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강찬호의 시선

문재인이 ‘폭풍 업뎃’ 전에 할 일

중앙일보

입력 2022.06.30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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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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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년 8개월 전 기가 막힌 소식을 들었다. 단국대 천안캠퍼스에 들어가 반정부 대자보를 붙이고 나온 20대 청년이 경찰에서 치도곤을 당하고 있다는 거였다. “사람이 먼저다”는 문재인 정부에서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경악했다.

취재에 나섰다. 경찰과 단국대·청년의 얘기를 들어봤다. 경찰은 청년이 대학에 ‘무단 침입’했으니 건조물 침입죄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이에 필자는 단국대에 “청년이 무단침입한 거냐”고 물어보았다. “우리 대학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데 무슨 무단 침입이냐”는 답이 돌아왔다. 필자는 청년에게도 물어보았다. “단국대 들어갈 때 ‘출입금지’ 표지가 있었거나 막는 사람이 있었느냐.” 청년은 “문이 열려있었고 누구나 드나드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고 답했다. 결론은 간단했다. 청년은 무단 침입이 아니라 대통령 비판 대자보를 붙인 ‘괘씸죄’ 때문에 처벌감이 된 것이었다.

‘건물 침입범’ 몰린지 2년반만에
문 비판 대자보 붙인 청년 ‘무죄’
문 한마디만 했었다면 없었을 일

천안 동남경찰서(당시 서장 김광남)가 이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을 때 “그래도 검찰은 다르겠지”라고 믿었다. 하지만 대전지검 천안지청 김우중 검사(당시)는 끝내 청년을 약식기소했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래도 법원은 다르겠지”라고 믿었다. 게다가 건물주인 단국대 간부가 법정에서 “대한민국은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라며 청년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증언했기에 무죄 선고를 확신했다. 그런데도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3단독 홍성욱 판사(당시)는 기어이 청년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단국대의 허락을 받지 않고 들어갔으니 유죄란 것이었다. 20대 젊은이가 반정부 벽보 한장 붙인 ‘죄’로 인생에 빨간 줄이 쳐진 것이다. 이 판결의 논리대로라면 단국대에 들어가 광고물을 붙인 영업사원이나 반려견 데리고 산책한 주민도 죄다 처벌감이다. 그러나 경찰·검찰·법원은 이런 사람들은 제쳐놓고(?) 대통령 비판 대자보를 붙인 김 씨만 콕 집어 무단 침입범으로 만들었다. 히틀러·김일성이나 저지를 파시즘 폭거가 문재인 정부에서 자행된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문재인 정부의 경찰이 청년을 체포하는 과정이 문 대통령이 그렇게 증오한다는 5공 독재 정권 시절 경찰 행태와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이다.

단국대에 따르면 경찰은 문 대통령의 대중 외교를 비판한 청년의 대자보를 ‘불온 게시물’이라 불렀다.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건 ‘불온’하다는 시각은 권력의 충견이 아니면 나올 수 없다. 경찰은 캠퍼스내 CCTV와 주차 기록을 이 잡듯 뒤진 끝에 청년을 붙잡은 뒤 ‘대공 용의’까지 들여다본 것으로 확인됐다. 전두환 독재에 항거하는 대학생을 ‘좌경 용공 분자’로 몰아 감옥에 보냈던 5공 경찰 판박이다. 그런 경찰의 의견을 받아들여 청년을 기소한 검찰, 황당한 법리로 청년을 유죄 판결한 법원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 핵심인 586 세력은 5공 시절 해만 뜨면 대학가를 돌며 반정부 대자보를 붙이며 ‘민주화 투쟁’이라 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정권을 잡더니 반정부 대자보를 붙인 청년을 범죄자로 만들었다. 전두환 비판 대자보를 붙이면 민주화 투쟁이지만 문재인 비판 대자보를 붙이면 건조물 침입이란 얘기 아닌가. “모든 혁명은 성공하면 자신들이 몰아낸 폭군의 옷을 입는다”는 말 그대로다.

민주당 안에서 70년대생 박용진 의원이 모기만한 소리를 내긴 했다. “나도 학생 시절 다른 학교에서 대자보 많이 붙였다. 청년 처벌은 민망한 일”이라 한 것이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민주당을 장악한 586 중진 의원들 가운데 누구 하나 기소의 부당성을 거론한 이가 없었다.

가장 위선적이고 무책임한 사람은 문 전 대통령이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 “국민은 얼마든지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가 있다. 그래서 불만을 해소할 수 있고 위안이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니냐”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런 사람이 아들뻘 되는 젊은이가 자신을 비판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반인권적인 기소를 당했는데도 나몰라라로 일관했다. 이 사건은 언론에 크게 보도됐고 사회적 논란이 컸던 만큼 문 대통령이 몰랐을 리 없었을 것이다. “권력자에 대한 비판은 자유”라고 한마디만 했으면 검경은 바로 기소를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침묵을 지켰다. 처벌하란 메시지나 다름이 없다. 덕분에 청년은 3년 가까이 곤욕을 치러야 했다.

요즘 문 전 대통령은 사저 텃밭에서 채소 가꾸며 활짝 웃는 사진 올리느라 분주한 모양새다. 뭐 좋다. 그래도 자신을 비판한 ‘죄’로 범죄자가 됐던 청년이 지난 22일 항소심에서나마 무죄를 받았으니, 이번 만큼은 모른 척 말고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건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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