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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덮친 '절망사' 국내도 나타났다…韓 위험해진 3가지 지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자살과 약물ㆍ알코올 중독에 따른 사망을 뜻하는 ‘절망사’(絶望死, Deaths of Despair)가 한국에서도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사회적 고립감이 높아지고,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하는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절망사는 2015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앵거스 디턴이 제기한 사회문제로, 최근 미국의 저소득ㆍ저학력 백인 노동자 계층에서 많이 발생한다. 디턴은 빈부 격차가 확대되는 가운데 이들이 공동체 생활에서 소외되면서 절망사의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29일 방송통신대 강상준 교수, 예명대 권진 교수 등이 수행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연구용역 보고서 ‘한국의 절망사 연구 : 원인 분석과 대안 제시’에 따르면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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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장기간 유지하고 있다. 2020년 OECD 기준으로 인구 10만명당 23.5명이 자살했는데, 이는 OECD 38개국 평균(10.9명)의 두배를 넘는다. 자살은 10대ㆍ20대ㆍ30대의 사망 원인 1위, 40ㆍ50대에서는 2위다.

특히 20~50대 연령별로 살펴보면 관계의 어려움과 경제적 문제에 따른 요인이 두드러진다. 20대는 가족ㆍ친구ㆍ연인 등과의 반복되는 갈등, 30대는 업무 관련 스트레스와 부채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주요 자살 요인으로 꼽혔다. 40대는 경제적 위기와 빈약한 사회적 지지기반, 50대는 물질 관련 문제와 가족 문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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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성 간 질환, 알코올성 심장근육벽증 같은 알코올 관련 사망도 심각해지고 있다. 2020년 알코올 관련 사망자는 5155명으로 전년 대비 461명 증가했다. 2000년(2698명)과 비교하면 거의 두배다. 2020년 기준 알코올 중독 추정 환자수는 약 152만명에 이르며, 특히 여성과 20~30대의 젊은 계층에서 알코올 관련 진료가 증가하고 있다.

약물 관련 사망자 수는 2020년 365명으로 수치상으로는 미미하다. 하지만 마약ㆍ약물 중독과 관련해 한국은 더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대검찰창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사범은 1만6153명이다. 인구 10만 명당 마약사범의 적발 수를 일컫는 ‘마약범죄계수’가 20을 넘으면 ‘마약 확산’ 위험이 크다고 보는데, 지난해에는 이 수치가 31.2에 달했다. 지난해 마약사범 수는 전년(1만8050명)보다는 10.5% 감소했지만, 2014년까지만 해도 1만명을 밑돌던 점을 감안하면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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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최근 10년간의 사회조사를 통해서 사회계층 이동에 대한 기대치가 낮고, 사회적 고립감이 높아지는 추세”라는 점이 한국의 절망사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봤다.

'본인의 계층 이동 가능성'에 대해 2011년에는 응답자의 32.8%가 긍정적으로 봤지만 2021년에는 26.7%로 줄었다. 부정적으로 본다는 응답은 같은 기간 54.0%에서 58.0%로 늘었다. '사회적 고립을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1년(59.2%)부터 2017년(53.4%)까지 감소했지만, 그 이후 계속 상승해 2021년 56.6%를 기록했다.

연구진은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으로 진입하였으나,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최고 수준의 자살률, 그리고 부의 양극화로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수축 사회’로 전락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사회가 절망사의 위험에서 이미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회적 고립 등의 이유로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청년들의 자살이 급증하고 있으며, 마약류 중독이 확산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절망사에 대한 연구와 향후 정책적 대응 마련이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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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조언한다. 10대~30대 자살자와 알코올 중독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고, 온라인 마약 유통이 활성화되면서 젊은 층이 마약ㆍ약물에 노출되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특히 취업, 내집마련 등에 있어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는 점은 미국 백인 노동자의 절망사와 맞닿아 있다.

차승은 수원대 아동가족복지학과 교수는 “대도시 과밀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중화 등으로 타인과의 온오프라인 접촉이 늘면서 청년층에서 ‘내가 타인보다 경제적ㆍ사회적으로 못하다’는 주관적인 상실감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차 교수는 이어 “가장 왕성한 꿈을 갖고 생산해야 할 때에 절망사한다는 것은 청년층의 사회 여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며 “이젠 청년층의 경제적ㆍ사회적 안전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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