 자해한 혐의(살인미수)로 재판에 넘겨진 엄마에게 1심 재판부는 “우리 사회는 그간 이 같은 유형의 범죄를 동반 자살로 미화해왔으나 아무 죄도 없는 자녀를 살해하려 한 것에 불과하다”고 판시하며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국제 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은 2020년 성명을 내고 “부모가 오죽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지를 떠올리며 온정적으로 이해하려는 사회적 인식이 있다”고 지적했다. “자녀 살해 후 극단 선택은 중대한 범죄”라는 게 이들 주장이다.

비속살해 가중 처벌, 안전망 점검 거론되지만…

29일 오전 전남 완도군 신지면 송곡항 인근 앞바다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최근 실종된 조유나양(10) 일가족의 아우디 차량에 대한 인양작업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뉴스1

29일 오전 전남 완도군 신지면 송곡항 인근 앞바다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최근 실종된 조유나양(10) 일가족의 아우디 차량에 대한 인양작업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뉴스1

비극을 막을 방법을 찾기가 쉽지는 않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는 존속살해 범죄를 가중처벌 하는 것처럼 부모가 자녀를 죽이는 ‘비속살해’ 범죄에도 가중처벌 규정을 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처벌 수위를 높이면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형법에서 살인죄의 법정형량은 최소 5년이지만, 존속살해죄는 최소 7년형으로 처벌받는다. 지난 4월 법무부는 비속살해도 존속살해처럼 법을 개정해 가중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보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처벌 강화보다 부모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배경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혼자 남겨지는 자녀를 책임질 사회적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부모가 자녀를 희생시킨다”라는 것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모가 최악의 사태를 생각할 때 자식이 부모 없이도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랄 수 있다는 안전망이 뒷받침된다면 이런 비극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형법 전문가인 오경식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도 “경제적 파탄 등을 이유로 벼랑 끝에 몰린 부모들이 최악의 선택을 피할 수 있도록 먼저 사회적 구조 장치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이런 부모들도 결국 사회·문화적 피해자”라며 “자식의 생명권을 부모가 가지고 있다는 사회적 인식도 함께 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