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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검찰총장 없는 검찰 인사, 법 취지와 상식에 어긋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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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민 위한 일” 내세웠지만 절차 꼼수·편법  

한동훈, 미국식 법무부 장관 꿈꿔선 안돼

법무부가 그제 일선 검찰청의 차장·부장검사 등 중간 간부를 포함한 712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취임 후 40여 일 동안 인사를 단행했다. 검사장급 공석을 채우기 위한 원포인트 인사, 검사장급 승진 및 전보 인사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세 차례 인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윤석열 대통령 검찰 재직 시절 수사를 같이 하거나 참모를 지낸 이른바 ‘윤석열 사단’ 검사들의 요직 등용, 친문재인 정부 성향 검사들의 좌천이다. 전 정권에서 ‘산 권력’ 수사를 하다가 한직으로 쫓겨났던 검사들을 원상회복시켰다는 점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명분이 그럴듯해도 법과 상식에 따른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 그 또한 비정상이다. 검찰 고위 간부에서부터 검찰 중간 간부 인사까지 모두 검찰총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검찰청법 34조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고 명문화돼 있다. 법무부 장관의 독단적 인사를 견제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 때 송광수 검찰총장이 강력히 주장해 넣은 조항이다. 법무부 검찰국에서 인사 업무를 담당했던 한 장관이 그 의미를 모를 리 없다. 한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했어야 하는 업무는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가동시키는 것이었다. 전국 검찰의 수사를 총지휘하는 막중한 자리인 데다 새 정부 검찰 인사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검찰 수장 인선 절차 대신 세 차례 검찰 인사를 단독으로 강행했다. 대검 차장과 상의했다고는 하나 검찰청법의 취지를 어긴 셈이다. 특히 임명 다음 날 단행한 인사는 검찰인사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수사와 인사 요직 10여 곳을 전격 교체한 편법이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9일 오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방문 출장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한 장관은 이번 출장에서 FBI의 인사검증 시스템을 확인하고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운영에 참고할 계획이다. [뉴스1]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9일 오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방문 출장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한 장관은 이번 출장에서 FBI의 인사검증 시스템을 확인하고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운영에 참고할 계획이다. [뉴스1]

한 장관의 행보를 두고 “정권 초기에 시급하게 처리할 사안이 많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 취임까지 40여 일이 걸리는 검찰총장 인선보다는 검찰 인사부터 하기로 애초에 판단한 것 같다”는 분석이 많다. 정상적이지 않으니, 한 장관이 검찰총장을 겸임하는 미국식 법무장관의 역할을 꿈꾸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오는 것 아닌가.

한 장관은 검찰총장 패싱 논란에 대해 “검찰에 산적한 업무가 많다. 몇 달이 걸리는 총장 인선 이후 모든 인사를 하겠다는 건 일을 제대로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일축하며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 대목도 실망스럽다. 국민을 위한 일을 하기 위해 검찰총장 없이 인사를 했다는 해명은 모순적이다. 목적을 위해 수단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국민을 위하는 일일수록 절차를 지켜야 힘을 얻는다. 법과 원칙을 수없이 강조해 온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의 평소 소신에도 정면으로 어긋난다. 검찰총장 후보 추천위를 당장 가동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