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에 마약 퍼주는 의사·약사...'공부약' 사다 먹이는 부모

중앙일보

입력 2022.06.29 05:00

업데이트 2022.06.2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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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 저 프로포폴에 중독돼서 하루도 없이 못 살 거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 좀 도와주세요.
어, 그럼 앞으로 다른 병원 가지 말고 우리한테만 와.

[10대 마약공화국③] 의사·약사, 10대 꾀병에 속은 건가, 마약 장사하는 건가

28일 중앙일보 취재 결과 최근 18세 고등학생 A양이 수도권의 한 피부과 원장과 나눈 대화 중 일부다. 해당 10대가 마약류에 속하는 향정신성의약품인 프로포폴(수면마취제)에 중독돼 금단현상을 호소하지만,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10대 마약사범 수가 역대 최대치(지난해 검거인원 450명)를 찍은 데에는 일부 의사와 약사들도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대들이 소셜네트워크(SNS)에서 불법 유통되는 마약류를 구하기도 하지만 상당수는 표면적으론 합법인 의사 처방을 거쳐 마약성 진통제, 식욕억제제, 수면마취제 등을 병원과 약국에서 확보해 투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의사들은 꾀병 연기를 하는 10대들에게 속거나 자신들의 돈벌이를 위해 청소년에게 손쉽게 마약류 처방전을 써주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0대 청소년이 소셜네트워크(SNS)에 올린 식욕억제제 디에타민 판매 광고물. 주성분 펜터민(암페타민계열)은 필로폰(메스암페타민)과 함께 마약류관리법상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돼 있다. 경남경찰청은 올해 전국에서 디에타민을 불법 처방 및 판매, 투약한 청소년을 100명가량 적발했다. 경남경찰청

10대 청소년이 소셜네트워크(SNS)에 올린 식욕억제제 디에타민 판매 광고물. 주성분 펜터민(암페타민계열)은 필로폰(메스암페타민)과 함께 마약류관리법상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돼 있다. 경남경찰청은 올해 전국에서 디에타민을 불법 처방 및 판매, 투약한 청소년을 100명가량 적발했다. 경남경찰청

“어떤 병원에선 마약인 초강력 진통제 펜타닐 패치를 환자가 달라는 대로 줍니다. 한 장이면 사흘을 쓰는데, 한 달치인 10장을 처방해준 뒤 열흘 만에 환자가 다시 와서 ‘10장 달라’ 하면 또 줘요. 조사 과정에서 처방 지침 위반이라고 지적했더니 의사는 ‘환자가 너무 아프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 진료 거부를 할 순 없었다’라며 빠져나가더군요. 상습 처방 의사를 어렵게 처벌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벌금만 조금 내고 끝입니다. 계속 진료를 봅니다.”(B 경찰 수사관)

19세 때부터 펜타닐 등을 복용해오다 지난해 7월 끊었다는 래퍼 사츠키(22, 본명 김은지)도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학생들에게 술·담배를 잘 내주는 편의점이 있듯이, 펜타닐을 달라는 대로 주는 병원도 있다”라며 “펜타닐 하는 애들 사이에선 ‘어디 어디 병원이 뚫린다’는 소문이 다 나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발간된 「대검찰청 2021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현행법상 의사의 처방이 있으면 의료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마약류인 향정신성의약품 성분 수는 180개에 달한다. 같은 성분의 복제약까지 포함하면 국내 유통되는 마약성 의약품 수는 훨씬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료전문 법무법인 대표변호사는 “일부 의사들은 장기간 환자를 보면서 마약류를 사용하거나 처방하다보니 마약의 중독성이나 위험에 대해 경각심이 없는 경우가 있다”라고 말했다. 변호사가 자격 취득 이후에도 교육을 받듯이 의사도 마약 관련 재교육을 받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나왔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식약처 의료쇼핑방지정보망·처방지침은 있으나 마나

의사들이 마약류 의약품의 게이트 키퍼 역할을 제대로 관계당국이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지만, 그마저도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3월부터 “의료용 마약류의 과다·중복 처방을 방지하겠다”며 의사가 진료 시 환자의 투약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의료쇼핑방지정보망’을 도입했지만, 사용자가 극소수여서 유명무실하다는 분석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약사)이 식약처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의료쇼핑방지정보망을 이용한 의사 수는 2038명에 불과했다. 현재 국내 의사 수는 약 11만 명인 데 1.8%만 참여했다. 또 지난해 의료쇼핑방지정보망 이용 횟수는 3만 1493회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한 종류의 처방 건수(113만 5797건)에도 턱 없이 못 미치는 수치다.

올해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의료쇼핑방지정보망을 이용한 의사 수는 1093명, 이용 횟수는 1만 7308건이었다. 서 의원은 “의사의 의료쇼핑방지정보망 이용률은 한참 낮은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용률이 큰 폭으로 확대되고 있지도 않다”라고 비판했다. 정보망 이용에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경남경찰청은 최근 식약처에 공문을 보내 “10대가 성인의 신분증을 도용해 마약성 의약품을 처방받는 걸 막기 위해 신분 확인을 철저히 하고 처방 지침이 철저히 지켜질 수 있도록 해달라”라고 요청했다. 전국 15개 시·도 중 울산·제주를 제외한 13곳에서 10대 100명가량이 마약성 식욕억제제인 디에타민을 불법 처방받은 뒤 투약한 등의 혐의로 적발된 데 이은 조치다.

미국에선 지난해 펜타닐 남용 사망자가 7만명을 넘는 등 마약류로 인한 사망자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미국에선 지난해 펜타닐 남용 사망자가 7만명을 넘는 등 마약류로 인한 사망자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의사들의 처방전을 받아 최종적으로 10대들에게 마약류를 내주는 약사들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허모 약사는 병원 관계자와 짜고 처방전을 위조한 뒤 마약류인 향정신성의약품 수만 정을 조제하고 판매한 혐의로 지난해 6월 3일 서울중앙지법(1심)에서 징역 2년에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서초구의 약사는 “아는 의사한테 처방전을 꾸며 달라고 한 뒤 마약류를 쌓아 놓고 은밀히 판매하는 약사가 더러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중 마약을 접했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코카인이나 헤로인 같은 걸 구하기는 미국보다 어려워요. 하지만 향정신성의약품인 아티반·알프라졸람(벤조디아제핀 계열 신경안정제) 같은 건 약국에서 달라는 대로 다 줘서 놀랐어요.”(19세 C군 최근 병원 진료)

2020년 9월 1일 한 대학 의과대학에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비석. 본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은 없음. 뉴스1

2020년 9월 1일 한 대학 의과대학에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비석. 본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은 없음. 뉴스1

“10대 자녀에 마약류 각성제 권하는 부모는 공부 중독자”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마약류 의약품 복용에 경각심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서울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상당수 학부모들이 매년 10월 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입시생 자녀들에게 “공부 잘하는 약”이라며 마약성 ADHD(과잉행동장애) 치료제인 메틸페니데이트를 불법으로 구해다가 먹이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청소년이 각성제로 메틸페니데이트를 복용하면 두통과 불안감, 환각, 망상, 자살시도 등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 장기 투약자는 미 투약자보다 신장이 약 2.5㎝ 작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재활지도실장은 “부모의 지나친 욕심 때문에 메틸페니데이트에 중독된 10대들이 상당히 많다”라며 “그런 부모는 공부 중독자인 셈”이라고 말했다.

마약 확산을 막기 위한 일부 언론 보도가 취지와 정반대로 10대 마약 사범 증가에 일조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약 사건 전문인 박진실 법무법인 진실 대표변호사는 “10대 의뢰인 중에는 ‘기자가 병원이나 SNS 등을 통해 구해 보니 쉽게 구해지더라’ 식의 수법을 상세히 묘사한 보도를 보고 그대로 따라했다는 경우가 많다”라며 “극단적 선택 관련 보도 지침이 있는 것처럼 마약 관련 보도 지침을 만들어 실천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10대 마약공화국
단순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청소년이 해외직구로 마약을 밀수하고 메신저 채팅앱으로 판매하는 세상입니다. 한때 마약청정국에서 시나브로 10대들의 마약공화국으로 전락한 대한민국. 중앙일보가 대검찰청ㆍ국가수사본부ㆍ식품의약품안전처ㆍ마약퇴치운동본부 전문가와 단속은 물론 치료ㆍ재활ㆍ교육예방 전반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합니다. 세계 마약 퇴치의 날인 6월 26일부터 중앙일보 10대 마약공화국(www.joongang.co.kr/series/11575)을 만나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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