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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황금연꽃' 작가 "예술은 세상에 잠시 마법을 거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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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립미슬관에서 '정원과 정원' 전을 선보이고 있는 장 미셀 오토니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시립미슬관에서 '정원과 정원' 전을 선보이고 있는 장 미셀 오토니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푸른색 유리벽돌 7500장을 전시장 바닥에 깔아 설치한 오토니엘의 '푸른강;. [사진 이은주]

푸른색 유리벽돌 7500장을 전시장 바닥에 깔아 설치한 오토니엘의 '푸른강;. [사진 이은주]

노란 어리연꽃으로 뒤덮인 덕수궁 연못에 반짝이는 황금연꽃이 피었다. 연못 가운데 소나무 가지에는 황금목걸이가 걸렸다. 신기하다. 작가가 동화 속 거인의 보석 같은 금박 작품 7개(황금연꽃 4개, 황금목걸이 3개) 늘어놓자 연못은 강력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무대 위 배우처럼 존재감을 빛내고 있다.

장-미셸 오토니엘. '정원과 정원' #덕수궁과 서울시립미술관서 전시 #동화 속 한 장면처럼 환상적 연출 #"자연, 건축과 하나되는 작품할 것"

프랑스 중견 미술가 장-미셸 오토니엘(58)이 덕수궁 정원과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 야외조각공원과 본관 세 곳에 신비로운 마법을 펼쳐놓았다. 유리, 스테인리스스틸, 금박으로 빚어진 그의 작품 74점은 덕수궁 연못에서 미술관으로 이어지며 주변 풍경을 새로운 공간으로 변신시켰다. '뭔가 극적인 아름다움'을 원했던 이들에게 오토니엘의 '정원과 정원'은 올해 꼭 봐야 할 전시임이 틀림없다.

프랑스 광업도시 생테티엔에서 자란 오토니엘은 1980년대 후반부터 신화에 기반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유리와 철을 재료로 환상적인 조형 작품을 선보여왔다. 다양한 '꽃말'에서 영감을 얻은 그의 작품은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테면, 스테인리스스틸 구슬 위에 손으로 금박을 입혀 완성한 '황금연꽃'은 고행과 깨달음을 상징하고, 소나무 가지에 걸린 '황금목걸이'는 '위쉬 트리(wish tree)처럼 꿈이 이뤄지길 기원하는 뜻이 담겼다. 자연, 건축물과 하나로 어우러진 그의 작품은 간결하면서도 우아하고, 친근해 보이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작가가 인도의 장인들과 협력해 완성한 유리벽돌 작품들이다. 미술관 내부 바닥에 설치된 유리 벽돌 7500여 장으로 완성된 '푸른 강'(길이 26m, 폭 7m)과 그 위에 매단13개의 거대한 유리조각, 벽에 걸린 유리벽돌 부조 '프레셔스 스톤월'은 하나의 거대한 설치작품으로 어우러져 오묘한 빛으로 관람객을 압도한다. 최근 본지와 만난 오토니엘은 "우리는 아름다움과 경이를 느끼며 계속 살아갈 힘을 얻는다"며 "관람객에게 그 마법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덕수궁 연못에 황금연꽃을 피웠다. 
한국의 역사적인 공간에 작품을 설치해 영광이다. 이전에 한국에 왔을 때 덕수궁을 방문한 적 있는데, 언젠가 이 정원에서 내 작품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고즈넉하고, 숨은 공간같고, 한국 정원 특유의 시(詩)적인 느낌이 있는 이곳에 작품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고 싶었다."
당신이 뜻하는 '마법'이란. 
내가 말하는 마법이란, 사람들이 작품을 통해 잠시나마 평소와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예술은 현실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하고, 더 긍정적으로 살아갈 힘을 준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감정을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역시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덕수궁 연못에 설치된 장 미셀 오토니엘의 작품 '황금연꽃'과 '황금목걸이' ,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덕수궁 연못에 설치된 장 미셀 오토니엘의 작품 '황금연꽃'과 '황금목걸이' ,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오토니엘 작가가 이번 전시에 처음 선보인 회화 '자두꽃'.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오토니엘 작가가 이번 전시에 처음 선보인 회화 '자두꽃'.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오토니엘의 유리 구술 매듭 작품 'RSI 매듭;, Claire Dorn 촬영.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오토니엘의 유리 구술 매듭 작품 'RSI 매듭;, Claire Dorn 촬영.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오토니엘이 인도 유리장인과의 협력으로 선보인 유리벽돌 작품 '오라클'. 호박색 유리벽돌에 비친 조명으로 인해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광경이 연출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오토니엘이 인도 유리장인과의 협력으로 선보인 유리벽돌 작품 '오라클'. 호박색 유리벽돌에 비친 조명으로 인해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광경이 연출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시립미슬관에서 '정원과 정원'전을 선보이고 있는 장 미셀 오토니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시립미슬관에서 '정원과 정원'전을 선보이고 있는 장 미셀 오토니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오토니엘의 무광 스테인리스 스틸 작품 '아고라'. Claire Dorn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오토니엘의 무광 스테인리스 스틸 작품 '아고라'. Claire Dorn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오토니엘은 "이런 점에서 이번에 내가 선보인 작품 '아고라'는 중요하다. 이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열린 곳, 꿈꾸는 공간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미술관에 전시된 '아고라'는 2750개 무광 스테인리스 스틸 벽돌로 쌓은 움막 같은 공간이다. 그는 "은신처와 같은 이곳에서 사람들이 꿈과 상상의 세계를 되찾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꽃에 매료된 소년이었다고. 
"아주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어릴 때 시골 할머니 댁 정원에서 만난 꽃들과 계절의 변화가 내겐 황홀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열두 살 무렵부터는 꽃들의 상징적인 의미를 알아가는 데 빠졌다. 꽃들의 의미를 파고드는 데 내 10대의 열정을 바친 것 같다(웃음)." 

2019년 루브르 미술관은 유리 피라미드 건축 30주년을 맞아 작품을 의뢰했으며, 그가 백금 캔버스에 검정 잉크로 그린 '루브르의 장미'(회화 6점)는 루브르에서 전시된 뒤 영구 소장됐다. 이번 전시에 그는 저항과 끈기를 의미하는 '자두꽃' 그림도 처음 선보였다.

정원과 꽃은 당신에게 무엇일까.  
정원은 내가 꿈꾸는 공간이었고, 꽃은 내게 현실과 환상을 연결해주는 것이다. 꽃을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현실을 다르게 보여줄까 상상한다. 문화마다 다른 꽃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은 내가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방법이기도 하다.  

오토니엘은 미술관을 벗어나 공공공간에서 작품을 보여주는 데 관심이 남다르다. 2015년 베르사유 궁전 내 연못에 작품 '아름다운 춤'을 설치했고, 지난해 프티 팔레에서도 작품을 선보였다. 덕수궁 연못에 작품을 설치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왜 미술관 밖인가. 
"2000년 파리 지하철 팔레 루아얄-루브르 박물관역에 작품을 설치하며 미술관 아닌 일상 공간에서 작품을 보여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사람들이 출퇴근 길에 작품을 보고 잠시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있으니까. 공공미술은 작가에게 여러모로 어려운 작업이지만, 모든 사람을 위한 예술에 대한 열망은 포기할 수가 없다."

오토니엘은 이어 "시립미술관이 이런 전시를 하는 것은 매우 용감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술관 전시는 상업 갤러리가 제공하는 공간과는 다르다. 공공 미술관이 있기에 나와 같은 예술가들이 꿈꾸던 일을 마음껏 표현해볼 수 있다. 이게 바로 '미술관의 마법'"이라고 말했다.

자연, 건축과 '하나' 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공원이든, 궁이든, 미술관이든 공간과 대화하는 작품을 보여주고 싶다. 덕수궁과 같은 역사적인 공간은 작품을 더 역동적으로 만들어주고 새로운 에너지를 더해준다. 건축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데, 나중엔 아예 아고라'보다 더 큰 규모로 건축물이 되는 조각을 선보이고 싶다.

마지막으로 젊은 작가들에 대한 조언을 물었더니 아주 조심스럽게 "아주 중요한 것은 '달라야 한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그러기 위해선 철저하게 자기 자신이 돼야 하고, 주변에 휩쓸리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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