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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선 긋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국 통한 수출 호황시대 끝나간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한 말이다. '중국을 너무 직설적으로 자극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제기된다. 고위 공직자가 외국과의 관계를 말할 때 워딩에 신경 써야 하는 건 맞다. 정치나, 경제나 다 그렇다. 그러나 최 수석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는 게 필자 생각이다.

최상목 경제수석이 28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푸에르타 아메리카 호텔 내 프레스룸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2.6.29

최상목 경제수석이 28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푸에르타 아메리카 호텔 내 프레스룸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2.6.29

이쯤 해서 중국과 선을 한 번 긋고 갈 때다!

한중 산업 협력의 큰 틀은 '수직 분업'과 '추격'이었다 같은 산업,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서로 수직적으로 분업했다. 한국 파주에서 만든 디스플레이를 중국 우시(無錫) 컬러TV 공장에 공급하는 식이다.

한국에서 중간재를 만들어 중국에 팔고, 중국에서 완성품을 조립해 현지에 팔거나 제3국(한국 포함)에 수출하는 생산 분업이다. 중간재는 일반적으로 부가가치가 높다. 그러기에 중국의 성장은 우리 경제의 복음이었다. 최 수석이 언급한 '수출 호황 시대'의 구도가 그랬다.

그런 한편으로 중국은 경쟁 분야에서 우리를 빠르게 추격했다. 임가공 산업을 시작으로, 백색 가전, 기계, 화공, 조선, 스마트폰, 이제는 자동차까지…. 추격은 거세다. 많은 분야가 이미 뒤졌고, 일부 간당간당 한 형편이다.

그래서 이쯤 해서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협력 모델로는 장기 이익을 담보할 수 없으니 말이다. 새로운 협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미래 산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유는 충분하다. 차세대 반도체, AI, 배터리, IOT 등 미래산업은 기존의 협력모델이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가 부품을 생산하고, 중국에서 완제품을 만드는 분업구조가 어울릴 리 없다. 기술 앞선 놈이 싹쓸이하는 판이다.

이들 분야는 한국이나 중국이나 거의 같은 출발선에 있다. 반도체는 조금 다르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얼마나 빨리 추격하느냐, 달아나느냐의 게임이 아니다. 누가 더 글로벌 스탠더드 기술을 적절히 수용하고,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한-중 관계는 기술이 추동한다. 앞선 기술이 없다면, 중국은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한발 앞선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서플라이 체인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바다 넘어온 기술을 받아 체화시키고, 그걸 들고 대륙으로 가야 한다.

이제 우리의 스탠스로 중국을 대해야 한다. '우리는 너희와 달라. 경제 시스템도 다르고, 운영 방식도 달라.' IPEF 가입은 분명한 선언이다. 그 말에 힘이 실리기 위해는 반드시 초격차 기술이 있어야 한다. 중국을 협력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의 기술 우위가 있을 때라야만 한-중 경제협력은 원활해진다.

최 수석은 '시장 다변화'를 얘기하면서 유럽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유럽 시장에 어울리는 산업 발굴을 강조했다.

맞는 얘기다. 우리는 그동안 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며 기웃기웃 시장 탐색에 나섰다. 그래서 찾은 게 동남아다. 턱도 없는 소리…. 동남아와의 교역 구조는 대략 중국과 겹친다. 그런데 협력 여건은 훨 못 미친다. 아무리 임금이 싸면 뭐하나? 부품조달, 물류, 시장 등이 안 받쳐주면 꽝이다. '신(新) 남방 정책'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산업이 먼저다. 시장 여건에 맞는 경쟁 산업을 먼저 발굴하고, 그다음에 공략에 나서야 한다. 최 수석은 유럽으로 갈 경쟁 산업으로 원전과 방산을 꼽았다. '향후 5년 계속 주력산업 리스트가 계속 추가될 것'이라고도 했다. 경쟁 산업이 없는 시장 다각화는 공염불일 뿐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 수출의 30%가 중국으로 간다'며 최 수석의 발언이 '너무 성급하다'고 말한다.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가 탈(脫)중국의 이유로 든 중국의 '쌍순환(雙循環)'도 좀 어설프긴 하다. 그런데도 필자는 그가 한중 경제협력의 미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본다.

'중국 통한 수출 호황 시대는 끝났다!'

이 얼마나 분명한 메시지인가. 대통령 경제수석이라면 우리 산업계에 이 정도 미래 방향은 제시해야 한다. 자, 방향이 나왔으니 방안도 이어져야 한다.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시장 다변화 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위한 '산업 필살기'를 발굴해야 한다.

현실도 중요하다. 중국과의 기존 협력 구도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정책도 필요하다. 중국 시장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기업, 그 직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먹던 밥그릇을 스스로 깨면 그건 바보다.

어찌 쓰다 보니 정부 정책 '꿀' 기사가 됐다. 뭐 어쩌겠는가, 필자의 생각이 그런걸…. 다만 한가지, 이 글은 한-중관계 경제 분야에 한정된 것임을 강조해 둔다.

한우덕 기자/차이나랩 대표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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