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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태우다 남은 천 조각…그걸로 몸을 감쌌다, 승려들은 왜 [백성호의 한줄명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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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 묻은 천으로 기운 옷에 담긴 뜻”

#풍경1

대한불교 조계종 스님들은
가사(袈裟)를 입습니다.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입는 옷입니다.
가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각의 천 조각을 다닥다닥
기운 흔적이 있습니다.
어떤 가사는 조각의 수가
25개나 됩니다.
사람들은 그걸 ‘25조 가사’라고
부릅니다.

그런 가사는 아무나 입을 수가
없습니다.
나름대로 절집에서 품계가 돼야만
입을 수가 있습니다.
조계종 스님들이 입는 가사는
7조 가사부터 25조 가사까지
다양하게 있습니다.
출가한 지 얼마 안 된 스님들은
7조 가사를 입습니다.

지금은 가사가 권위와 연륜을
상징하지만,
사실 불교에서 가사의 유래는
이것과 거리가 퍽 멀었습니다.

#풍경2

2600년 전 인도에서는
힌두교가 주류 종교였습니다.
힌두교 문화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했습니다.
천으로 시신을 둘둘 만 채로
장작 위에다 올려서 태웠습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힌두교 신자였다. 간디의 주검도 힌두교 전통을 따라 화장을 치렀다. [중앙포토]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힌두교 신자였다. 간디의 주검도 힌두교 전통을 따라 화장을 치렀다. [중앙포토]

화장을 하고 나면 주위에
타다 만 천 조각들이 뒹굴곤 했습니다.
이 천 조각이 가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인도의 수행자는
무소유를 지향합니다.
그래서 머리도 삭발하고,
옷을 아예 벗고다니기도
합니다.
붓다 당시 인도에서
불교와 쌍벽을 이루었던
자이나교의 수행자들도
나체로 다녔습니다.

그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서,
무소유를 표방하며
순례의 길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인도에서 간혹
도로 옆을 걷고 있는
나체 수행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이나교 수행자의 모습. 그들은 옷을 벗고, 대신 하늘을 입는다고 생각한다. [중앙포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이나교 수행자의 모습. 그들은 옷을 벗고, 대신 하늘을 입는다고 생각한다. [중앙포토]

불교 수행자는 나체는 아니었습니다.
대신 옷을 화려하게
입지도 않았습니다.
화장터에서 타다 만 천 조각을 줍거나,
똥 닦고 버린 천 조각을 기워서
입었습니다.
그게 가사의 유래입니다.
날씨가 더운 인도에서는
그 옷 하나만 걸치면 됐습니다.

당시에는 불교 승려의 가사를
‘분소의(糞掃依)’라고 불렀습니다.
‘똥 묻은 헝겊을 주워 모아 붙인 옷’이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당시에는 그런 식으로 만든
옷이었으니까요.

#풍경3

한국 불교는 종파에 따라
가사의 색깔도 다릅니다.
태고종과 천태종의 가사는
붉은 색입니다.
석가모니 부처의 전생에
수행을 위해 온몸에 피를 흘린
일화가 있습니다.
두 종단의 붉은 가사는 ‘피나는 수행’을
상징한다고도 합니다.

불교 태고종 출가자들이 불문에 귀의한다는 뜻의 연비(煙比)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태고종의 가사는 붉은 색이다. [중앙포토]

불교 태고종 출가자들이 불문에 귀의한다는 뜻의 연비(煙比)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태고종의 가사는 붉은 색이다. [중앙포토]

반면 조계종의 가사 색깔은
다소 다릅니다.
무슨 색인지 기억이 나시나요?

절집에서는 그걸 ‘괴색(壞色)’이라고
부릅니다.
색깔 이름이 무척 낯설지 않나요?
한자로 ‘괴(壞)’는
‘무너질 괴’자입니다.
다시 말해 ‘원래 색을 무너뜨린 색’
혹은 ‘원래 색에서 멀어진 색’이란
뜻입니다.

옛날에는 시신을 감쌌던 천 조각에
황토로 물을 들여서
원래의 색을 뺐다고 합니다.

원래의 색을 빼고,
원래의 색이 무너졌으니
‘괴색’이 된 겁니다.

조계종 가사의 괴색에는
더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해인사 스님들이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장경각 내부를 돌고 있다. 조계종 스님들이 걸치는 가사는 괴색이다. [중앙포토]

해인사 스님들이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장경각 내부를 돌고 있다. 조계종 스님들이 걸치는 가사는 괴색이다. [중앙포토]

#풍경4

불교에는 팔만사천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경전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경전의 가르침을
딱 여덟 글자로 줄이면 무엇이 될까요.

그렇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반야심경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이 여덟 글자에 팔만사천대장경이
다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현상계를 색(色)이라고
부릅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고,
감정이나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들.
그 모두를 ‘색(色)’이라고
부릅니다.

불교의 팔만사천대장경을 여덜 글자로 줄인 게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 [중앙포토]

불교의 팔만사천대장경을 여덜 글자로 줄인 게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 [중앙포토]

우리는 이 색(色)을 움켜쥐려고 합니다.
왜냐고요?
내 안의 창고에다 쌓고 싶으니까요.
내가 좋아하는 물건도 쌓고 또 쌓고,
내가 좋아하는 돈도 쌓고 또 쌓고,
내가 좋아하는 감각도 쌓고 또 쌓고,
내가 좋아하는 감정도 쌓고 또 쌓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쌓고 싶은 마음 때문에
착(着)이 생겨납니다.
무슨 착이냐고요?
집착(執着)입니다.
세상의 모든 ‘색(色)’을
움켜쥐려고 하는 게
집착입니다.

반면 불교 수행자는 이 색(色)에 대해
정반대의 태도를 취합니다.
움켜쥐려고도 하지 않고,
쌓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색(色)에 젖지 않으려 하고,
색(色)의 정체를 깨달으려고 합니다.
색(色)에 젖어버리면
색(色)의 정체를 알기가 어려우니까요.
그게 ‘괴색(壞色)’에 담긴
깊은 뜻입니다.

#풍경5

가사의 본래 의미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옷만
그런 가사일까요.
스님들만 그런 가사를
두를 수 있는 걸까요.

아닙니다.
누구나 지지고 볶는 일상에서
수도자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반드시 수도원이나 선방으로
가야만 되는 건 아닙니다.

화가 날 때,
화에 젖지 않고
화의 뿌리를 보려고 해보세요.

그럴 때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멋진 가사를
한 번 두르는 겁니다.

슬퍼서 눈물이 날 때,
슬픔에만 젖지 않고
슬픔의 뿌리를 생각해 보세요.

그럴 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사를
한 번 두르는 겁니다.

인도의 산치 대탑 유적지에 있는 붓다의 상. 불교의 깨달음은 출가와 재가를 구분하지 않는다. [중앙포토]

인도의 산치 대탑 유적지에 있는 붓다의 상. 불교의 깨달음은 출가와 재가를 구분하지 않는다. [중앙포토]

출가자가 따로 있고
재가자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승복이 따로 있고,
재가의 옷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라도 자기 마음 한 번
들여다볼 때,
수도자가 되는 거니까요.

이 세상 전부가,
이 우주 전체가
우리 모두의 선방(禪房)이자
수도원(修道院)이니까요.

거기서 오늘도
마음으로 지은 가사를
한 번 입어보는 건 어떨까요.

〈‘백성호의 한줄명상’은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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