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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된 산소마스크 쓰고…세 아이 싱글맘, 에베레스트 정상 10번 올랐다

중앙일보

입력

락파 셰르파가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에베레스트 10번째 등반에 성공하고 돌아왔다. EPA=연합뉴스

락파 셰르파가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에베레스트 10번째 등반에 성공하고 돌아왔다. EPA=연합뉴스

“서양 등반가들의 영웅담 뒤에 보이지 않는 지원자였던 셰르파 가문의 일원에서 이제는 자신만의 등반 기록과 기술로 존경받고 있다.”

에베레스트 등반 세계기록 보유자인 락파 셰르파(49)의 10번째 정상 등반을 두고 가디언은 28일(현지시간) 이렇게 평가했다. 락파는 악천후를 뚫고 지난달 12일 오전 6시 30분 세계 최고봉인 해발 8848.86m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10번째 등반 성공은 여성으론 최다 기록이다.

락파는 별다른 등반 훈련을 하지 않는다. 정기적인 스폰서도, 트레이너도, 영양사도 없다. 이번 등반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금을 조달해 이뤄졌다. 그가 착용한 산소마스크도 50년이 넘었다. 그는 이번 등반을 위해 출국하기 닷새 전인 지난 4월 1일 가디언과의 1차 인터뷰에서 “에베레스트로 돌아갈 수 있어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장비 문제에 대해선 “문제없이 잘 작동한다”면서도 “(가장 위험한 구간인) 쿰부 빙하를 건너는 건 두렵다. 눈사태도 무섭다”고 했다.

남편의 가정폭력…홀로 3남매 키워

딸들과 함께 한 락파 셰르파. 왼쪽이 큰 딸 서니, 오른쪽이 막내딸 샤이니다. 락파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파키스탄의 K2를 등반할 예정이라고 했다. AP=연합뉴스

딸들과 함께 한 락파 셰르파. 왼쪽이 큰 딸 서니, 오른쪽이 막내딸 샤이니다. 락파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파키스탄의 K2를 등반할 예정이라고 했다. AP=연합뉴스

락파는 네팔 히말라야의 고지대 마을인 마칼루에서 11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나 자랐다. 15살이 되자 셰르파였던 아버지를 따라 셰르파 일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딸에게 원정대의 요리 수발이나 들라고 했지만 락파는 20㎏ 짐을 나르며 셰르파로 성장했다. 이후 2000년 5월 18일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며, 정상 등반에 성공한 뒤 무사 귀환한 최초의 네팔 여성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는 산악인이던 루마니아계 미국인 조지 디즈마레스큐를 네팔에서 만나 2년 만에 결혼해 미국에 정착했다. 부부는 2001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에베레스트를 등정했다. 2003년 첫딸을 낳은 후부터는 세계 여성 최다 신기록 경신이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남편의 가정폭력이 심해지더니 2004년 에베레스트 원정 중 디즈마레스큐가 락파를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결국 2006년 이후 10년간 에베레스트를 오르지 못했다.

락파는 2015년 1월 이혼 후 편의점과 식당에서 접시닦이 등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홀로 3남매를 키웠다. 그러다 2016년 네팔 친정을 방문했다가 다시 에베레스트에 대한 꿈을 가졌고, 셰르파 일을 하던 아버지와 7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당시 BBC ‘100명의 여성’에도 선정됐다. 이후 2018년까지 매년 세계 여성 최다 기록을 경신해왔다. 출산 후 8개월 만에, 또 임신 2개월 때도 올랐던 에베레스트 정상은 코로나19로 4년간 찾지 못했다. 그사이 셰르파였던 아버지와 전 남편도 숨졌다.

10번째 정상 찍고 딸과 감격의 포옹

2016년 4월 13일 락파 셰르파. 이혼 후 에베레스트를 10년 만에 다시 찾아 등반에 성공했다. AFP=연합뉴스

2016년 4월 13일 락파 셰르파. 이혼 후 에베레스트를 10년 만에 다시 찾아 등반에 성공했다. AFP=연합뉴스

그는 10번째 등정에 성공한 후 이달 초 네팔에서 가디언과 2차 화상 인터뷰를 통해 “너무나 오래 기다렸던 일”이라며 “꿈이 이뤄졌다”고 했다. 이번 등반을 마친 후 산에서 기다리던 15살 막내딸 샤이니와 감격의 포옹을 나눴다. 그는 에베레스트에 가지 못하는 동안 샤이니와 조카에게 산에서 지내는 방법을 가르쳤다. 락파는 “정상을 찍은 후 나를 기다리는 딸을 안아주는 걸 늘 꿈꿨다”며 “샤이니가 너무 자랑스럽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락파가 11번째 도전에 나설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그와 에베레스트의 관계는 여전히 깊다고 가디언은 평했다. “나는 이 산이 좋다”는 락파는 10번째로 찾은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마음으로 산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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