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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증오하던 아버지, 그앞서 펑펑 울었다…가족문제 해결사의 거울론 [백성호의 현문우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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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권도갑(73) 교무는 지난달 퇴임했다. 45년간 종교에 몸담으며 그는 ‘마음공부’에 매진했다. 거기서 얻은 통찰을 권 교무는 가족 문제에 대입했다. 지금껏 꾸려온 ‘행복한 가족캠프’는 153차나 진행됐다. 종교와 관계없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부모와 자식의 문제, 부부의 문제에 대해 나름의 해법을 내놓았다. 권 교무의 캠프를 거쳐 간 사람만 약 4000명이다. 퇴임으로 홀가분해진 그를 23일 서울 서소문에서 만났다.

공대를 졸업하고 다시 원광대 원불교학과에 편입했다. 왜 출가했나.
“아버지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오셨다. 부산 시청 수도과 주임으로 계셨다. 부하 직원의 부정이 드러나니까 본인이 사표를 내버렸다. 강직한 분이었다. 가족을 살리려고 사업을 했는데 쫄딱 망했다. 우리는 단칸방에 살면서 갖은 고생을 했다. 아버지는 가끔 폭력도 행사하고, 늘 불화의 중심이었다. 나는 무능한 아버지를 증오했다.”
원불교 권도갑 교무는 "갈등 없는 삶을 살고 싶어서 출가했다"고 말했다. . 강정현 기자

원불교 권도갑 교무는 "갈등 없는 삶을 살고 싶어서 출가했다"고 말했다. . 강정현 기자

그런 갈등이 왜 출가의 씨앗이 됐나.
“나는 갈등이 없는 삶을 살고 싶었다. 집집 마다 들여다보면 사연이 있고, 가족끼리도 갈등이 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그냥 즐겁고 행복하게 살면 될 텐데. 당시에는 그게 나의 화두였다. 그 답을 종교에서 찾고자 했다. 대학생 때 부산 초량교당에서 새벽 좌선을 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출가 후에 갈등에 대한 답은 찾았나.
“소태산 대종사(원불교 창시자)의 가르침에 ‘원망 생활을 감사 생활로 돌리자’는 대목이 있다. 머리로는 되는데 가슴으로는 안 되더라. 그래서 엄청나게 고민했다. 더구나 원불교에서는 ‘은혜’를 강조하는데 말이다.”
어떤 은혜인가.
“하늘과 땅의 은혜, 부모 은혜, 동포 은혜, 법률 은혜의 고마움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런 은혜 속에 사는데도, 살다 보면 원망이 툭툭 튀어나온다. 원망의 마음을 감사의 마음으로 돌리고 싶은데, 돌려지지 않더라.”
그래서 어찌했나.
“출가하고 한참 뒤였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나를 불렀다. 그리고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쭉 들려주셨다. 내가 몰랐던 사연도 꽤 있었다. 듣는 내내 나는 펑펑 울었다. 아버지가 왜 그랬는지 알겠더라. 그때 깨달았다. 아버지가 내게 준 아픔이 없었다면, 나는 출가의 동기가 없었겠구나. 그때 원망 자체가 감사라는 걸 깊이 깨쳤다. 고난이 축복이란 말처럼 말이다.”
권도갑 교무는 "원망 생활을 감사 생활로 돌리자는 소태산 말씀이 내게는 큰 화두였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권도갑 교무는 "원망 생활을 감사 생활로 돌리자는 소태산 말씀이 내게는 큰 화두였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권 교무는 “나는 그동안 원망이 나쁜 것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그걸 버리려고만 했다. 그런데 아무리 버려도 버려지지 않더라”라고 했다. 거기서 그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무한수용’을 택했다. 권 교무는 “이 세상은 음과 양으로 돼 있다. 음은 버리고 양만 취할 수는 없다. 우리가 살면서 어둠은 버리고 밝음만 취하고 살 수는 없지 않나. 원망과 감사도 그렇더라. 나는 원망의 바닥까지 내려갔다. 거기서 원망 자체가 감사임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는 열반하셨다. 그런데 가장 원망했던 아버지가 지금은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로 돌아섰다”고 했다.

권 교무는 자신의 깨침을 ‘행복한 가족캠프’에도 대입했다. 특히 부모와 자식, 부부의 문제에 집중했다. “70억 인구 중에 부부가 된다는 건 기막힌 인연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건강한 결혼관이 무너져 있다. 이 프로그램을 꾸리다 보니 가끔 주례를 서게 된다. 나는 예비 신혼부부를 만나서 결혼관을 바꾸어준다.”

어떤 식으로 바꾸나.
“예비 부부에게 ‘결혼이 뭐냐?’고 묻는다. 그럼 대개 ‘좋은 배우자 만나서 잘 사는 것’이라고 답한다. 나름대로 백마 탄 왕자, 아리따운 공주를 꿈꾸더라. 나는 이게 얼마나 허황한 것인가를 일깨워준다.”
왜 그게 허황한 것인가.
“결혼 전에 두 사람이 만나면 서로 최고의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자기에게 좋은 것만 이야기한다. 자랑하고 싶은 것만 말한다. 그럼 거기에 넘어간다. 그런 결혼은 깨지기가 쉽더라. 재산이 대단하다고 해서 결혼했는데, 신혼여행 다녀와서 보니까 빚이 더 많더라.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이 좋았는데, 어느 날 술 한잔하더니 말로도 폭력을 행사하더라. 그럼 신뢰가 깨진다. ‘내가 속았다’는 생각이 든다.”
원불교 권도갑 교무(왼쪽에서 두번째)가 불교와 개신교, 가톨릭 등 이웃종교인들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권 교무는 이웃종교와의 소통에도 적극적이었다. [중앙포토]

원불교 권도갑 교무(왼쪽에서 두번째)가 불교와 개신교, 가톨릭 등 이웃종교인들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권 교무는 이웃종교와의 소통에도 적극적이었다. [중앙포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오히려 상대방에게 나의 양면을 다 보여주는 게 좋다. 나도 상대방의 양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결혼 후에는 화장 안 한 얼굴도 보지 않나. 그처럼 포장하지 않은 나의 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나는 결혼을 앞둔 부부에게 나름대로 문제점이 있으면 말하라고 한다. 그럼 상대방에 대해 ‘무책임하다’ ‘인색하다’ 등 각자의 불만을 이야기한다.”
그런 불만을 어떻게 해결하나.  
“나는 되묻는다. 당신은 무책임하지 않나. 당신은 인색하지 않나. 처음에는 반박한다. 자신은 절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 1주일 시간을 준다. 생각해 보라고. 대부분 하루 만에 답이 온다. 자신을 차분히 들여다봤더니 무책임한 면이 있다고, 인색한 면이 있다고 인정한다. 그때부터 시작이다.”
무엇의 시작인가.
“자신도 무책임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다시 말한다. 책임감 있는 면도 찾아보라고. 그럼 둘 다 있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우리에게는 포용력이 생긴다. ‘내 안에는 책임과 무책임, 둘 다 있구나.’ 그렇게 자신을 포용한다. 그럼 상대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상대방에게도 책임감과 무책임함, 둘 다 있음을 보게 되니까. 내가 자신을 수용하듯이 상대방도 수용하게 된다. 다시 말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된다.”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대종사는 "남의 허물만 밝히면 자신의 앞이 늘 어둡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대종사는 "남의 허물만 밝히면 자신의 앞이 늘 어둡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권 교무는 그걸 “내면의 통합”이라고 불렀다. “내면을 파고들다 보면 알게 된다. 내가 나의 인색함을 너무 싫어하기에, 상대방의 인색함도 싫어한다는 걸 말이다. 사실 대부분 사람에게는 인색함과 넉넉함, 둘 다 있다. 그런데도 ‘이건 싫어, 저건 좋아’하며 하나만 고집한다. 마음공부를 해보니 그게 아니더라. 양자택일의 이분법이 아니라 내면의 통합이 필요하더라. 그걸 통해 상대방이 나의 거울임을 깨닫는 거다.”

왜 상대방이 나의 거울인가.
 “사람들은 처음에 상대방만 본다. 자신은 보려 하지 않는다. 내로남불이라고 하지 않나. 부부 사이도 똑같다. ‘행복한 가족캠프’에서 나는 그 눈을 자신에게 돌리게 한다. 그럼 알게 되더라. 배우자를 보면서, 실은 자기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말이다. 배우자의 인색함이 싫은 건 자신의 인색함이 너무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방이 나의 거울이다.”
권도갑 교무는 "상대방이 나의 거울임을 깨치면 부부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강정현 기자

권도갑 교무는 "상대방이 나의 거울임을 깨치면 부부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강정현 기자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던 권 교무는 소태산 대종사의 어록을 하나 꺼냈다. “남의 허물만 밝히면 제 앞이 늘 어둡고, 지혜 있는 사람은 자기의 허물을 살핌으로 남의 시비를 볼 여가가 없다.(대종경)” 권 교무는 부모와 자식, 부부 사이도 똑같다고 했다.

자녀 키우는 부모에게 건네는 권도갑 교무의 조언

 부모가 만족한 삶을 살면 아이를 바꾸려는 마음이 줄어듭니다. 이것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 그럼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나고, 부모도 자녀가 가는 길을 넉넉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걸 통해 서로 독립적인 인격체로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아이를 고치고 변화시키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부모 자신을 바로 세우고 즐겁게 사는 일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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