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월간중앙] 세태취재 | 박봉에 시달리는 2030 공무원의 격정토로

중앙일보

입력

공무원이 신의 직장? MZ세대에겐 ‘옛말’  -이승훈

코로나19 확산 속 워라밸 붕괴, 금전적 보상 미흡… 연차도 편히 못 써
국가직은 지방 근무 ‘주거 불안정’ 심각… 공무원 연금도 줄어들어 불만

젊은 공무원들은 연차휴가도 제대로 못 쓰고 초과근무수당을 채워도 보수로 보상받지 못하는 현실에 힘겨워한다. / 사진:연합뉴스

젊은 공무원들은 연차휴가도 제대로 못 쓰고 초과근무수당을 채워도 보수로 보상받지 못하는 현실에 힘겨워한다. / 사진:연합뉴스

"주 4일제인데 영끌 연봉 2500만원 vs 주6일 밤낮없이 업무 전화 받으면서 연봉 6000만원이라면?” 직장인 전용 앱 ‘블라인드’와 대학생 전용 앱 ‘에브리타임’을 들어가보면, 이 같은 ‘워라밸 vs 연봉’ 밸런스 게임(양자택일 선택지를 통해 가치 추구에 대한 찬반을 가리는 것)을 곧잘 접할 수 있다. 그만큼 ‘워라밸’은 2030세대의 직업 선택에서 중요한 요소가 됐다. 재택근무·플랫폼 노동이 활성화되면서 자신의 ‘워라밸(Work Life Balance)’기준에 맞지 않으면 직장을 떠나는 사례도 늘어나는 추세다. 안정된 직장으로 여겨지던 공직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어렵게 합격해 공직에 들어와놓고 몇 년 안 돼 사직서를 내는 저연차 공무원이 부쩍 늘었다. 공무원연금공단에 따르면 2020년의 경우 한창 일할 나이인 18~35세 공무원 가운데 5961명이 사표를 던졌다. 특히 재직 연차가 5년 이하인 퇴직자가 늘었다. 2020년에는 5년 이하 퇴직자가 9968명으로 전체 퇴직자 4만7319명 가운데 21%를 차지했다. 2017년 전체 퇴직자 3만7059명의 15% 수준인 5613명이 퇴직한 것에 비하면 상승한 수치다. 자유로운 성향인 MZ세대가 경직되고 보수적인 공직 사회에 적응하기를 포기하면서 공무원 이탈 현상이 심화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월간중앙은 공직사회 MZ세대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1~3년 된 저연차 공무원 8명을 밀착 취재했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또 “공무원 조직은 ‘부바부 직바직(부서 바이 부서, 직렬 바이 직렬, 부서와 직렬에 따라 다르다는 뜻)’이며, 자신의 목소리가 공무원 전체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단서를 달고 취재에 응했다.

지방직 일반행정 9급 공무원 이정후(가명·20대)씨. 그는 관내 수만 개에 달하는 식당 및 유흥주점의 인허가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공무원이 이렇게 일을 많이 하는지 입직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씨는 “다중이용시설 점검을 할 때는 막아서는 클럽 가드를 뚫고 불시현장 검문도 해봤고, 직접 영업정지 처분 내리기 외에도 행정법원에 가서 소송 변론 참여, 손님인 척 위장해서 잔반 재사용업소 적발 등등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수행해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중한 업무에 비해 돌아오는 보상은 턱없이 부족했다. 갓 ‘입봉’한 9급 공무원의 첫 월급 실수령액은 수당을 포함해 180만원 선이었다. 수당을 제외한 기본급은 140만원이었다. 이씨는 “입직하면서 느낀 점은 ‘정말 박봉은 박봉 맞구나’였다”며 “‘공무원은 수당 포함하면 그래도 박봉은 아니지 않느냐?’는 질문을 들을 때면 너무 답답하다”고 했다. 다른 공무원들도 봉급 문제에 한목소리로 불만을 표시했다. 그들에게 최저임금 수준의 실수령액은 워라밸과는 거리가 멀었다.

워라밸에 턱없이 모자라는 박봉

소득이 만족스럽지 않은 주니어 공무원들은 다른 곳에서 채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국가직 7급 공무원 박한솔(가명·30대)씨는 “최근 코인에 투자해 1100만원을 벌었다가 다시 600만원을 뱉어냈다. 초과근무수당 1등을 찍으며 일해도 200만원 남짓한 월급 받는데 노동 욕구가 도무지 생길 수가 없는 환경”이라고 토로했다.

이들 저연차 공무원이 꼽은 공직의 가장 큰 장점은 고용의 안정성이었다. 직업의 안정은 삶의 안정을 보장하는 조건 중 하나겠지만,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직업’이 안정되고 그 반대급부로 삶이 흔들린다면 어떨까. 공무원의 워라밸 문제는 지방직에서 국가직으로 시선을 옮기면 더욱 악화한다.

모든 공무원은 일정 주기마다 근무 지역을 순환하게 되는데 국가직 공무원의 경우 순환 권역이 전국 단위다. 타지 생활 3년 차에 접어든 박씨는 “당장 내 주거가 안정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삶이 안정되겠나”라며 “나도 지방직 공무원들과 똑같이 기본급 180만원 받는다. 가정이 있는 사람이 전국을 돌게 된다면 두 집 살림을 한다거나 출퇴근 교통비·전기료 등 나갈 돈이 많다. 애초에 박봉인데 주거 안정이 안 된 상황에서 추가적인 지출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국가직은 복지라고 해봤자 지방직보다 적은 복지비와 관사 지급 정도뿐”이라며 “국가직은 감사를 받기 때문에 복지 비용을 주더라도 최저로 맞춰주는 경우가 많다. 내가 지금 20만원을 받는데 수도권 지방직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의 여동생은 수도권 소재 지방직 일반행정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데 복지 비용으로 50만~60만원이 지급된다고 했다.

박씨는 현재 국가에서 제공하는 관사에 살고 있다. 관사는 입주 시 보증금을 개인이 부담하고 국가에서 월세를 내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문제는 관사 위치가 근무지와 가깝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박씨는 자가용으로 출퇴근하고 있다. 그는 “예를 들어 부산의 한 관사는 산 위에 있다. 출퇴근 시간이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2인 1실 배정 등 생활에 불편이 크기 때문에 관사 입주율이 10%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직의 몇 없는 복지라고 내세울 만한 게 관사인데 이렇게 되면 신규 공무원은 지방 근무를 돌며 발붙이고 살아갈 주거공간조차 마땅치 않다”고 덧붙였다.

공무원 계속해야 하나, 늘 회의감

2030세대는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신규 공무원에 임용됐지만, 과중한 업무와 미흡한 금전적 보상에 몸과 마음이 지쳐 공직사회를 떠나는 이들도 많다. / 사진:연합뉴스

2030세대는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신규 공무원에 임용됐지만, 과중한 업무와 미흡한 금전적 보상에 몸과 마음이 지쳐 공직사회를 떠나는 이들도 많다. / 사진:연합뉴스

MZ세대가 추구하는 가치가 공직 사회와 맞지 않아 저연차 공무원의 퇴직이 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박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박씨는 “최근 뉴스에 공무원을 많이 그만둔다는 보도가 있는데 실제 피부로 느낀다”며 “어린 공무원들이 그만두는 이유는 세대 문제를 논하기 이전에 도저히 못 버티는 환경이니까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이어 “어린 나이에 공무원 월급 받으면서 좋은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박씨는 자신이 특수 직군이기 때문에 연차 휴가도 마음대로 못 쓴다고 했다. 그는 “스케줄 근무를 돌다 보니 한 명이 빠지면 대타를 구해야 한다. 연가가 1년에 14일 정도 나오는데 지금 31일이 쌓여 있다. 연가 미소진 시 지급액도 사기업보다 적어서 일당 5만원밖에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씨는 “정부에서는 계속해서 인력 충원을 해주겠다고 말하지만, 현실적으로 충원이 어려운 부서도 있지 않겠나. 계속 적은 인원으로만 일하는 부처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한숨지었다.

취재에 응한 공무원 중 일부는 악성 민원인을 상대하느라 지치고 짜증 난다고 호소했다. 지방직 9급 소방공무원 한정환(가명·30대)씨는 “민원 전화를 한번 받으면 한 시간 넘도록 말을 퍼붓는 민원인도 있다”며 “공무원이라는 족쇄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끊지 못한다. 국민신문고에 민원이 올라갈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민원 응대 매뉴얼’도 있다고 했다. 내용은 최대한 상대방의 화를 풀어주면서 공감을 유도하는 식이다. ‘우리가 최대한 해결하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다양한 방안을 준비하고 해결하려 하고 있으니 양해 바란다’ 같은 식으로 에둘러 말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응 방법이 없다고 했다.

공무원 연금도 저연차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뜨거운 감자’다. 납부액은 올랐는데 환급액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공무원 연금은 2016년부터 개편되기 시작해 현재 본인 기여금을 9%로 2%p 상향했고 지급률은 1.7%로 0.2%p 하향했다. 납부보험료 대비 지급률도 국민연금보다 떨어져 신입 공무원들은 불만이 있으면서도 입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지방직 9급 교육행정 공무원 정조원(가명·30대)씨는 “공무원 연금이 칼질당하고 난 후 기여금으로 납부하는 액수가 9급 기준 한 달에 40만원이다. 물가상승률을 계산해서 돌려받는 연금으로 본전 뽑으려면 110살까진 살아야 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취재에 응한 다른 공무원들도 공무원 연금을 계속 바라보고 공직 생활을 이어가는 게 맞는지에 대해 고민을 드러냈다.

그래도 국회 등 인기 직렬은 여전히 높은 경쟁

공시는 여전히 취준생에게 포기하기 아까운 선택지다. 한 공시생은 “시험 한 번에 취업 기회가 열린다는 점에서 공정한 게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사진:연합뉴스

공시는 여전히 취준생에게 포기하기 아까운 선택지다. 한 공시생은 “시험 한 번에 취업 기회가 열린다는 점에서 공정한 게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사진:연합뉴스

현장의 현직 공무원들은 이처럼 불만을 쏟아내지만 그래도 공무원 시험은 취업 길이 막막한 청년세대에게 포기하기 아까운 선택지다. 9급 공시생 정모(25)씨는 “시험 한 번에 취업 기회가 열린다는 점에서 공무원은 우리 사회에 마지막으로 남은 공정한 게임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사기업의 경우 취업을 하기 위한 과정이나 토익 등 요구되는 정량적인 스펙도 많은데 그런 것들을 다 준비할 엄두가 나진 않았다는 점도 공시를 준비하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7급 공시생 박모(28)씨는 “노량진의 일면만 보고 공시에 대한 인기가 식었다고 말하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라며 “코로나19 등으로 공부 행태가 바뀌었을 뿐 여전히 공시생들은 지금도 어디선가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공시생들 사이에서 국회 등 인기 직렬은 여전히 높은 경쟁률을 자랑한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행정 일반 14명을 선발하는 2022년도 8급 공채 원서접수에만 지원자 2643명이 몰려 경쟁률 188.7:1을 기록했다. 지난 2021년 경쟁률은 133.3:1이었다. 지원자의 절대치는 줄었지만, 선발 인원이 줄어들어 오히려 경쟁률은 올랐다.

국회사무처에서 근무하는 9급 공무원 김건영(가명·30대 남자)씨는 이를 두고 “국회가 인기 직렬인 이유는 지방 발령이 없이 여의도에서 근무한다는 점, 승진이 빠르다는 점, 복지 수준이 높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며 “공시카페 등에서 비인기 직렬은 안 좋은 부분만 글이 올라오고, 인기 직렬은 좋은 면만 부각되면서 쏠림현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lee.seunghoon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