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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대통령의 도어 스테핑이 계속돼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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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정민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민 논설실장

이정민 논설실장

#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33일 만에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잇따른 인사 실패 때문이었는데, 사과가 오히려 역풍을 불렀다. “인사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인사위원장으로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인사 검증 체계를 강화해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달랑 두 문장짜리 영혼없는 사과문도 문제였지만 대통령이 아닌 비서실장 명의로, 그마저도 대변인이 대신 읽은 ‘17초 대독(代讀)’이 공분을 샀다. “사과도 남의 입을 빌려 하느냐”는 싸늘한 여론이 확산됐다.

두달 후엔 더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 방미중 터진 성추행 사건의 당사자인 윤창중 대변인 경질을 알리면서 홍보수석이 “국민과 대통령에게 사과한다”고 발표했다. 사과해야 할 사람이 사과를 받는, 주객전도에 여론이 흉흉해지자 결국 박 대통령이 나섰는데, 수석비서관 회의가 그 무대였다. 비서들을 앉혀놓고 사과한 것이다.

17초 대독, 주객전도 사과문 해프닝
국민의 권한 위임 ‘공복’ 망각한 것
출근길 대화는 낡은 관행 끊는 혁신
불가역적 제도로 정착시킬 필요

# 문재인 대통령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비슷한 일이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불통의 기저효과 탓에 국민들이 무덤덤해졌을 뿐이다. 2020년 법원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대해 직무복귀 결정을 내렸을 때다. 침묵하던 문 대통령이 “국민들께 사과 말씀 드린다”며 한 말씀 했는데, 알고보니 대변인 명의 서면 브리핑을 통해서였다.

조국 사태로 광화문-서초동 세 대결이 벌어졌을 땐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정치적 사안에 대해 국민의 의견이 나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며 국론분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소중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직접 목소리를 내주신 국민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청자(聽者)가 국민인데, 참모들과의 회의 석상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한 것도 어색하지만, 다음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마음의 빚” 발언이 나올 때까지 대통령의 진짜 속마음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으니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기만당한 셈이 됐다. 차로 3분 거리의 지척에 기자실이 있는데도,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1년에 한번 하는 연례행사가 된지 오래다. (※재임 중 박 대통령은 3회, 문 대통령은 5회의 공식 회견을 했다.)

형식이야 어떻든 메시지가 국민에게 전달되니 문제없다고 할지 모른다. 과연 그럴까. 때론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 요즘 IT회사 등에 정착된 영어 닉네임 부르기가 그런 예다. OO님 대신 상하 구분없는 영어 이름을 쓰니 상명하복의 권위적인 꼰대 문화가 사라지고 창발성과 효율성이 눈에 띄게 개선된다는 것이다. 주객전도의 사과문 해프닝이나 대리 사과를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다. 대통령 권력의 운영이 왕조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대통령이 주권자인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아 선출된 ‘최고위 공복’ 임을 망각할 때 국민과의 거리도 멀어진다. 대통령의 인식과 철학, 인사와 정책을 묻는 주권자의 요구를 하찮게 여기게 된다. 그러니 편의적인 대리 사과, 브리핑 사과문 같은게 남발된다. 국민을 떠받들어야 할 상전이 아니라 통치의 대상으로 여기는 건 군주제의 인식체계다. 뒤집어 생각하면, 대통령이 수시로 언론과 국민 앞에 서는 것은 단순한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 권력의 원천인 주권재민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새기는 중요한 정치 의식인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출근길 소통(도어 스테핑)이 화제성을 넘어 정치 혁신으로 이어지길 기대하는 이유다. 도어 스테핑은 지난주말 기준 21회 이뤄졌다. 취임 일부터 치면 대략 이틀에 한번 꼴이다. “참모 뒤에 숨지 않겠다”는 다짐에서건, 아니면 ABM(Anything But Moon)에 방점이 있건 출근길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은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에 이은 정치적 결단이라고 평가할 만 하다. 대통령 스스로 ‘오늘 기자들이 뭘 물어올까’를 의식하는 것 자체가 긍정적 변화다. 현안과 민심의 흐름에 민낯을 노출함으로써 국민과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윤 대통령은 사석에서 “어느 정도 예상 질문을 준비해 나오는 데 빗나갈 때가 많다”고 했다는데, 이 말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하고 싶다.

문제는 대통령 개인의 의지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한순간의 변심으로 날아가버릴 수 있어서다. 날선 여론의 비판을 받는 곤혹스런 순간이 오면 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아무리 뚝심있는 윤 대통령이라도 말이다. 다음 대통령이 뒤집어버릴 수도 있다.

그동안 드러난 문제를 보완하면서 불가역적 ‘제도’로 만드는 걸 고민할 때다. 이 전통 하나만 제대로 세워놔도 역사의 평가를 받게될 것이다. 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박 정부의 창조경제,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은 당시엔 요란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5년 단임제의 허망한 운명이다. 하지만 시대정신과 함께 가는 아젠다라면 지속가능할 것이다. 대통령과 국민의 간극을 좁히는 도어 스테핑이 그런 경우일 것이다. 다만 “대통령이 처음이라…” “국기문란” 같은 말실수와 거친 화법이 이어지는 건 문제다. 정교한 보좌보다 여전히 대통령 개인기에 의존한다는 인상을 준다. 용산 대통령 시대의 비서실이 풀어야 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