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세린 클라크의 문화산책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의 위안

중앙일보

입력 2022.06.30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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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단가(短歌)에서, 주인공이 세상의 부조리에 맞닥뜨릴 때 화자는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라는 구절로 노래를 마무리한다. 영어와 달리 한국어의 ‘놀다’(play)라는 동사는 ‘사물놀이’를 제외하고는 악기를 연주한다는 뜻이 아닌 ‘즐기다, 쉬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영어 단어 ‘vibrato’(음을 떨리게 하는 기법, 어원은 이탈리아어)를 번역한 ‘농현’(弄絃)은 ‘현을 가지고 놀다’라는 뜻이다. 단가에서 동사 ‘놀다’가 암시하는 것은 풍류(風流)로, 삶의 분주함에도 즐거움을 갖기 위해 시간을 내는, 아니 시간을 ‘만드는’ 행위다. 광활한 우주에 비하면 우리가 얼마나 왜소하며, 찰나인 인생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일깨워 준다. ‘흐르난 물(滄海流水)은 어느 뉘기라 막을 손가?’ 자연은 자연만의 길이 있으니, 놀아 보세!

한국 ‘단가’의 그윽한 풍류
덧없는 인생 즐기며 살기
‘백발가’‘사절가’ 흥얼대며
팬데믹의 슬픔 잠시 잊어
전북 무형문화재 이일주 명창의 단가 ‘사절가’는 남다른 흥을 북돋운다. [중앙포토]

전북 무형문화재 이일주 명창의 단가 ‘사절가’는 남다른 흥을 북돋운다. [중앙포토]

단가 ‘백발가(白髮歌)’는 신과 황제조차도 백발은 피할 수 없었음을 주목한다. 우리의 전성기는 봄 한철이며 나머지는 가을과 겨울임을 일깨운다. ‘불수빈(不須嚬)하라 동원도리(東園桃李) 편시춘(片時春)은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눈썹을 찌푸리지 말라, 동쪽 정원의 복사꽃과 자두꽃이 봄 한철이니 놀지 못할쏘냐?)

팬데믹으로 가족과 생이별한 경험이 있다면 ‘백발가’에 인용된 편시춘(片時春)을 듣고 가슴이 찡해질 것이다. ‘동류수(東流水) 굽이굽이 물결은 바삐바삐 백천(百川)이 동도해(東到海)라 하시(何時)에 부서귀(復西歸)아?’(동쪽으로 굽이치는 물결은 바삐 흘러 백 갈래 강물이 모이는 동쪽 바다에 이르니, 언제나 서쪽으로 돌아올꼬?) 그럼에도 이렇게 마무리한다. ‘아마도 우리 인생 춘몽과 같으오니 한 잔 먹고 즐겨 보세.’

단가에서 잔을 들고 즐기자는 가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암시한다. 그런데  ‘죽장망혜(竹杖芒鞋)’에선 화자가 홀로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빈천(貧賤)을 한(恨)치 말고 자락(自樂)하며 지내보세.’ 이 단가의 지은이는 명상적인 고독이 거의 불가능한 디지털 시대를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홀로 있다는 것은 온라인 클럽하우스(clubhouse)에서 대담을 듣거나 참여하기, 여럿이 비디오 게임(또는 컴퓨터 카드게임) 하기, 세계 각지의 인터넷 뉴스 읽기, 드라마 정주행하기, 영화 보기, 음악 어플 알고리즘이 내 취향에 맞게 추천한 신곡 듣기 같은 활동을 수반한다. 이런 ‘혼놀’(혼자 놀기)은 혼술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할 일을 하며 바쁘게 ‘떠’다니다가 차분히 ‘가라앉는’ 시간이 필요할 때 비로소 즐거운 법이다.

팬데믹 때 나는 합주를 할 수 없었기에 독주곡인 가야금 산조를 연습했다. 알래스카에 코로나19가 퍼져 몇몇 친구들, 지인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고향에 계신 부모님, 동생과 동생 가족들, 친구들에 대한 걱정을 해소하기 위해 글을 썼다.

해학적인 단가인 ‘사절가(四節歌)’는 우리가 노년에나 깨닫게 되는 세상 이치를 노래한다. ‘봄은 갔다가 연연이 오것만, 기내 청춘은 한번 가면 다시 올줄럴 모르내 그리요’라고 한탄한다. 팬데믹 일상에서 벗어나 엔데믹으로 나아가면서, 이 가사의 의미를 요즈음 실감한다. ‘사절가’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어화 세상 벗님네들, 인생이 보록 백년을 산데도오… 인수순약격석화(人壽瞬若擊石火, 사람의 수명은 부싯돌에 이는 불꽃과 같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이일주 명창이 전하는 ‘사절가’에서는 ‘제4의 벽’을 허물고 관객을 향해 다음과 같이 부른다. ‘(이 노래의 의미를) 짐작허시는 이가 몇몇인고.’ 마치 화자 자신이 방금 부른 가사의 의미를 알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노세 젊어 놀아 늙어지며는 못 노느니라. 놀아도 너무 허망(虛妄)이 해면 늙어지면서 후회되느니.’ 노래가 끝날 무렵 화자는 다시금 흥을 돋우면서도 ‘더 마시기’를 권하지는 않는다. ‘이렇듯 친구 벗님 모여 앉어 한 잔 더 먹소 덜 먹소 권해가며 헐 일을 하면서 지내보세.’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작가 마르케스는 이렇게 말한다. “격언이 아무런 쓸모가 없어질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그 진의를 깨닫게 된다.” 버나드 쇼의 말도 있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 젊은 시절 나는 이런 격언을 들으면 코웃음을 쳤다. 내 나이가 점차 ‘백발가’에 가까워지는 지금, 나는 그 격언들의 의미를 깨달아 가고 있다.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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