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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넘어온 군사법원 2심…사망 군인 유족 한 풀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군 사망사건 유족들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병준 기자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군 사망사건 유족들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병준 기자

“한 번은 군 관계자가 나와 하는 말이 ‘어머님, 원하시는 게 국가유공자시냐’고 하더라구요. 제가 원하는 건 가해자 처벌과 진실을 아는 겁니다.”

군 사망사건 유족들은 어느 순간부터 군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된다. 군과 군사법원, 군 관계자들의 말에 실망이 쌓이고 쌓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잃어버린 신뢰를, 민간 법원에서 되찾을 수 있을까. 송수현(54)씨의 아들 최현진(사망 당시 23세) 일병은 4년 전, 군부대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부대 내 괴롭힘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이 원인으로 조사됐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간부는 1심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송씨는 “아들은 지금 국군수도병원에 고 이예람 중사 옆자리에 아직도 차갑게 누워있다”며 “대한민국 군부대엔 민주와 정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씨 사건은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고등군사법원 폐지를 하루 앞둔 30일, 송씨를 비롯한 군 사망사건 유족들은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족들은 “(민간 법원에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군 사망 수사와 재판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군 간부 솜방망이 처벌 논란에…문 닫는 고등군사법원

군사법원 항소심 사건을 맡아온 고등군사법원은 지난해 8월,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7월 1일부터 문을 닫는다. 군 항소심은 서울고등법원으로 관할권이 이관됐다. 군 내 성범죄 및 사망 사건과 군 장병 입대 전 발생한 사건은 민간 경찰이 수사하고, 1심부터 민간 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앞서 국방부는 2014년 ‘윤 일병 사건’ 등 처리 과정에서 부실 수사 및 군 간부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자 2018년, 군사법개혁안의 일환으로 고등군사법원 폐지 카드를 꺼냈다. 2020년 국방부 입법예고 후, 이듬해 이예람 중사 사건으로 공분이 일며 국회에서 개정안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국방부는 당시 보도자료에서 “과거 군 수사 및 재판에 의혹이 제기되었던 사건들을 민간으로 이관하게 됨으로써 피해자와 국민의 불신을 해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등군사법원. 연합뉴스

고등군사법원. 연합뉴스

고등군사법원이 문을 닫으면서 군 사망 사건도 대거 민간 법원에 판단을 구하게 됐다. 고 조준우 일병(사망 당시 20세) 유족이 초동 수사 책임자를 직무유기 등으로 기소해달라며 낸 재정신청 사건 역시 지난 9일 서울고법으로 이송됐다. 2019년 7월 군 휴가 중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한 조씨의 유족은, 초동 수사 당시 부대 내 괴롭힘 등에 대해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예람 중사 사건도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환송할 경우 서울고법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국방부 통계에 따르면 군 사망사고는 2020년 55건에서 지난해 103건으로 늘었다. 특히 자살은 같은 기간 42건에서 83건으로 늘었다. 군 유족들의 사건을 변론하고 있는 최정규 변호사(원곡 법률사무소)는 “군 검찰은 제 식구 감싸기로 불기소 처분을 남발하고 있다. 국민들이 군 검찰과 군 법원을 신뢰하지 못해 군사법원 2심이 폐지된 것”이라며 “군의 제 식구 감싸기 관행을 혁파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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