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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국, 건건이 충돌 "모든 국가가 견제"vs"박종철 사건 기억을"

중앙일보

입력

행정안전부와 경찰의 대립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사상 초유의 치안감 인사 번복, 윤석열 대통령의 ‘국기 문란’ 발언, 김창룡 경찰청장의 사의 표명 등의 사태가 이어지면서 대립각은 날카로워지고 있다. 행안부가 경찰 조직을 지휘·감독할 조직(경찰국) 신설을 공식화하면서 사실상 대립이 공론화됐다.

행안부는 이상민 장관까지 나서 ‘법리’를 설명하고 있지만, 경찰은 역사적으로 보장돼 온 중립성·민주성·독립성이 침해된다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경찰국 신설 근거가 된 정부조직법의 조항 하나에도 양측의 해석차가 극명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경찰제도 개선자문위원회' 권고안에 대한 행안부의 입장 발표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경찰제도 개선자문위원회' 권고안에 대한 행안부의 입장 발표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뉴스1

“관장 주체는 장관” vs “법 연혁 몰각해”

판사 출신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직접 기자회견까지 하며 경찰국 신설의 법령상 근거를 강조했다. 정부조직법 34조 5항은 ‘치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행정안전부장관 소속으로 경찰청을 둔다’고 규정한다. 이 장관은 “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무 관장의 주체가 누구인가는 명백하게 나타난다”는 말도 했다. 행안부 장관이 치안 사무의 주체인 게 당연하다는 논리다.

행안부는 검경수사권 조정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통과 및 대공수사권 이양 등을 지목하면서 경찰 권한이 비대해진데 따른 ‘견제와 균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행안부 경찰 제도 개선 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황정근 변호사는 “모든 국가기관엔 헌법의 대원칙인 견제와 균형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며 “경찰국 신설은 ‘통제’가 아닌 민주적 운영·관리 차원”이라는 취지도 강조했다.

그러나 경찰 안팎에선 행안부 측이 법 제·개정 연혁을 몰각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 1990년 정부조직법 개정 당시의 조항 문구가 거론된다. 해당 조항은 ‘치안 및 해양경찰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게 하기 위해 내무부장관 소속하에 경찰청을 둔다’고 적시했다. “연혁을 따져보면 애초 사무 관장의 주체는 경찰청으로 정한 게 분명하다”며 “‘관장하기 위해’로 문구가 바뀐 것은 별도의 개정 이유가 없는 점에 비춰보면 용어 순화 차원에 불과하다(일선의 한 총경)”는 게 경찰 측 해석이다. 경찰은 행안부로부터의 독립·중립을, 행안부는 경찰에 대한 통제를 강조하는 상황이다.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 걸린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 걸린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권력 예속화 방지 vs 과거의 시스템

경찰 측에선 “법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고민이나 논의가 부족했다”며 행안부를 직격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1960년 3·15 부정선거 및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으로 드러난 경찰의 권력 예속화를 막기 위해 도입된 법 취지와 그 목적을 무색게 했단 취지다. 지난 1990년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내무부(행안부 전신) 장관 사무에서 ‘치안’이 삭제됐고, 다음 해 경찰법 제정을 통해 경찰청은 행안부 외청으로 독립했다.

이와 관련해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임호선·서영교 의원 주최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장관 사무 치안 삭제에 대해 “수십 년간 경찰이 내무부에 예속된 채 정치 도구로 활용된 폐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방위를 위한 방어적 조치”라며 “경찰 중립화는 한국 현대사 질곡의 혹독한 경험을 통해 얻어낸 중요한 가치다”고 강조했다.

반면 행안부 측은 30여년 전과 현재는 “상황이 다르다”는 입장이다. 경찰 권한·역할이 대폭 확대된 변화가 이뤄진 상황에서 과거의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할 순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 관계자들이 28일 오전 정부세종2청사 행정안전부 앞에서 '경찰의 독립·중립 훼손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전국경찰직장협의회 관계자들이 28일 오전 정부세종2청사 행정안전부 앞에서 '경찰의 독립·중립 훼손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경찰국이 법 개정 사안인지도 논란

경찰국 신설이 법 개정 사안에 해당하는지도 쟁점 중 하나다. 이 장관은 정부조직법 7조를 근거로 들며 법에 이미 규정된 권한을 행사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조직 직제 신설은 국회 입법 사항이 절대 아니다”는 설명이다. 해당 조항은 행정기관의 장이 소관 사무를 통할(統轄)하고, 소속공무원을 지휘·감독하면서 중요정책 수립에 대해서는 각 청장을 직접 지휘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경찰 내부에서는 경찰국 신설이 법 개정 사안이라고 맞선다. 역사적 연원으로 행안부 장관 사무에 치안이 삭제된 상황에서 법이 아닌 시행령으로 경찰 치안 사무를 관장하겠다는 것은 ‘꼼수’라는 이유에서다. 최응렬 경찰학교육협의회 회장은 “법률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명령에 의한 지배를 하겠다는 발상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경찰법 패싱’ 우려

신설 경찰국과 경찰법에 규정돼 있는 국가경찰위원회(경찰위)와의 권한 충돌 가능성도 언급된다. 경찰법은 경찰행정을 심의·의결하기 위한 합의제 기구인 경찰위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황정근 변호사는 “(경찰위는) 사실상 경찰청의 자문기관”이라며 “국무위원인 행안부 장관이 경찰 정책·제도·인사·법령 소관 건을 다 가져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반면,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경찰위원회는 법으로 정해진 심의·의결 기구로, 자문기구와는 분명히 성격이 다르다. 엄연히 법이 보장하는 경찰위 권한을 무시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경찰 일각에선 “(경찰)법이 의도적으로 ‘패싱’ 됐다”며 “위법하지 않다고 해도 정책 강행 의도에 맞추려는 선택적 법 해석만이 이뤄진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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