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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세일즈 외교 ‘중국 대안’ 유럽서 찾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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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윤석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참석차 스페인 마드리드를 방문해 16건의 외교 일정을 소화한 윤석열(얼굴) 대통령이 30일(이하 한국시간) 3박5일간의 외교 일정을 마무리했다. 나토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 한·미·일 정상회담을 비롯한 10건의 양자회담 등 빡빡한 일정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에게 지난 3월 입찰을 시작한 신규 원전에 우리 기업의 참여를 당부하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도 원전 관련 전략적 협력을 강화키로 하는 등 마지막까지 세일즈 외교에 집중했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가진 정상회담에서는 리튬·니켈·코발트 등 핵심 광물의 공급망 분야 협력을 구체화해 나가기로 했다.

‘글로벌 중추 국가’라는 비전을 제시한 윤 대통령은 이번 외교 일정을 통해 자신의 임기 중 한국 외교의 방향타를 명확히 했다. 자유·민주주의·인권·법치의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과의 연대를 강화해 나가는 한편, 가치와 규범의 연대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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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현지 브리핑에서 “한국이 이번에 얻고자 했던 세 가지 큰 목표는 가치 규범의 연대, 신흥 안보협력 강화, 글로벌 네트워크의 구축이었다”며 “셋 모두 충분히 충족됐다”고 자평했다. 김 차장은 “반도체, 차세대 배터리, 원자력 건설 등 세계적인 한국의 신흥 안보 기술을 국제사회가 미리 인정하고 협력을 제안해 왔다”며 “30여 개 이상의 국가 정상과 환담하고 편안하게 담소하면서 친분을 쌓은 것도 5년간 정상외교를 잘 풀어갈 수 있는 첫 단추가 끼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안에 나토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 주(駐)나토대표부를 설치할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4년9개월 만의 한·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3각 공조의 틀도 복원했다.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지역 및 글로벌 문제 해결을 위한 3국 협력이 중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대통령실 “한·미, 북핵 돈줄 차단 위해 추가 제재 협의”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29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한 호텔에서 열린 동포 만찬간담회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29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한 호텔에서 열린 동포 만찬간담회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북핵과 미사일에 대한 엄정한 대응 기조 역시 재확인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자금원을 차단하기 위해 북한의 인물과 기관에 대한 제재 확대를 준비 중인 가운데, 한국과도 이 방안을 협의 중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제재 방안을 논의하지는 않았지만 ‘북한 인물과 기관에 대한 제재를 확대하겠다’는 플랜이 준비돼 있는 것 같다”며 “나머지 추가 제재는 군사사항도 많고 여러 가지 보안사항이라 한·미 간에 협의는 해놓았지만, 지금은 말씀드리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기시다 총리와의 세 차례 대화를 통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일 관계의 매듭을 풀어갈 계기를 마련했다. 양국은 10일 일본의 참의원 선거가 끝나는 대로 관계 복원을 위한 실무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본 총리를 직접 만나면서 꽤 개방적이고 한국에 대한 기대가 크고, 잘 해보려는 열의가 느껴졌다”며 “보텀업(bottom up·상향식)이 아니라 톱다운(top down·하향식)의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정상끼리는 관계를 개선하려는 준비가 다 돼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원전과 방위산업에 중점을 둔 세일즈 외교에도 적극적이었다. 폴란드와의 정상회담이 대표적이다. 원전 건설 발주가 임박한 폴란드와의 정상회담에서 윤 대통령은 한국 원전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책자를 직접 안제이 두다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지난 5월 30일 폴란드 국방장관이 방한해 FA50·K2전차·K9자주포 등 우리 무기체계를 실사한 바 있다. 정상 간 심도 있는 논의가 있었던 만큼 조만간 실질적인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네덜란드 정상을 만나 반도체 장비의 안정적인 공급과 투자 확대를 요청했고, 프랑스 정상과는 우주산업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가 시장·공급망 다변화를 강조하는 배경에는 미·중 갈등이 갈수록 격화하고 한국이 반도체 기술 등 공급망 분야에서 미국과 밀착하면서 제2의 사드 보복 같은 일방적 경제조치에 또 당해선 안 된다는 ‘학습효과’도 존재한다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은 이번 외교 행보를 통해 적잖은 성과를 거뒀지만, 한·미·일 공조 회복과 서방과의 밀착에 반대급부로 따라오는 중국과의 관계 재설정이라는 난제도 떠안게 됐다. 중국은 한국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비쳐 왔다. 윤 대통령은 나토 동맹국·파트너국 전체회의에서 “새로운 경쟁과 갈등 구도가 형성되는 가운데 우리가 지켜온 보편적 가치가 부정되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고 연설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언급한 것으로 풀이되지만, 자유·민주주의·인권·법치에 기반한 가치 연대를 강조한 것은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미·일 정상회담을 포함해 나토 동맹국들의 모든 연설에는 ‘국제사회의 보편타당한 가치와 규범, 합의를 존중하는 가운데 국제관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가 담겨 있다”며 “반중 노선이라기보다 모든 나라가 룰(rule)과 법치를 거스르지 않아야 기본적인 협력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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